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페트(The forbidden pet) -
이 름 배진국
제 목 금단의페트 - promise -
눈코 뜰 사이 없이 빠르게 시간은 흘러가고, 어느새 축제의
당일이다. 춤 연습하는 것을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했던 몇 일
이었지만 말이다. - 단기간 안에 효과를 볼 정도로, 춤 연습하
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는 이야기다.
오전 수업이 끝나자, 몇몇의 아이들은 분주하게 축제를 위
해, 각자들의 부실로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느긋하게 교실에 남아 댄스 파트너라던지
무슨 부의 있을 공연이라던지, 하는 것들을 수다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사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동호회에 소
속되어 있었기는 했다.
'생각하는 것조차도 끔찍하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남자가 한 번 약속한 것은 끝까지 밀고 가야 하는
법! 어찌 됐든 성적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그냥 대충 좋게
생각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정말 스스로가 증오스러워서 자살이라도 할 것 같았기
에. -
'휴, 그래도 그 망할 판매전에 참가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어
딘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몇 일 전에 부실에서 있었던 황당한
사건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모두가 녹초가 될 정도로 지쳐 있었기에, 엘리가 미리 준비
해 놓은 음료를 마시며 모두는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 확실히 연극부의 공연은 볼 만하지. 작년의 '기사 카쉬
엘르'도 정말 멋졌고 말이야."
리체 녀석이 얼굴에 조금은 홍조를 띄우며 그렇게 말했다.
작년에는 이 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았던 녀석이, 이렇게까지 말
할 정도라면 확실히 대단한 연극부인 것도 같았다.
"뭐, 연극부야 언제나 강세라고 하던걸. 학교에서 제일 지원
이 큰 곳이기도 하니까."
엘리가 리체 녀석의 말을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
을 열었다.
'지원'이란 단어를 그렇게 힘주어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 이
망할 부는 학교의 지원을 그다지 받고 있지 않는 듯했다. 뭐,
이렇게 구석진 장소에 부실이 있는 것만 봐도 유추가 가능했
지만 말이다.
"…그런데."
막 내가 입을 열자, 리체 녀석도 엘리 녀석도 하던 말을 멈
추고, 살며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부는 뭐 하는 게 없는지?"
'우리'란 말이 유난히 작았던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흠, 우리 부도 굉장히 큰 이벤트를 하긴 하지."
"확실히 전교생이 주목하고 있을지도."
제각기 검지 손가락으로 턱을 어루만지는 포즈를 취하면서,
리체 녀석과 엘리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 둘이 저렇게 말하기 망설이는 것만 봐도, 무엇인가 꺼림
칙한 상상이 하나 둘씩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지만, 내
색하지 않고 나는 입을 열었다.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한참 뜸을 들이다가, 리체 녀석이 말했다.
"간단한 판매전을 열어."
"무엇을 파는 거죠?"
다시 말이 없어지는 두 사람이었다. 살짝 날카롭게 리체 녀
석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그런 것'들을 파는 겁니까."
대답 없는 둘, 예상했던 것이지만 그래도 새삼스럽게 조금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멋모르고 입부한 내 잘못이 크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이 망할 부에 소속되어 있는 여자 아이들이 분주
하게 여러 가지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는 것은, 바보가 아니라
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 왠지 학
생들의 분실 사고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기도 했다.
사실 중요한 문제는 그 분실 사고가, '특정 인물'에게만 해당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특정 인물들은 뭐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 같으니 관두고. - 왕자 녀석도 몇 가지 물건들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 여하튼 확실히 최근 들어 일어나고 있
는 사건들을 유추해 보았을 때, 판매전에 무엇들이 팔릴 것인
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인 것이었다.
"좀 자제해 주셨으면…."
물론 내가 이런 소리한다고 눈 하나 깜짝할 녀석들은 아니
었지만 그래도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리체 녀석을 바라보
며 그렇게 푸념했다.
"하하, 그런가."
전혀 반성하는 기색 없이 리체 녀석은 엘리의 얼굴을 마주
보며, 그렇게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었을 뿐이었다. - 엘리
는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 모양인지, 조금은 쑥스러운 얼
굴을 하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자 안 그래도 충격이 잦았던 요즘의 정
신적인 고통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해서, 난 한숨 쉬며 울상 지
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젠장."
남이 들으면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 상스러운 욕지거리
를 중얼거리며 나는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한 발자국씩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비라도 크게 내려주었으면 좋으련만, 날씨는
구름 한 점없이 따스했다.
왕자 녀석도 무슨 동호회에 가입한 모양인지 수업이 끝나자
마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려서, 난 쓸쓸하게 식당으로 향하는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뭐, 사실 식당에서 그다지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학교를 어슬렁거리다 잘못해서 리체 녀석과 맞닥뜨리게 된다
면 참으로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
리고 뭐 나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꽤나 있는 것 같으니까. 일찌
감치 사라져 주는 게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 특히 성적이 나쁜 남자 아이들과, 전에 식당에서
트러블이 있었던 여자 아이 세력들은 나를 극도로 혐오하고
있는 듯했으니 말이다.
