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페트(The forbidden pet) -
이 름 배진국
제 목 금단의페트 - promise -
식당 문을 열었을 때 무엇인가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다
는 것을 깨닫고,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상하게 한 명의 손
님도 없고, 종업원 같은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삐거덕거리며,
문 흔들리는 소리가 그로테스크하게 식당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당황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계단에서 아이린씨
가 내려와 무엇이라 큰 소리로 외쳤다.
"바보야, 지금 오면 어쩌란 거야!"
"…무슨 소리 하시는 거죠?"
갑작스런 말과 행동에 난 그렇게 얼빠진 표정을 하고 아이
린씨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손을 부여잡고 억지로 계단 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
다. - 눈물 가득한 눈을 그녀의 얼굴을 보자 뭐라 달리 할 말
도 떠오르지 않았다. -
무엇인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져 오는 것 같아서 안 좋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별일없을 것이
라고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 하지만….
"도대체 왜?"
내 말을 무시하며, 아이린씨는 그렇게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손이 나의 팔목을 놓은 것
은, 조금은 어둡고 낡은 문의 입구, 바로 시아 녀석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이 목적지인 듯 아이린씨는 더 이상의
말도 없이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를 반기고 있는
것은 '절망'이라는 단어 그 자체였다.
chapter 7. 작은 변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 돌아가신지도,
어떻게 생기셨는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단지 나하고 닮으신 분
이라고만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조금 괴롭기
도 했다. 너무 외롭고 힘들어도 의지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나는 외톨이니까, 라
는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상 속의 어머니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언
제나 완전하지 않았다. 단지, 하얀빛 같은 것으로 가리어져 있
었던 것이다. 떠올리고 싶어도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
다.
외로운 것도 시간이 흐르니까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다
른 사람과 웃고 떠드는 것보다는 혼자서 책이나 읽는 편이 더
즐겁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조그마한 한 소녀가 마음속에 자리 잡
고 있었다. 밤하늘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달과 같은 존재라고
할까. 그녀는 그렇게 내 어둡기만 한 마음을 밝혀주고 치료해
주는, 내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마음속 깊이 각인되고 있
었던 것이다.
사실 그런 그녀의 아픔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
고 괴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웃음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짓고서는, 그렇게 내 품에 안겨왔기 때문에 알
지 못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이기적이니까, 나는
아직도 철없는 꼬맹이 녀석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으니까.
소녀가 눈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작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도 못하고 피 흘리고 있었다. 무능력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
이것으로 두 번째다.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나는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존재다. 눈물 흘리며 슬퍼하는 것을 제외
하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이다.
몸 이곳저곳에서 흐르는 피들은, 하얀 시트를 붉게 물들이고
바닥을 적신다. 검은색 나무로 된 바닥이 피를 먹어서 더욱더
짙어지며, 침대에서 조금은 멀찍이 떨어진 내 발 밑까지 흘러
오고 있었다.
마치 얼어붙은 듯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나는,
천천히 침대의 곁으로 한 걸음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질퍽하다고 느낄 정도로 끔찍한 발바닥의 감촉이,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말해준다.
깨끗했던 하얀 시트는 어느새 선홍의 빛으로 바래진지 오래
다. 그 끔찍한 모습에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속이 역해지기 시
작했지만 애써 무시하며 그렇게 침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창백하디 창백한 녀석의 얼굴은, 가끔씩 경련 덕분에 떨리는
것을 제외한다면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모습, 그 자체였다.
살며시 오른손을 움직여 녀석의 볼과, 귀를 쓰다듬어 주었
다. 나의 손길에 따라 녀석의 얼굴은 잠시 동안 불그스름한 자
국이 생겼지만, 곧 다시 하얀색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난 눈물 흘리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내가 웃고 떠들고 있을 때에 녀석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괴로워했겠지.
녀석의 아픔과 괴로움을 동정하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보다
는, 스스로가 미치도록 혐오스러운 까닭에 눈물이 나오는 것이
다.
"그래도 방금 전보다는 나아진 편이야."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슬픈 목소리로 아이린씨가 말했다.
