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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성훈식 |2007.02.23 02:21
조회 42 |추천 1

  나의 기존 책읽기 방식은 전체보다는 부분에 좀 더  집착하는 방식이었는데, 오랜만에 책 전반에 대해 뭔가를 쓰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몇권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괴짜가족을 보다 보면 그런 단편이 있다. 세상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2명 더있다는. 고테츠가 아스크림을 먹고 있는 고테츠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는 설정이다. 그 에피소드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유전적 일치 없이도 우연이라는 것은 과학을 비웃으며 충분히 그런 일을 벌일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중학교 2학년때 반을 처음 배정받았을 때 어떤 애들이 ' 너 처음에 XX줄 알았어' 라고 말했었다. 그 반에서 올라온 아이들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궁금했던 그 사람을 찾아가 보고 나는 분명 흠칫(!)했었다. 분명히 많이 닮았는데, 이미지가 다른/느낌이 다른 캐릭터. 하나 더 기억나는 건, 그 녀석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던 결벽증이라는 걸 가지고 있었다.

 

  책은 오랜만에 보는 What I call '낭비할수 없어 문체' (페이지에 빈 공간 따윈 내줄 수 없어!) 로 되어있어서, 쉽게 몰입하긴 힘들다. 그치만 몰입하고 나면 그들이 말하는 시공간 어딘가에서 부유하는 내 자신이 있다. 바꿔 말하면, 요 근래 읽었던 책들은 정말 '읽기 쉬운' 문체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일본소설들이 좀 더 그런 것 같다. 짧은 호흡과, 적당한 수사와.. 틀에 박히는 건 역시 안 좋은 듯.

  도플갱어라는 설정은 표현에 따라서 호러가 될 수도(많잖아 그런 영화들..) 코미디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분위기와 관계없이 당사자의 충격은 으악쇼크를 100번 맞은 정도일 테고 이성은 한없이 무력해질 듯. 책은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은 스토리와, 그리 슬프진 않은 결말을 준비했다(astonish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애). 자연스럽게 '나는 과연 누구지?'  하게 되는 생물학적/철학적인 혼란은 보너스.

 

p.s. 문득 생각났는데 도플갱어는 독일어다!

  - Doppel (twice) ga"nger (go-er)  다들기억은 하고 있을까?

 

 

 

그녀는 지난 육개월 동안 자신의 것이라고 믿었던 작은 행복을 되찾으려면, 그런 행복이 아직도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어쨌든 그러려면 자신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아보려고 온 것이다.

 

가능성을 따지는 건 중요하다.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현재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착각은, 생존에 있어서 도움은 되지만 좋은 삶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전화번호부가 기본적으로 정보가 별로 없는 사립탐정이나 동네 경찰관에게 항상 가장 중요한 수사도구 역할을 하기는 한다.

 

어렸을 땐 전화번호부를 자주 뒤지고 놀았었다. 특이한 이름 찾기도 했었고, 우리집 번호가 어디있나 뒤지기도 하고, 각종 업종에 대한 궁금증도 많이 생겼으니 그 두꺼운 책이 어쩌면 유아기의자발적인 직업의식 발현의 장이 될 수도 있을 듯. 그런데 요새는 책을 찾기 힘들다. 인터넷 전화번호부를 검색해봤는데 그리 쓸만한(정확히는 놀만한) 것 같지는 않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차이는 이런 데에서도 문득문득 느껴진다.

 

그런데 갑자기 충동적으로 그가 번호를 누른다. 몸을 마비시키는 이런 비겁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뿐이다.

 

나 잘하는데 이런거...사실 Drive라는 건 나의 무의식( 또다른 나 라고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자아를 쪼개는 걸 나 스스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욕망하는 덩어리이고, 녀석들의 손을 들어줄 필요도 있는 법! 자칫하면 뭔가 어정쩡한 기분만 잔뜩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그녀는 또한 일전에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차에서 나눴던 대화, 즉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한 대화로 문이 열리는 것 같았지만 이내 닫혀버리고 말았다면서 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을 갈라놓고 있는 것이 벽이 아니라 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며 벽보다 더 나쁜것이 열쇠가 없는 문이라고 생각했다.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거나, 아니면 아에 열쇠가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문.

 

So, Give me the KEY

 

 

*) 마지막 헬레나의 행동에 대해.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가지 합의만 한다면 고생고생해서 쌓아올린 내 세계가 난도질당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는 지금 대들보이고, 또다른 의미의 KE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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