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명의 조명아래 앉았다.
발리의 덴파사르공항을 떠나 티모르의 쿠팡에 발을 내딛은 뒤,
동티모르를 향하여 뜨거운 대지와 산야를 달렸었다.
쿠팡, 소에, 니키니키, 케파르를 지나 인도네시아의 최후 도시인 아탐부아까지는 수많은 산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종종 내리는 저녁 한때나 야밤은 으스름하기만 하였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동티모르로의 접근이 가까와지면서 달밤이 밝게 따라주었다.
달밤에 야자나무, 달밤에 코코넛 나무는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래도 인도네시아의 영내는 괜찮았다.
동티모르에 발을 넣기까지는 그저 그러려니 낙관적이었다.
아탐부아를 지나 30여 킬로정도 남은 거리의 중간에는 아름다운 절경의 산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탐부아 도시를 야간에 지나서 산을 넘을 무렵엔 새벽 미명을 발치에 두었다.
곤충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고요함만이...
그렇게도 치열하다고 듣던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국경엔 평온함과 전원적 정적이 가득하였다.
어느 곳에서도 무장병력이나 긴장감은 간파되질 않았다.
뜨거운 태양이 해변의 어선과 마을의 집들을 확확 달구고 있었으며 서로의 머리를 손질하여주는 아낙들의 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동티모르측 국경의 첫도시는 바투가데였다.
해안을 따라 서로 마주보고 있는 양측의 초소는 초라하고 한가로왔다.
국경을 지나는 손님(?)들마저 거의 없었다.
양측 국경입구에는 오토바이만이 승객을 한가로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은 이글거리는데 피할곳은 거의 없어 마스크를 고쳐 쓰며 햇살을 가리려 노력할 뿐이다.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까지 이르는 도로는 해안을 따라 깔려있는데 중간에 몇개의 작은 도시가 이정표 역할을 하였다.
코발트빛 진한 바다와 해양이 도로의 왼편으로 내내 따라왔다.
적막과 고요가 지배하는 마을들이 간간히 나타나서 인적과 인기척을 느끼게 하여주었다.
국경으로부터 딜리까지는 쿠팡에서 아탐부아까지의 거리인 370킬로의 중간에도 미치지 않는 120여킬로였다.
그러나 문제는 왕복을 하여 다시 쿠팡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딜리에 있는 인도네시아 대사관서 비자를 다시 발급받아 돌아와야한다.
동티모르 비자는 국경서 30달러를 지불하고 즉시 발급 받을 수 있으므로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
딜리를 제외하고는 쌀을 구경하질 못하였다.
그렇게 흔하던 나시아얌(닭고기를 얹은 쌀밥),나시 참푸르(몇개 반찬을 얹은 밥),나시고렝(볶음밥)등은 먼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주식이 자궁(옥수수)이었다.
딜리에는 그나마 호텔과 식당등이 구색을 갖추고 있었으나 호주인과 유럽인들의 발길에 맞게 고물가였다.
팔라우와 마찬가지로 미국화폐를 사용하였는데 아주 지저분한 화폐로 거래되었다.
미국돈도 동티모르의 손에서는 참으로 구질주질한 모양으로 손떼가 탔다.
딜리에서는 호주인이 경영하는 '백페커'에서 10달러짜리 도미토리에 들었다.
간첩처럼 딜리로 들어가 스파이처럼 행동하다 특공대처럼 빠져나와야 하는 동티모르는 매체에서 접한 것 이상으로 처참하였다.
딜리에서 한번 쌀밥을 먹어보고는 3일간 쌀밥을 대하질 못하였다.
때가 되서도 음식조리하는 냄새가 없는 동티모르의 마을이었으며 식당의 모습을 가진 건물조차 보이질 않았다.
거리와 들판엔 온통 돼지와 소, 그리고 개와 닭들이다.
모두가 먹을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으며 딜리에서는 개를 잡아먹는 몇몇 젋은 동티모르인을 발견하였다.
동티모르를 벗어나 다시 아탐부아로 돌아오자 세끼분을 한끼에 먹으려고 주문을 하였다.
먹다가 한동안 수저를 내려놓았다.
눈가가 뜨거워져왔으며 음식을 넘기질 못하였다.
동티모르인이 떠 올랐으며 아직 북한에 들어간적이 없는 나이지만 마치 북한을 다녀온 기분이다.
이것이 북한주민의 현실이 아닐까?하는 기분이 순간 머리를 감싸고 돌았다.
덴파사르 공항으로 돌아오자 즉시 다음 여정지인 자야프라행 항공권을 예약하였다.
파푸아 뉴기니아의 포트모르스비로 가기위하여는 필리핀, 싱가폴, 대만을 경유하는 방법밖에 없었다(항공편).
그래서 택한방법이 일단 인도네시아의 파푸아에 있는 거점도시인 자야푸라로 가서 차선을 모색하여 한다.
방법을 찾지 못하면 다시 발리로 돌아와야하는 상황이 발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