살며시 녀석을 두 팔로 감싸 안아 들었다. 카이리온 기사 양성
학교의 교복은 녀석의 피에 붉게 물들기 시작했지만, 그다지
괘념치 않기로 마음먹었다.
가볍다. 그리고 차갑다.
매 초 주기로 떨리는 녀석의 차가운 몸,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도 없다가 아이린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이죠?"
"마나 쇼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몇 가지의 잠재적인
내부의 힘."
녀석의 몸에 강대한 마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은 저번에도
살짝 들어서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나머지 것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어찌됐든 난 다시 질문했다.
"무엇을 해야 되는 거죠?"
"아직은…. 잘 모르겠어."
"지금은 괜찮은 것인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아. 지금 살아남는다고
해도, 다음에 살아남을 보장은 없는 거니까."
결국 또 그렇게 된 것이구나. 나는 다시 잠시 동안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렇게 지내다가 녀석이 아프면 슬퍼해 주고, 녀
석이 죽으면 또 절망에 빠지겠지.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흐르면
그런 적이 있었다고 회상하는 형편없는 녀석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정작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나와 아이린씨는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멍하니 시아 녀석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퍽-!'
얼굴 가득 찡하게 욱신거리는 고통에도, 난 그렇게 녀석을
안아 들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기르디는 그런 나를 무표정
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다시 빠르게 손을 움직여, 내 볼을 쳤
다. 방 안 가득 뺨 맞는 소리가 울러 퍼졌다.
하지만 난 무감정한 얼굴로 그렇게 기르디를 바라보고만 있
을 뿐이었다.
"재수없고, 형편없는 녀석 같으니."
"… …."
스스로 생각해 봐도 지금의 나, 최악이군. 그냥 슬퍼해 주는
척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위선이고 가식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지? 그냥 아무
렇지도 않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가?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기르디는, 아무 말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방 안을 나가
버렸다.
발작이나 경련 같은 것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시체처
럼 창백한 녀석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녀석의 얼굴을 바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거니?"
내 슬프고 작은 목소리에도, 녀석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미
동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작은 방 안을 조그맣게 울리는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내가 대신 아파해 줄 수 있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줄 수만 있다면."
보잘것없어도 좋으니까. 널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조금의 '힘'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문이 열리고 방 안으로 살며시 셀브렛 녀석이 들어왔다. 멍
하니 침대에 걸터앉은 나와 시아를 바라보더니, 금새 눈물 가
득한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쌀쌀맞은 척하더니, 역시 속은 따뜻한 녀석이었구나. 시아
녀석이 보는 눈은 있는 모양이군. 상황에 맞지 않는 생각이긴
하지만, 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녀석은 훌쩍거리며, 간신히 입을 열고 말했다.
"죽는 거야? 그런 거야?"
눈물 가득하게 슬픈 셀브렛 녀석의 표정을 보니, 뭐라고 쉽
게 말해주기 어려웠다. 무슨 설명을 하더라도 녀석이 이해하기
는 힘들 테니까 말이다.
"그래, 죽는 것이지?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지? 또 셀브렛
을 남겨두고…."
"아니, 죽지 않아."
녀석의 말을 자르고 나는 그렇게 말했다. 두려움에 가득 찬
눈물 젖은 녀석의 눈을 바라보며.
"절대…. 누가 그냥 죽게 남겨둘 것 같아?"
어느새 나도 셀브렛 녀석처럼 눈물 흘리고 있었다.
"흥, 절대 그렇게 만들진 않겠어."
그러니까 나는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녀석을 위해 무엇이라
도 해줄 수 있도록.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야
만 하는 것이다.
잠시 동안 나는 그렇게 멍하니 셀브렛을 바라보다, 시아를
다시 침대에 바르게 눕히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천천히 걸음을 움직인다.
'그러니까 이렇게 눈물 흘리며 슬퍼하고만 있는 것도, 한심
한 일이겠지.'
가방에서 꺼내든 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천천히 난 셀브렛 녀석을 놔두고 밖으로 나가는 걸음을 움
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