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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27 헤어진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배상은 |2007.04.13 16:55
조회 47 |추천 0


생각해 보면 동희는 언제나 성재를 기다렸다.

전화가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기다렸고,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지만 혹시나 텔레비전 소리에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드라마를 무성 영화처럼 봤다.

 

"전화한다고 안 했는데 뭐. 전화 안 할 거야."

수건으로 꼭꼭 눌러 물기를 닦아내며 동희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한다고 해 놓고도 안 하는 사람이잖아. 안 할거야."

 

누가 과연 그렇다 동의한 것도 아닌데, 혼자 뱉은 말에 혼자 동의하고, 혼자 서글퍼져서는 새삼 눈이 빨개지고, 눈물이 그득히 고였다가 고개를 절레 흔들며 다시 텔레비전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 모든 동작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동작이 이루어지는 동안 휴대폰도 울리지 않았다. 정규 방송을 끝낸 텔레비전이 지지직거리고 동희가 끝내 볼 위로 눈물 자국을 낸 채 지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성재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동희가 그토록 기다릴 때는.

 

그런데 기다림을 힘겹게 접고 동희가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성재였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용건은 더없이 간단했다.

 

"괜찮은지 걱정돼서. 술 많이 마신 것 같던데,, "

"응" "그런데 왜 전화했어?"

 

용건을 다 듣고도 되묻는 동희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성재는 동희가 억지를 쓸까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 했다.

 

"괜찮으면 됐다. 끊을께."

 

하지만 성재는 그러고도 끊지 않았다. 동희는 전화가 끊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몇 초를 버티다가 비록 덜덜 떨리긴 했지만 제법 독기를 품은 목소리를 내는데 성공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

"내가 전화하면 받아 주고 그러지 말라고. 내가 메세지 보내도 답장하지 말고, 내가 술 취해 길거리에서 자고 있어도 그냥 밟고 지나가라고. 뒤에서 이성재 이성재 소리치면서 불러도 아 어떤 미친 여자가 노래하는구나 그러고 그냥 가라고."

 

"무슨 말인지 알았다. 그만 해라. 이번 한 번만 그런거니까."

 

하지만 동희는 성재의 말을 잘랐다. 동희는 지금 엄마까지 동원해 간신히 기다림을 포기하려 했던 시도가 무참히 깨진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알기는 뭘 알아.이렇게 불쑥 전화 걸면 다야? 앞으로도 내가 술 취할 때마다 전화 받아 줄 거야? 다음 날 전화 걸어서 괜찮냐고 물을 거야? 아니잖아. 그러니까 전화하지 말라고."

 

"알았다. 전화해서 미안."

 

결국 성재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3분 남짓의 통화.

기다림을 끊기 위해 라디오와 대화하고 엄마의 옛날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3시간을 뒤척인 노력은 그 3분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scene 27

헤어진 그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이미나 「아이러브유」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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