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발렌타인 데이의 기원

김미순 |2007.03.29 23:35
조회 24 |추천 0


발렌타인데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고대 로마의 루퍼칼리아라는 축제에서 비롯됐다고도 하고,
초대 기독교의 발렌타인 성자와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또 고대 영국에서 2월 14일에 새들이 짝짓기를 한다고

믿은 데서 비롯됐다는 말도 있다.
아마 이 세 가지가 혼합되어 연인들의 계절인 봄이 오는 것을
발렌타인데이로 맞게 되었을 것이란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발렌타인데이의 역사고대 로마에서는
늑대의 공격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지내기를 기원하던
루퍼칼리아라는 축제는 2월 15일에 열렸는데,
젊은이들은 짐승 가죽을 쓰고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여자들은 채찍을 맞았는데 아이를 더 많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A.D. 43년 로마가 영국을 정복한 이후

영국은 로마의 축제를 많이 따랐는데,
이 루퍼칼리아 축제가 날짜가 비슷하고 다산을 빌었기 때문에
발렌타인데이와 관련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초대교회에는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자가 두 명 있었다.
한 사람은 A.D. 200년 경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2세 시대의 사람인데
당시 황제는 더 용맹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

젊은 남자가 결혼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발렌타인이라는 사제가 황제의 명을 어기고
젊은 연인의 비밀 결혼식을 올려주었다고 전해진다.
또 하나는 초대교회 시절 많은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발렌타인이라는 사람이

로마의 신을 경배하지 않는다는 죄로 감옥에 갇혔을 때,
어린이들이 그를 그리워하여 감옥 창살로
사랑을 담은 쪽지를 던져넣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부터 발렌타인데이에 카드나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또 A.D. 296년 2월 14일에 발렌타인이 순교를 당했으며
A.D. 496년 교황 겔라시우스1세가

이날을 발렌타인 성자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한편 프랑스 로르망디 지방에서는
중세시대에 연인들을 일컫는 galantine이라는 단어가

valentine과 발음이 비슷해 발렌타인데이가

연인들의 날로 인식되게 됐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발렌타인데이에 관한 오래된 기록에 의하여
오늘날과 같은 달력을 쓰기 시작한 1582년 이전에는

2월 14일이 오늘날의 2월 24일인데,
그날 새들이 짝짓기를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초기의 발렌타인데이 풍습영국 사람들은

1400년경부터 발렌타인데이를 지켰다.
역사에 의하면 발렌타인데이에 사랑의 글을 보내는 풍습은
1415년 영국에 포로로 잡혀간 프랑스 오를레앙의 공작인
샤를르가 발렌타인데이에 런던탑 감옥에서
부인에게 사랑의 시를 보낸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발렌타인데이 풍습에는 처녀들이
장래의 남편을 알고 싶어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많다.
1700년경 영국 처녀들은 남자들의 이름을 쓴 종이를 말아
각각 작은 그릇에 넣어 물속에 던져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의 남자가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영국 중부에 있는 더비셔 지방에서는
처녀들이 한밤중에 진정한 사랑이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르며
교회 주위를 3바퀴 혹은 12바퀴 돌았다고 한다.
또 오래된 풍습 가운데 남자들은 여자들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항아리에 넣어 뽑아 그 이름이 자신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였다.
이 여인에게는 장갑이나 장신구 같은 선물을 보냈으며
며칠 동안 소매에 그 여인의 이름을 적은 옷을 입고 다녔다.

낭만적인 글을 적어 보내던 풍습은 차츰 선물로 바뀌어갔다.
1700년에서 1800년 사이 상점에서는 발렌타인데이에
연인에게 보내기에 좋은 글을 모아놓은 책을 팔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발렌타인데이를 위한 상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영국에서는 케이트 그린어웨이라는 화가가 그린 어린이들과 연인들의 그림이 있고 그 안에 글을 적을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는 예쁜 카드가 유행했다.

미국에서는 메사츄세츠의 에스더 A. 하우랜드가

최초로 발렌타인데이 카드를 만들어 팔았다.
1847년 그녀는 영국의 발렌타인데이 카드를 보고
미국에서 만들어 팔기로 하여 상점에서 주문받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손으로 직접 그리고

꽃이나 리본 레이스 모조보석 등을 붙여 만들었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발렌타인데이를 겨냥한

상품은 다양해졌고 그 수요도 증가하여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상업적 이슈가 되었다.
애정어린 글을 담은 카드와 꽃다발, 쵸콜릿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날.
남녀노소 대부분의 사람들은 2월 14일을
이렇게 큐핏의 화살 같은 이미지를 가진 사랑을 표현하는 날로

기억하며 보낸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오늘날의 발렌타인데이의 기원이

어떤 사건인지 안다면 놀랄 것이다.
이날은 예전에 발렌타인 성자를 기리던

종교적인 절기였기 때문이다.
큐핏이라는 이교 신화의 주인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래 전 기독교인들에게는

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기리던 날이었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발렌타인 성자는

A.D. 270년경 로마 근교에 살던 사제였다.
당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2세는
로마의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로 기독교인들을 잡아 가두었다.
이때 발렌타인 성자도 한쌍의 기독교 젊은이들의 결혼식을

올려주었다는 이유로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이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을 돕다가- 잡히게 되었다고 한다.
법정에서 로마의 신 쥬피터와 머큐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것들은 모두 거짓된 우상이며 예수께서 하나님이라고
대답했다가 다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했는데 눈먼 소녀를 입양하여

키우고 있는 어느 착한 간수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는 발렌타인 성자에게 자신의 딸이 앞을 볼 수 있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고,
발렌타인의 기도로 소녀는 눈을 뜨게 되자
그의 가족과 친지 46명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을 보고 발렌타인은
감옥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를 드렸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감옥에서까지 복음을 전하는

발렌타인에 진노하여 그의 목을 베어 처형했다고 한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