"휴…."
예상했던 것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심심치 않게 트러블이 일
어나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내가 아무리 저자세로 나간다고
해도, '건방지다.', '재수없다.'같은 안 좋을 소리들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꽤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리체 녀석과 엘리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대인 관계
에 엄청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학교에서 웬만한 여자 아이들과
웃으며 인사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
다.
그 점에서는, 그 둘에게 적지 않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하필이면 왜!'
이상한 취미를 가져서 사람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거냐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지만 왜 하필 '미소년 사랑 동호회'인
것이냐! 도대체 왜!
"… …."
막 내가 어느새 도달한 식당의 문 앞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문이 열리며 셀
브렛 녀석이 바로 내 눈앞으로 뛰쳐나왔다. - 물론 그것을 인
식하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린 덕분에 셀브렛 녀석에게 굉장
히 한심스러운 작태를 보였다는 것을, 조금 시간이 지나고 느
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 바라만 보고 있다가 약속이나 한 듯 동
시에 입을 열었다.
"저기…."
"아, 그게 말이지."
그리고 다시 찾아온 짧은 정적. 셀브렛 녀석이 조금은 붉어
진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학교란 곳을 다녀온 거야?"
셀브렛 녀석도, 시아 녀석과 아이린씨가 거의 매일 틈틈이
교육시킨 덕분에 그래도 웬만한 지식은 알고 있는 편이었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포크질 하는 것은 서툴지만 말이다.
사실 묘인족은 인간과 비교하자면, 조금은 지능이 떨어진 것
도 사실이었다. 셀브렛 녀석은 그에 비하면 인간과 거의 차이
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똑똑한 편이었다. 게다가 뭐든지 열심
히 배우고 일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탓에, 최근 들어 기
르디 녀석에게도 그럭저럭 부드러운 대우를 받고 있었다. - 최
근에는 한창 글 읽고 쓰기를 배운다고 들었다.
"응. 일하는 모양이네?"
한 손에 걸레를 움켜쥐고, 머리카락도 많이 헝클어져 있었기
에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창고 정리 좀 하느라…."
분명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한 일이겠
지. 창고에 둔 물건들이야, 대부분 거의 버리다시피 마구잡이
로 처박아둔 것들일 테니. 아이린씨나 기르디 녀석이 가만히
있는 셀브렛에게 그런 곳까지 청소해 두라고 말할 엘프들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적당히 좀 해라."
그렇게 말하고는 녀석의 볼을 꼬집어주었다. 탄력있게 늘어
나는 볼 살에 아파하는 셀브렛 녀석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입
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으윽, 아프다구!"
손을 놓자마자 등을 보이며 쪼르르 도망가더니, 나를 바라보
며 메롱 하는 모습.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많이 활발해진 것
같았기에 조금은 흐뭇하기도 했다.
해가 저물어 갈 늦은 오후 무렵, 한참 방 안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고 있을 때 아이린씨가 노크도 없이 갑작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제 슬슬 나가봐야지? 파트너도 준비해 두었으니까."
"파트너라고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문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큰 소리로
소리 지르는 아이린씨. - 언제나 새삼스레 느끼는 거지만 겉보
기와는 달리 목청 한번 좋다.
"억지로 끌고 올까, 아니면 네 발로 직접 올래?"
한참 동안의 정적 후에 살짝 문안으로 얼굴을 내미는 시아
녀석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는 모습에, 조금은
당혹스러워 아이린씨에게 말했다.
"왜 저런 표정이죠?"
"사실 너 몰래 나하고 오빠가 시아에게 춤을 가르쳐 주었거
든."
으윽, 아이린씨면 몰라도 기르디 녀석이 시아에게 춤을 가르
쳐 주었다고?
그것 참 놀라운 일이군. 평소에는 그렇게 싸늘한 녀석이 춤
이라니. - 아니, '효과적인 살상 방법'이라던지, '남을 고통스럽
게 하는 법' 같은 것들을 가르치는 게 기르디 녀석에게는 훨씬
더 어울리는 것이겠지. 설령 상대가 시아 녀석이라고 해도 말
이다.
"뭐, 카이리온 기사 양성 학교는 축제날에는 평민에게도 관
대하니까…. 네가 좀 구경시켜 주는 게 어떠니?"
흐음, 뭐 나야 그럭저럭 괜찮지만. 리체 녀석과 엘리 녀석의
행동이 조금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식당에서 매일 고생
만 하고, 마음대로 놀지도 못하는 시아 녀석을 위해서라면. 적
어도 그 정도쯤은 감수해야 마땅할 것이다.
"네, 그렇게 하죠."
여하튼 아이린씨가 건네준 옷을 입고, 나는 그렇게 시아 녀
석과 손잡으며 식당 밖을 나가 천천히 학교를 향해 걸음을 움
직이게 된 것이다.
입고 있는 옷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날씨도 비교적 선
선하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시아 녀석은 집 밖을
나설 때하고는 정반대의 표정으로 학교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역시 좋아할 것 같았다니까.'
