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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의 변천사, 저항수단에서 표구걸까지...

최용일 |2007.03.28 13:39
조회 92 |추천 0

김근태.천정배의 단식, FTA 반대인지… 대선 불때기인지…

 

한 때 단식이 혈서와 함께 독재 정권에 대한 선명한 투쟁의 수단으로서 상징성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언로가 막힌 그 시절, 그것만이 최후 저항수단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공감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 단식은 ‘정치 쇼’라는 비판이 많다.


언로개방이 지나쳐서 사생활 침해수단이 되고 있는 대명천지가 되었는데 그런 고단위 처방을 하는 것이 최소한 쇼는 아니라 해도 엄살이라고 한다. 시대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투쟁수단도 변해야 하고 사람도 변해야 한다. 심지어는 한때 인기를 끌었던 몰래 카메라가 지금은 짜증나는 프로가 된 것을 보면 알 것이다.


그런데 단식이 무슨 말라비틀어진 놈의 단식이란 말인가? 그것도 무소불위 유아독존의 권력을 어제까지 행사하던 여당 고위급 당직자들이. 무슨 코메디 프로 보는 줄 알았다. 최근에 모 통신업체에서 [쇼를 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내고 있지만...  


27일부터 시작"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라며 한·미 FTA 체결에 반대하는 단식 농성을 시작한 김근태 열린당 전 의장. 그는 작년 9월 “FTA협상에 찬성하면 친미, 반대하면 반미라는 식으로 규정하면 안 된다”며 FTA를 강력히 추진했던 사람 중 하나인데, 상황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현 정권에서 FTA를 체결하려면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말하고 있으며, 막바지에 이른 FTA 협상 테이블 앞에 드러눕겠다고 한다.

 

 


김근태에 하루 앞서 26일부터 단식을 시작한 천정배 전 법무장관은 '한미FTA 역전시나리오'라는 책 하나 달랑 든 채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밤을 하얗게 지샜다고 한다. 그도 작년 7월 “한·미 FTA는 우리나라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라고 하며 FTA를 강력 추친했던 자이기는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대어급 단식가의 등장으로 김샌 인간들이 있었으니 문성현 민노당 대표와 열린당 임종인 의원이다. 

 

 

아무튼 이들 4대악동들의 단식 농성 현장엔 취재진은 물론 여권 및 민주노동당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28일 개성을 찾기 전 이들을 찾아 격려한 정동영 전 열린당 의장까지 어느 한 작자도 제 정신이 있어 보이질 않는다.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셋 모두 열린당 창당 주역이자 주요 당직자 출신이며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 범여권의 실세(實勢)인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부에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최근까지 FTA를 적극 추진했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애매한 입장만 보였는데, 갑자기 180도 돌아선 것이다.


그들의 뜻 모를 변절의 이유를 굳이 찾고자 한다면 그저 한 표 구걸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김근태가 정동영에게 “나는 여기서, 정 전 의장은 개성에서 지렛대가 되자”고 했던 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FTA 반대’와 ‘평화공세’를 통해 기사회생의 기회를 찾자는 다짐처럼 들렸다.

 

단식, 그거 개나 소나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하긴 뭐 애들은 엄마가 자기 말 안 듣는다고 하고, 철부지 여자 애들은 살빼기 위해서도 하지만 그래도 단식하는게 자살하는 것보다는 낫다 싶다. 그러나 과거 정치인의 단식은 언로(言路)가 통제된 상황에서 민주화·인권 등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쓸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1983년 야당 지도자로 가택 연금돼 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민주화 요구 단식투쟁, 1990년 ‘내각제 포기, 보안사 해체’를 요구했던 김대중(DJ)의 단식투쟁 등은 군부 신군부의 압제에 맞서기 위한 당시로서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며 진정성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뤄졌고, 정치적 의사표시 방법에 제약이 없어진 지금, 민노당 등 좌파 정치인들이 간헐적으로 하는 단식은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것이고, 그래서 ‘정치 쇼’, ‘구태’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고 과거와 달리 공감을 얻지도 못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 정권 출범 후 자신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바꿀 수 있는 여당이면서도 툭하면 단식하는 일이 빈발하여 ‘무늬만 여당, 실질은 재야’란 비판마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근태는 단식 중 기자들에게 "내 마음 속의 울림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단식밖에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울림이 왜 정권 실세로 있을 때는 안 느껴지다가 팽 당하면서 느껴졌는지 궁금하다. 천정배 역시 풍천노숙과도 같은 단식농성을 하면서 별을 헤는 마음으로 역시 FTA의 반전이 아니라 사실은 대선가도에서의 그런 역전을 그렸을지 모를 일이다. 정동영이 개성을 찾아가면서 느끼는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면서까지 자기들이 싸놓은 똥을 치우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가상하기보다는 역시 그 똥만큼이나 지저분해 보인다. 그러니 한나라당이나 여론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열린당에서조차 비난 일색이 아니던가. “정치인들이 머리 깎고 단식하는 게 과연 좋은 것이냐”고 말한 정장선 의원, “협상을 시작할 때는 국무회의에서 반대하지 않던 분들이 이러는 게 적절한 것이냐”는 윤호중 의원의 비난은 대통령까지 하겠다는 자들의 무책임한 국정 농단에 대한 비난으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대선) 지지율이 안 오르니까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단식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는 수도권의 한 열린당 의원의 말을 그들은 더 창피해하고 주홍글씨처럼 새겨야 할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FTA 반대 단식 농성을 통해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켜 지지도 반전을 꾀하려는 것이겠지만, 정세균 의장을 비롯한 현 열린당 지도부와 친노(親盧) 진영이 FTA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는 만큼 FTA 찬반 입장에 따른 2차 빅뱅(big bang·대폭발)이 여권을 산산조각낸다면 애써 구걸하고도 쪽박만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근태는 "국민들을 대립과 혼란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면서 한미FTA 협상 중지를 촉구하고 있다는데, 그런 자신의 이유없는(아니 권력 지향의) 변절이 국민들을 더 큰 대립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대단합을 하더라도 재집권할까 말까 한 범여권에 일대혼란을 주고 거기 어떻게 한 자리 끼어들까 하는 생각을 가진 낭인들에게도 상당한 심적 부담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범여권 대선 주자들이 갑자기 FTA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진짜 이유는 ‘나라 걱정’이 아니라 ‘표 계산’ 때문일 것이다. FTA에 반대하는 범여권 주자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10%가 안 되겠으니 FTA 반대 깃발을 쳐들어 좌파 진영의 지지를 결집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FTA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건 정치적 소신이고 신념이니 따지고 싶지 않지만, 대선주자들 모두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FTA에 찬성하는 사람이면 협상 통과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방하지 않고 한국을 어떻게 선진국으로 만들 것인지를 각각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으니 여권 대선주자들에게 특별히 말해줄 것이 있다. 아무리 구걸이라지만 떡줄 사람 표정이라도 보고 김칫국물 좀 마시던지 하라고 충고하고 싶은 것이다. 국가 미래를 책임지겠다면서 어찌 남아일언 중천금의 뜻도 모르는 채, 자기 스스로 주홍글씨나 새기고 있는지, 그런 인간들을 국민들은 가소롭다 할 것이다. 몇 달 전에 가졌던 소신을 180도 바꾸는 인간들에게 어찌 5년을 맡기겠는가? 주홍글씨나 새기지 말고 내 말부터 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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