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페트(The forbidden pet) -
이 름 배진국
제 목 금단의페트 - promise -
Chapter 5. 믿고 싶지 않는 것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조금 오래된, 그러니까 내가 일곱, 여
덟 살쯤 되었을 때였다. 그 때의 나는 정말 어리고, 생각없고,
당돌한 꼬마였었다. 툭하면 말썽이나 부리고, 동네 남자 아이
들끼리 싸우고 해서, 아버지가 거의 매일마다 사과하러 동네를
돌아다니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동네 아이들에게 따돌림받은 것에 발끈해
서, 여러 명의 남자 아이들과 박 터지게 싸운 후였다. 악을 써
서 싸운 덕분인지, 싸움에는 이겼지만, - 어린아이치고는 나는
꽤 실전 경험이 풍부했다. -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평소보다 더
심각하게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이마는 찢어져서 피가 나고
있었고, 몸 여러 곳은 멍들거나 까지거나 해서 볼품없고, 어떻
게 보면 처절하기도 한 그런 상태였다. 나는 마을 근처, 숲에
있는 시냇물에서 피와 상처를 씻고 있었다. 쓰라리고, 참기 힘
들 정도로 아팠었지만 나는 울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싸움에
이겼으니까, 그래도 지지는 않았으니까 속으로 내심 약간은 흐
뭇하게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중, 어느새 그런 나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말
했다.
'참, 형편없는 몰골이구나.'
얼굴과, 몸 이곳저곳에 보기 흉할 정도로 흉터가 난 그런 사
람이었다. 하지만 생김새와는 다르게 목소리는 부드러웠던 걸
로 기억된다. 그의 말을 듣고, 발끈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나에게 접근한다면 아저씨는 더 이상 자식을 낳지 못할
지도 몰라요. 제 이빨은 늑대처럼 날카롭거든요.'- 아마 맹세
코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꼬마는, 이 대륙에서 나 혼자뿐이
었을 것이다. - 그 사내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주춤하며 당혹스
러워하더니, 정말 유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내 평생 그런 말하는 꼬마는 처음이구먼.'
사내의 말이 자신을 조롱하는 줄만 알았던 나는 울컥한 마
음에, 이빨을 갈며 적의를 나타냈지만 아무리 막가는 아이라고
해도, 그렇게 크고 무서워 보이는 사내에게 달려들지는 않았었
다. 그래도 자신의 분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코웃음치고, 등을 돌리며 다시 상처와 먼지를 씻는 일
에 열중했다. 그런 내가 귀여워 보였었는지 사내는 어느새 내
등 뒤로 다가와 주문을 캐스팅했다.
'가벼운 상처 치료(cure light wound).'
당황한 나머지 피하려 했지만 그의 따스한 손길이 닿으니,
어느새 상처는 아물고 있었다. 멍해진 나는 그렇게 얼빠진 표
정으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보다 더욱더 강해지기 바란다, 꼬마야. 그렇다고, 싸움
을 잘하라는 게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도록 강해지
라는 말이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내게서 등을 돌리며, 숲 속 깊은 곳으
로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사의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
만, 나는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
다.
"…잠꾸러기."
귓가에 따스한 숨결이 느껴지는 바람에 나는 그렇게 무겁게
감기어진 눈을 뜨며, 꿈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
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누가 옮겼었는지 몰라도 침대에서 편하
게 누워 있는 내 자신과, 그리고 옆에서 누워 그런 나를 바라
보는 시아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꿈이었던 것인가. 생각조차 하기 힘든 먼 과거의 일이다. 평
소에 꿈이라고는 거의 꿔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당혹스럽기도
하다. - 기르디에게 엉망으로 터진 날은 제외하기로 하자. -
하여튼 오래간만이구나, 시아 녀석이 침대에 숨어 들어오는
것도. 요즘엔 통 대화조차 나누어 보질 않았으니까…
"사, 상처는?!"
그게 문제가 아니다! 녀석은 어제까지만 해도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피를 토하며 발작을 했었던 것이다! 먼
과거에 있었던 꿈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내가 막 그렇게 녀석의 머리를 만져 보기도 하고, 맥박을 재
보기도 하는 호들갑을 떨자, 갑작스레 문이 열리며 아이린 씨
가 들어왔다.
"다 나았으니까 그렇게 호들갑 떨 필요 없어!"
