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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을까?

이상호 |2007.03.15 02:17
조회 20 |추천 1

                                     릭워렌의 성경을 통한 인생의 난제 해답

 

어떻게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을까?                       릭 워렌

 

우리는 매우 긴장되고 분주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염려의 시대라고 불러왔습니다. 우리를 긴장시키고 성급하게 만들고 마음의 평안을 빼앗아가는 상황을 늘 만나고 있습니다. 심장마비와 고혈압의 주요 원인은 긴장과 스트레스입니다. 매년 5억불의 안정제가 사람들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조제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긴장은 사실 해결되지 않은 갈등의 결과에서 오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과 일터에서 말다툼을 하였다고 하면, 당신은 그 사실을 말할 때까지 긴장가운데 있게 됩니다. 해결되지 않은 일들은 또한 당신의 삶 속에서 긴장을 초래합니다. 만일 당신이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면, 그것이 혼란스럽고 좌절시키는 것이라면 당신은 그 문제를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내적 평안의 사람 모세는 삶의 기본적인 문제들을 잘 결정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마음의 평강을 어떻게 향유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최상의 모범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올바를 결정을 하고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확정하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삶을 살 수 있었고, 엄청난 책임을 맡을 수 있었고, 그 책임의 중압감 아래서도 고요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모세가 구약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위대한 남자와 여자들이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의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히브리서 11장에서 모세는 어느 인물보다도 더 많은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과 평안을 누리는 방법을 알았고, 마음의 내적 평안을 어떻게 향유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긴장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바로 모세입니다. 그는 애굽 땅에서 2백만을 구출하여 광야를 지나 새로운 땅 이스라엘, 즉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내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위대한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고 논쟁하며, 서로 싸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약속에 들어갈 만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게 되었고 애굽에서 나온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는 실현된 그의 꿈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백성들을 불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있었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모세는 온유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연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온유함은 조용한 확신의 자세이고, 내적인 안정과 마음의 평안입니다. 온유함은 문제들이 복잡해질 때 당황하지 않고 초조하지 않게 만듭니다. 온유함은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로 달려올 때, 모든 사람들이 내 문제에 걸려있고, 일들이 복잡해지고 내가 초조하고 긴장할 수 있는 모든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을 때 나는 침착하겠다. 나는 화를 내지 않겠다”고 말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성경에서 오직 두 사람만을 가리켜 온유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과 모세입니다. 모세는 마음의 평안을 어떻게 향수하는가를 보여주는 제일의 모범자인 것입니다.

 

삶의 네 가지 문제들

 

모세는 어떻게 이러한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그는 자신과의 평강의 관계를 가질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모세는 위대한 원리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결정한 모든 결정은 삶의 기본적인 원리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감정으로 살지 않고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원리 위에 그의 삶을 세워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소한 법칙주의에 우리의 삶을 세워나가기를 원하지 않고, 위대한 원리 주위에 세워나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우리 모두 각자가 결국 당면하게 될 삶의 네 가지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쳐 싸우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십대이거나 노년이거나, 아니면 그 중간 어느 나이에 있든지 우리 각자는 결국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일 당신이 마음의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기 원한다면 당신은 마음의 평안을 가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당신이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는 방법과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강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정신적인 압박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히11:23). (애굽의 바로 왕은 애굽 땅에서 태어난 모든 유대인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그가 성장하였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그에게 상급이 있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애굽을 떠났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모세가 네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내가 누구인가”(24절)라는 질문, 두 번째는 “내가 참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25절)라는 질문, 그리고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26절)라는 질문에 대해서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네 가지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당신이 반드시 대처하고 나가야 할 문제들입니다. 여기의 중대한 문제의 모든 질문에 /모세는 올바른 반응으로 대처하였습니다. 그는 바른 결정을 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그를 존경하게 된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아십시오

 

모세가 첫 번째로 다룬 문제는 신분의 문제였습니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모세는 그가 장성하였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였습니다. 바로는 유대인의 모든 남자아이들을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를 갈대 상자 안에 아이를 숨겨서 나일강 갈대 하숫가에 두었습니다. 바로의 딸들이 목욕하러 와서 작은 역청으로 칠한 갈대 상자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 그 갈대 상자 안에서 유대인 남자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즉시 바로의 딸은 이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애굽의 궁에서 교육을 받게 하고 성장하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갈등의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는 사실 유대인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딸은 그를 애굽인으로 키웠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진실한 애굽인으로 생각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약 40세가 되었을 때, 그는 애굽에서 두 번째 높은 지위의 궁내관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중대한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나의 생애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내가 유대인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애굽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모세는 애굽의 궁에서 그가 원하는 만족한 삶을 살고 있었고, 그는 그곳에서 평생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분의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유대인인가? 아니면 애굽인인가? 나는 수 많은 유대인 노예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이 궁에서 있으며 호화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당신이 그런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하였겠습니까? 모세는 이 신분의 문제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80년을 광야에서 사는 대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우리 각자는 반드시 이 신분의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깊은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이 아닌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하면 곧 위궤양 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문제로 상당한 정신적인 압박을 계속 받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긴장과 압박을 알고, 그는 자신의 신분이 아닌 것을 가장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진정 그의 신분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신이 아닌 어떤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려고 노력하는 일을 중단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때 자유로워지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의 기초는 당신이 아닌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으셨고, 그는 당신 자신과 당신의 모습대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처럼 가장할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당신은 첫 번째 본래의 의도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모세가 궁중에 남아있었다고 하면 오늘 우리가 그를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어쩌면 그의 모습을 어떤 박물관에 있는 애굽의 미이라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결정을 하였고, 영원한 시간에서 볼 때 그는 최상을 결정을 한 것입니다.

