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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봄... 낙화유수

김상준 |2007.04.12 00:46
조회 36 |추천 0
   

  온갖 기하학적인 모양에 콘크리트 산이 사방을 막아선다. 마를린 먼로의 치마를 걷어 올리는 심술궂은 바람이 내 뺨을 스치며 지나간다. 나무는 콘크리트 산 옆에서 굉음과 묵은 공기, 거친 바람을 맞으며 힘겹게 작은 싹을 티 운다. 세평 남짓 작은 방, 인파에 발자국에 돌처럼 단단해진 땅속에 고통스럽지만 제 뿌리를 뻗어 낸다. 오늘 나는 그곳에 있다.

  한걸음 두 걸음, 지하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긴 터널 앞에서 지하철을 기다린다. 바다위에 뜬 구름을 보기위해서. ‘띠리리리리링... 지금 해운대 행 해운대 행 열차가 들어…….’ 단돈 천원으로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었다. 하지만 걷는 것 그것이 지금은 그립다. 지하철에서 내린다, 올라간다, 길을 건넌다. 비릿한 바다향이 코를 들어 냄새를 맡게 한다. 쏴아 쏴아 내밀었다 숨었다를 반복하는 파도는 언젠가 해송이 아닌 콘크리트 잔디와 산에 갇혀있다. 바다에 바람은 살아있었다. 비릿하지만 기분이 맑아지는 기분 하지만 귀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이곳에 봄도 어렵게 싹을 티 운다. 맨발로 봄 햇살에 알맞게 데워진 모래사장을 걷는다.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어쩔 수 없는 생리적인 것인가 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발을 턴다. 그리고 잠시나마 자유를 느낀 발을 다시 구속한다. 하루 전만 해도 소의 생명을 유지해주던 발간 선지와 작년 겨울에 마련한 씨레기가 내 입맛을 당기게 한다.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지가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씨레기의 구수함이 내 위를 달래고 따끈한 밥 한 그릇이 나를 기쁘게 한다. 시큼한 향이 나는 깍두기가 입안을 정리한다. 한 그릇을 비우고 잠시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이 웃음을 짓는다. 아마도 포만감, 그 배부른 행복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석양이지고 밤이 깊어간다.

  작은 조명들이 하나둘 켜진다. 달맞이 길에는 밤에도 수줍게 핀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조명과 밤바다에 정경과 어울려 내 눈을 멀게 한다. 걷고 또 걸었다. 바람이 불자 꽃잎이 떨어진다. ‘낙화유수’라 저물어 가는 봄을 한탄하기에는 이시간이 아깝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필름사진기대신 작은 액정 안에 이 시간을 담는다. 밤바다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바다위에 떠있는 오징어 배를 본다. 풍어을 기원하는 어부에 마음에 화답하듯 나는 오늘도 만선이길 기원한다.

  바다 주변에 펼쳐진 밭길에 널어놓은 미역과 오징어가 봄밤 생기 있는 바다 바람에 구덕구덕 말라간다. 기장군청 뒤 방파제 곁에 허름하게 펼쳐 놓은 막사 안은 오랜 회포를 푸는 소리로 북적거린다. 고추장에 맵게 양념된 꼼장어가 자연스럽게 소주 한잔을 기울이게 한다. 방파제에 파도가 부딪쳐 나는 소리가 밤을 더 멋지게 만든다. 일어서 돌아오는 길, 집 앞 길에 핀 벚꽃이 다시 바람에 날린다. 떨어지는 꽃이 피어 있는 꽃 보다 더 아름답다. 꽃 잎 하나를 손에 집어 든다. 그리고 다시 후 불어 날린다. 싸늘한 봄 저녁이 그렇게 지나간다.

  떨어진 동백꽃잎의 색은 불그레한 새색시의 뺨과 같이 어여쁘다. 벚꽃은 달밤 춤추는 봄바람에 날리는 것이 아름답다. 봄날 산에 핀 철죽은 온 산을 태울 것같이 붉다. 도심 속에도 봄은 어렵지만 찾아온다. 떨이 지는 꽃잎처럼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사람들에 마음속에서부터 봄은 싹을 티 운다.

  범어사 뒤 대나무 숲 속에서 봄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느낀다. 그렇게 봄이 내 곁에 이만큼 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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