그렇게 심하게 발작을 했는데, 하루 만에 다 나았다고? 내가
막 그렇게 질문하기도 전에 시아 녀석이, 자신의 머리 위에 올
려진 내 손을 마주 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제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진짜 괜찮은 건가. 속으로 아프고 괴로우면서 거짓말하는 것
은 아닌가?
"으이구, 진짜로 괜찮다니까! 하여튼 내려와서 밥이나 먹으
라고.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있을 꺼야? 그리고 이미 학교 가기
에는 너무 늦은 거 같으니까, 오늘은 시아랑 같이 푹 쉬라고.
내가 보기에는 시아보다 네가 더 아픈 사람 같으니까 말이야."
아이린씨는, 나와 시아가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대의 시
트를 벗기며 품에 안아 들었다. 그렇게 되니, 나나 시아나 어
기적거리며 일어나서, 몸을 씻기 위해 걸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제 너무 무리해서 몸 이곳저곳이 욱신거리며, 아프
기도 해왔지만 그것보다는 시장기가 더 강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잠들어서, 오후 늦게 잠에 깬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충 몸을 세수를 하며, 몸을 씻고 식당에 내려가 보니 조촐
하지만 그래도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져 있는 것이 보였
다. 나와 시아는 자리를 잡고 앉은 후, 기분 좋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럭저럭 깨작거리며 먹고 있는데, 왠지 시아 녀석이
더 맛있게 퍼먹는 거 같아서, 왠지 좀 속상하기도 했다(..). 참
저 녀석은 어제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가? 웬만한 사람
이라고 하면, 그렇게 심하게 다치거나 하면 식욕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말이다.
"좀 깨끗하게 먹어라."
입가에 소스를 묻히고, 포크질도 서툴러서 주변에 음식을 흘
리는 것을 보고 내가 핀잔주자, 입을 살짝 내밀고 '흥'하고 코
웃음친다. 왠지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며, 분노라는 감정이 치
밀어 오르는 것이…. 하여튼 이렇게 건강하게 식사하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겨우 마음이 놓인다. 저렇게 얄미워 보여도
오늘만은 웃어 넘겨주자. 그렇게 생각하며 나도 제대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그렇게 끝마치고, 역시 나와 시아는 식당 일을 해야
만 했다.
이 식당이란 곳이, 워낙 그렇게 수도 내에서 인기가 있는 편
이라서 거의 매일마다 손님들이 와글와글 거리며 식사와 음료
를 즐기는 덕분에, 나 같은 종업원 하나만 빠져도, 남아 있는
식당 사람들 전부가 그만큼 할 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어제도 이미 하루 동안 식당 일을 쉰 상태였다. 기르디나, 아
이린 씨나 하루쯤은 더 쉬어도 좋다고 했었지만 나와 시아는
그냥 미소 지으며 거절했다. 얹혀 사는 주제에, 그렇게 쉬는
것도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녁 내내 힘들게
일하고, 시아는 잠자러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고, 난 검술
연습을 하기 위해, 뒤뜰을 향해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쉬고
싶었지만, 연습이란 것이 원래 조금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어제는 시아 덕분에 연습도 하지 못하고 잠
들었으니까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막 그렇게 힘들게 연습하고 있던 도중, 어느새 기르디가 기척
도 없이 등뒤로 다가와 말했다.
"검을 쥔 손에 더 힘을 줘라. 강한 파괴력은 악력과 속도가
좌우하니까 말이다."
땀을 닦으며 뒤를 돌아보자, 거만하게 팔짱을 낀 체 나를 날
카로운 눈으로 주시하는 기르디의 모습이 보였다.
"… 물론 아직 너에게 정확함이나, 기교를 바라는 것은 아
니니까."
반박하고 싶지만, 그래도 내 주제를 아는 이상 가만히 있는
게 좋다. 내 자신의 실력은 나 스스로가 뼈저리게 알고 있었던
사실이니까 말이다. - 그래도 실은 나중에 두고보자, 하고 속
으로 생각한다. -
"두고보라고요, 반드시 강해질 테니까 말이죠."
기르디는 내 말을 듣고 피식하고 웃었지만, 나는 심각한 표
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시선을 검으로
돌린 후 작은 소리로 그렇게 말을 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도록 말이죠."
코웃음칠 거 같았던 기르디였지만, 의외로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등을 돌린 체 식당 안을 향해서 걸음을 움
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시선을 돌리고 다시 검을
휘두르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막 연습을 재개하려고 할 때에 기르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은 나아진 것 같군."