 

몇 년 전 앤 머레이(Anne Murray)가 부른 “당신은 내가 필요했어!”(You Needed Me)라는 인기 있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 중에 한 절은 “당신은 나를 높여주고 나에게 존엄성을 주었다”(You lifted me up and gave me dignity)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분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신분과 함께 존엄성도 주셨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 관계한 모든 사람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나, 문둥병 환자나, 버림 받은 사람이나,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용납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너의 이름을 안다. 너는 인격자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단신이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일을 중단할 때에 당신은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다루었던 또 하나의 문제는 개인적 책임의 문제였습니다.

 

성경은 모세가 바로의 궁에서 죄악의 쾌락을 즐기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5절). 첫째로, 그는 자신이 아닌 사람이 되기를 거절하였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원리는 이것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다른 일을 하던 것을 중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떤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부정적인 법칙과 규칙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지 말라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하면 죽은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자격을 가진 자들이 될 것이다.”라고 농담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긍정적인 방법입니다.

 

여기서 다른 것을 주시해 보십시오. 모세는 “그가 장성하였을 때”(히11:24) 그의 결정을 하였습니다. 당신이 개인적인 책임의 문제를 감당할 수 있을 때 당신은 성숙하였다는 표시입니다. 모세가 어린이였을 때 그의 신분에 대한 결정을 연기하였다고 하면 그것은 자신에게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신분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책임을 지고,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그는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책임의 진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인기가 없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고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기를 좋아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1973년의 기름 파동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합니까? 미국 사람들은 아랍들의 탓으로 돌리고, 아랍 사람들은 기름회사의 탓으로 돌리고, 기름회사들은 미국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미국정부는 생태학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어떤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비난하기를 좋아하지 비난 받기는 싫어합니다. 당신의 상태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나는 만일 나의 가족이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리스도에게 더 많이 헌신할 것이다.” “만일 내 남자 친구나, 또는 여자 친구나, 또는 어머니나, 또는 아버지가, 또는 남편이나 아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겠다.” “내가 만일 좀더 훌륭한 부모님을 만났다면 오늘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모세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의 삶을 중요한 삶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물론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임의로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태어난 고향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신체의 성이나 모습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절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당신의 반응입니다. 당신은 삶에 대해 부정적으로, 비판적으로, 반응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려고 합니까? 그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 당신은 당신 앞에 오는 모든 삶의 환경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이 당신을 더 심한 사람이 되게 하든지, 아니면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책임입니다. 당신 외에는 당신의 삶을 파멸시킬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마귀는 당신의 삶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마귀에게는 그만한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파괴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당신 자신만이 당신의 삶을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으로 인해 당신에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어떤 사람이 말하길 그가 거기에서 배운 한 가지는 그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이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그 일에 대한 반응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마음을 주지 않는 한 그 마음을 빼앗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 자신의 마음가짐에 대한 책임을 당신이 진다고 하면 당신은 마음의 진정한 평안을 향유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결정하십시오.

 

모세가 직면했던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받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25절).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모세는 우선 순위의 문제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그는 삶에서 진정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본다고 하면, 젊은 모세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최대의 권세와 최대한 쾌락과 최상의 재물들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세상의 보화 대부분이 애굽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모세는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것들, 권세와 쾌락과 재물을 다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것들 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때 모세는 그 말씀대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삶의 우선순위의 문제였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아들의 공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그는 커다란 권세의 위치에서, “노예들의 상태가 악하다. 그러므로 내가 이 제도에 남아서 개혁하는 일을 하여야 하겠다”고 합리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세에게 “거기에서 나와서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공동체에서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는 인기의 문제인데, 이 인기는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당신은 캠퍼스서 잠시동안은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 몇 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캠퍼스에 돌아가면 당신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인기는 오래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쾌락이라는 것은 언제나 있습니다. 쾌락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쾌락이 당신의 하나님이 되지 않는 한 쾌락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쾌락에 빠진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오직 단 한번의 생을 삽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쾌락을 즐기는 것이 좋다.””당신 자신의 일을 하라.””기분 좋은 대로해라.” 그러나 쾌락에도 또한 문제가 있습니다. 즉, 쾌락도 오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올바른 가치관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세상의 잠시 쾌락을 버린 것입니다. 그는 더 차원 높은 것에 비전을 두고 있었습니다.

 

돈을 소유하는 것이 본래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위대한 성도들 가운데는 엄청나게 부유하게 살아간 욥, 아브라함, 다윗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생명이 그가 소유한 물질의 풍성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 12:15). 부유만 가지고는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부유한 자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행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있어야 합니까? 보통 조금만 더 있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돈을 사용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랑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물질은 이용하고 사람은 사랑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물질을 사랑한다면 사람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그의 우선 순위를 바르게 정하였습니다. 그의 삶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들을 버린 것입니다.

 

당신의 어려움을 인내하십시오.

 

모세가 해결했던 마지막 문제는 인내의 문제였습니다. 모세의 삶을 두 마디로 거의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참았습니다(히 11:27). 고통 없이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며, 반대가 없는 전진도 없으며, 문제가 없이는 발전도 없다는 것이 삶의 진리인 것입니다. 이 인내의 문제에서 어려움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모세가 그의 삶에서 성공한 것은 그가 참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는 모든 삶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어려움에 대해 어떻게 바르게 대응하며 전진해 나가는가를 알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는 결코 문제가 우리를 파괴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문제가 오히려 우리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인들은 문제가 무릎을 꿇게 만드는 일 외에는 당신을 삼켜 버리도록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이러한 상황을 우리의 삶 속에 허락하는 것입니다. 인내함이 없이 당신은 삶 속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마음의 평안은 당신의 삶 속에 모든 책임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우선순위를 선택하고,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인내할 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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