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역겨움에 치를 떨게 된다. 누구하나 제대로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의 길을 가기는커녕 손가락질만 받다가 쫒기듯 도망쳐 은둔한 주제에 스스로 굉장한 영향력을 갖기나 한 것처럼 지금도 한국정치를 좌지우지하려는 안하무인격으로 나대는 꼴이 더럽고 치사하다. 그래서 벌써 10명 가까운 대통령이 나고 지고했건만 어느 대통령이건 출발선상에는 그나마 인기있는 대통령이다가 떠날 때는 그놈이 그놈이라는 소리를 듣고 마는 이상한 전통이 생긴 것은 아닌가!
그 중에서도 특히 범여권의 단합을 강조하면서 지역감정과 이념갈등의 꼬리자락을 감싸 쥔 채 노망끼를 발산하는 DJ의 노회함에는 태아시절의 궁물 마저 게오르게 하는 묘한 무엇인가가 있다. 이른바 슨상님의 힘이랄까, 그리고 그 힘을 좀비처럼 되살아나게 만드는 슨상족과 슨상빠들이 있다. 거기에 통일전선전술이나 국공합작의 비참한 결론은 아는지 모르는지 스스로 삼합의 양념이기를 자처하면서 논개처럼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기억 저 편에서 자꾸만 되살아나는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이 있고...
하나는 살아있고 하나는 죽었는데 산 자와 죽은 자, 살아서는 그리도 원수 같던 둘 사이의 이승과 저승간 화해를 주선하고 그 대가로 대통령이 되려는 선무당은 또 누구란 말인가? 선무당만이 아니라 선백수(무당)도 있다. 선무당은 대통령이나 되려고 사람 잡는다고 하지, 이놈의 잡것 나도 사람 못 잡을 이유가 없다고 난리치는 선백수가 화해시키려는 대상은 죽은 수령과 죽은 대통령, 그리고 산 전직 대통령 간의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3자 화합이니 그야말로 신삼합이 아니고 무엇이랴.
선무당이야 대통령하려고 사람 잡는다고 치자. 선백수는 대통령도 이미 해봤는데 뭐 더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난리부르슨지 알 길이 없다마는 아직 남은 게 있다면 혹 상왕자리가 아니겠는가? DJ슨상을 능가하는 명실상부한 좌파 상왕자리를 위해 원 포인트 개헌에 목숨 걸고, 남북정상회담이든 남북평화협정이든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원 포인트 개헌이야 국가와 민족을 위해 했다고 치자. 본인 말이니 믿어주겠지만, 하다 안 되면 그만이지 각 당이 차기에 추진하겠다고 합의해주고 차기 대선주자들이 동의한다면 발의를 유보하겠다니 벌써 대통령직을 떠나기도 전부터 상왕노릇이나 하려니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요, 참으로 우아한 착각이다. 원포인트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을 떠나 노 대통령의 유보 가능성 발언 자체가 아주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첫째, '원 포인트 개헌'이든 뭐든 개헌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인데, 그런 논의에 앞서 무조건 개헌은 당위성이니 임기 중에 꼭 해야 되고, 그게 아니면 차기에서 꼭 한다고 약속하라니 그런 독재적 발상이 어디 있는가? 박정희의 유신헌법 때도 그랬고, 전두환의 내각제 개헌 때도 그랬지만 자기들 시안의 장점과 그 반대 경우의 단점을 놓고 비교하는 것은 비교가 아니라 강압이다. 그럼에도 그때는 밀어붙이기는 했어도 꼭 지금 하지 않으면 역적이라는 토를 달지는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해야 된다는 자신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지만 왜 지금 해야 하느냐는 반대주장이 맞을 수도 있는데 자기주장만 하는 것이야말로 독선이다.
둘째 '원 포인트 개헌'으로 모든 개헌문제나 필요성이 해소되는가 하는 점이다. 내각제 문제도 있고, 부통령제도 있을 수 있고 그 밖에 여러 가지 현안이 담겨야 할 것인데, 지금 원 포인트 개헌을 하고 나면 또 언제 나머지 문제들을 위한 개헌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4년으로 맞추더라도 시종을 똑같이 하는 것이 능사인가 아니면 중간에 2년 간격을 두고 교차로 하는 게 견제와 균형 차원에서 필요하지는 않은가 생각도 해봐야 할 일이다.
정부가 대통령 4년 연임제 원 포인트 개헌 시안에 대한 본격적인 대국민 홍보에 나서고 각종 토론회를 거쳐 찬반여론을 수렴한다고 하니 두고 볼 일이지만, 노대통령 말대로 자신이 있고 당위성도 있는 것이라면 여론이 원할 것이고 국회에서도 통과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개헌의 필요성이 없다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면 지금 꼭 할 일도, 차기 대통령이 꼭 하겠다고 약속할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자세로 강권하지 말고 정상적인 헌법 절차를 거쳐 진행하기를 바라며, 그렇지 않고 이상한 술수를 부린다면 차기 대권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좌파 정권의 연장후 그 상왕으로 남겠다는 탐욕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요, 자신과 한줌 좌파의 영속된 집권을 위한 것임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