고개를 돌려보니, 문을 열고 식당 안을 들어가는 그의 뒷모
습이 보일 뿐이었다. 저 녀석도 칭찬이라는 것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오는 순간이었다
* * *
철커덕-하는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시야에는 하나 둘
씩, 조금은 익숙해진 얼굴들이 사로잡힌다. 안면이 조금있는
아이들과는 눈인사 정도 하며, 그렇게 나는 터벅터벅하고 내
자리를 향해서 걸음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몰라도
지금은 내 위치를 어느 정도 잡은 상태였다. 말을 걸어오거나,
친해지기 위해 접근하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유치하
게 특별히 따돌리거나 비아냥거리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평
민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내게는 약점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까 말이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행실이 올바르지 않
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성격이 나쁜 것도 아니었으니까 말
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별로 꼬투리 잡을 것조차 없는 것이다.
학기 초에는 시비를 걸어오는 머리 나쁜 녀석들도 드물지 않
게 있었지만, 단지 신분과 지위가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
를 무시한다는 것은, - 게다가 나를 무시하거나 욕하려고 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성적도 나보다 아래고, 검술도 형편없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자신만 낮
추는 결과를 낳는 한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던 것
이다. 물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쏟은 노력이라
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
었다. 평균적으로 네, 다섯시간 정도만을 잠잘 수 있었고, 학교
에서는 정신을 집중해서 수업을 들어야만 했었다. 식당에 돌아
와서는 식당 일을 도와야 했고, 그것을 끝내면 또 검술 연습을
해야만 했다. 피를 말리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사나
이가 칼을 꺼냈으면 야채라도 썰어야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비유 같기도 하지만 - 일단 이곳까지
온 이상,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종합적으로 성적을 계산해서, 일 학년에서 이 학년으로 올라
가는 것만 해도 반수 이상이 탈락되는 이곳은, 졸업할 수만 있
어도 탄탄대로의 인생을 보장받는 그런 곳이었다. 학년을 진급
할 때마다 반수 이상의 탈락자가 나오고, 또 그 탈락된 자 중
에서 반수 이상이, 자퇴서를 제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진급할수록, 실력 심사는 더욱더 철저하고 엄격해지기 마련이
다. 최후까지 가서는, 같은 또래의 나이라고 상상조차 하기 힘
들 기량을 소유하게 되니 말이다.
사실 어느 정도만 진급한다면, 그 실력을 인정받아 유명한
기사단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었다. - 인재를 가지
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
대충 자리로 앉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에이딘 선생이
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에이딘 선생은, 평민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나를 다른 아이보
다 무시하거나, 혹은 차별하는 그런 선생은 아니었다. 아니, 오
히려 다른 아이보다 나를 더 챙겨주기도 하고, 책 같은 것도
특별히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기도 했었다. - 작년
선배에게 부탁해 공짜로 얻어오시기도 할 정도였다. - 덕분에,
나도 쉽게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여튼 에이딘 선생은 출석을 부르며, 오늘 있을 수업을 확
인시켜 주고 전달 사항을 알려준 후, 그렇게 조회를 끝마쳤다.
"… 아, 그리고 베리. 너는 수업 끝나고 잠시 내게 오너라."
아마, 어제 학교를 빼먹은 거 덕분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
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종이 울리자 곧 선생은 수
업을 하기 위해 교실 밖으로 사라져 버렸고, 대부분의 아이들
은 화장실을 가거나, 친한 아이들끼리 잡담을 나누며 그렇게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서, 오늘
있을 수업의 예습을 하기 시작했다. 막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있던 도중에 갑작스런 짜증 섞인 말이 귓가에 들려왔다.
"젠장, 저번에 누가 결석을 할 때는 혼내더니 왜 저 녀석만
특별 대우야. 서러워서 살겠나, 정말… "
"하여튼 재수 없다니까."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아이들이 날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예외는 있는 법이다. 아무리 품질 좋은 사과 상자라고
하더라도, 그 안의 깊은 곳에는 썩고, 볼품없는 것이 포함되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내가 약점 하나 잡히지 않자, 그것을 못마
땅하게 여기는 녀석들은 있는 것이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저런 소리를 한다면, 그래도 이해는
해줄 수 있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도 못 들어본
녀석인가? 짜증이 솟아올라지만, 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으
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책에서 시선을 고정시켰다.
- 한마디로 어떤 개가 짓는구나, 라고 여기는 것이다. -
그런데,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해버렸다.
"아아, 짜증나네. 안 그러냐, 엘리?"
"정말 주제도 모르고 떠드는군.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올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약간은 안면이 있는 같은 반의 두 여학생이었
다.
이 학교라는 곳은 실력만 있다면 성별은 상관없다, 라는 자
유스러운 교풍이 남아 있었다. - 지금 교장의 전 교장이던가,
하는 사람이 여자였었던 모양이다. 그 교장이 여학생을 조금이
라도 차별하는 교칙은 다 삭제해 버렸다고 들었다. - 남녀의
성 비율은 약 3:1정도로,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그
것을 바꿔 말하자면 여학생이라는 존재 하나는 남자 세 명을
뛰어넘는 것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약간 문제 발언
인가? - 그래서 아무리 멍청하고 골빈 녀석이라고 해도 여학
생, 그것도 얼굴이 단정한 여학생을 건들지는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좋은 곳에 신랑감을 얻기 위해 강압적으로
이 학교에 자신의 딸을 입학시키는, 부모도 많다고 들었다. 남
자 아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졸업하지 못하더라도 여자
친구 하나는 건져야만 한다. 라고 생각하는 녀석들이 득실거리
고 있는 것이었다. - 이것이 우리 나라 최대의 기사 양성 학교
의 진실이었던 것이다. 젠장! -
하여튼, 나를 도와주는 두 여학생의 얼굴은 눈에 확 뜨일 정
도로 단정한 편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그 두 여학생
에게 작업 들어가는 녀석들이 거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었다.
"저 녀석들. 평소에는 안 그러더니 왜 저래?"
"웃기지도 않는 권위주의 내세우는군 그래."
이렇게 되자 당혹스러워지는 것은 시비 걸었던 남학생들 쪽
이었다.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짐짓 목소
리를 가다듬으며 표정 관리를 하고는, 차분한 목소리 톤으로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만 해주십시오, 결석한 것은 제 잘못이니까요."
참 얼굴 색 하나 안 바꾸고, 마음에도 없는 대사를 하는걸
보니 나도 보통은 아니구나. 하여튼,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
시비 걸었던 남학생들은 얼굴을 붉히고 교실 밖으로 사라져
버렸고, 교실 안은 잠시 동안 정적 속으로 파묻혔다.
잠시 후, 아이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수다스럽게 잡담
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다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책을 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걷었군.
그렇게 생각하니 얼굴에는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가 번져 오
기 시작했다.
"그래, 무엇 때문에 결석한 거냐?"
에이딘 선생은 조금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어제 있었던 사실들을
대충 말해주었고,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경청했다.
"동생 몸은 이제 괜찮은 거니?"
너무 괜찮아서 문제인데요.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대충
'워낙 근본이 튼튼한 녀석이라서.'라고 말해주었다. 에이딘 선
생은 굳어 있던 표정을 풀고, 팔을 뻗어 내 손을 잡은 체 그렇
게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어머니도 평민이셨단다. 아름다운
분이시었지. 그래서 그런지, 네 녀석만 보면 어머니 얼굴이 떠
오르는군."
내 얼굴이 곱상하고, 내가 평민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떠오른
다는 것인가? 하여튼 나는 그런 선생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곧 교무실을 빠져나와 식당으로 향하는 걸음을 움직였
다.
에이딘 선생이 어째 날 잘해주는 이유가 있었구나. 새삼스레
그렇게 생각하며 막 교문 밖을 지날 때 누군가 날 부르는 소
리에 날 걸음을 멈추었다.
"어이, 잠시 시간 좀 내줄래?"
오늘 아침에 내 편을 들어주었던, 그 두 명의 여학생 아닌
가? 내가 조금은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때에, '엘리'라고 불려
지던 그 여학생은 미소 지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특별히 바쁘지만 않다면, 부탁하고 싶은데."
막상 지금 식당에 빨리 돌아간다고 해도, 뼈 빠지게 종업원
일이나 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오자, 나는 그 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두 여학생은 앞장서서 천천히 다시
학교 안을 향해서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왠지 조금 불길하
기도 했지만, 설마 쓸모 짝에도 없는 나에게 특별히 무슨 이상
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킬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