악세사리 같은 것들을 내다 팔고 있는 학교 안의 노점상에
서 한껏 기쁜 듯이 웃음 짓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새삼
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식당에서 뼈 빠지게 일하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심한 곤욕일 것이다. 아무리 평민 여자 아
이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 사실 시아 녀석의 출생이라던 지
과거 같은 것들은, 본인 스스로에게 정말 듣기 어려웠다. 억지
로 들으려고 해도 녀석의 고집이란 게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
도로 끈질겼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그냥, '평범한 평민 여자 아이였을 것이다.'라고 나름
대로 스스로에게 결론 짓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금 무책
임하기도 하지만, 언제가 기다리다 보면 스스로 알아서 말해줄
순간이 올 테니 말이다.
여하튼 아이린씨가 가끔 휴일을 주기도 했지만, 시아 녀석
성격에 다른 곳을 떠돌아다니며 놀거나,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
리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말이다. 쉬는 날이라고 해도 자
기 방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손님이 많아지면 소
매를 걷어붙이고 식당 일을 돕는 것이었다.
내가 말할 처지는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나 돈은 많으
면 많을수록 좋은 것인데 말이다. 사귐성없는 시아 녀석이 조
금은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마법의 빛으로 대낮처럼 밝혀진 진열장 안에는, 수많은 물건
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여자 아이들의 관심을 빼앗고 있었다.
붉은색의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며,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나
를 바라보는 모습. 그런 녀석을 조금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
며 바라보다, 난 입을 열었다.
"그 정도쯤은 사줄 수 있어."
사실 구두쇠라고 남들이 말할 정도로, 씀씀이에는 엄격한 편
이었지만 말이다. 시아 녀석을 위해 저런 거 하나 사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으니까.
동전 몇 개를 꺼내서 값을 치르고는 다시 시아 녀석의 손을
잡고, 천천히 다른 곳을 구경하기 위해 걸음을 움직였다.
막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을 때에,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구석진 어떤 곳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모여 있는 인파들의 대부분은 카이리온 기사 양성 학교의
여학생들이라, 특별히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사람들
의 이목이 모였기 때문에. - 게다가, 마치 시장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목소리를 높여가며 흥분하고 있는 여학생들 덕분에.
길 가던 행인들까지 합세해서, 구석이지만 꽤 엄청난 무리의
군중들이 형성된 것이었다.
나도 시아 녀석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무슨 일이 일어 난
것인지 상황을 살피기 위해 군중들 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움
직였다.
"자자, 다음 물건을 경매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법, 비슷한 것으로 목소리를 변하게 하고, 가면을 써서 얼
굴을 가린다 해도 난 한 눈에 그 무리의 중심에 서 있는 사회
자가 리체 녀석임을 알 수 있었다.
'제4호 회지 판매.'라고 써 있는 책상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줄을 서며 무엇인가를 사고 있었고, 어떤 남학생의 학용품인
듯한 물건은 상상도 못할 금액으로 경매되고 있었다.
'끔찍하다.'
정말 저절로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며, 다리에 힘이 풀려올
정도였다. 거의 광신도같이 소리 지르며 경매에 참여하고 있는
여학생들, 새치기를 하면서까지 '회지'라는 것을 사고 싶어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정말 지옥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착각할 정
도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기에.
"가자."
간신히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곳을 빠져나가기 위
해 시아 녀석의 손을 세게 부여잡으며, 빠르게 걸음을 움직였
다. - 즐거웠던 축제 구경이,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악몽'으로
변하는 것은 죽어도 사양이니까.
날이 거의 완전히 어두워져 있을 무렵, 드디어 학교의 강당
은 촛불과 마법의 빛으로 수놓아지며 천천히 축제의 백미라고
할 댄스 파티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해서, 그렇게나 컸던 강당
이 시끌벅적하게 인파들로 와글거리고 있었다.
중앙의 메인 스테이지는 학생들의 몫이었고, 바깥쪽은 누구
라도 자유롭게 춤추고 놀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들
은 것은 기억나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정중앙 쪽은 사람들의 이목이 너무 많다. 저런 곳
에서 춤추다가 실수라도 하면, 엄청 쪽팔리는 일이 될텐데. -
새삼스레 외곽 쪽에서 시아 녀석과 몇 곡만 춤추다가 식당으
로 돌아가자고 결심하는 소심한 나였다.
천천히 은은하게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자 약간은 웅성거렸
던 강당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고, 하나 둘 커플들은 그
렇게 서로의 손을 잡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 그럼."
나는 천천히 시아 녀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조금은 닭
살스럽지만 나긋나긋한 어조로 그렇게 입을 열었다. -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아이린씨나 리체 녀석이 그렇게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저와 한 곡 추시겠습니까, 레이디."
"네, 기꺼이."
조금은 붉어진 얼굴로 기쁜 듯 미소 지으며 화답하는 시아.
손을 마주 부여잡으며 녀석과 나는 음악에 맞추어서, 어색하게
나마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리듬감있게. 나도 녀석도 조금은 긴
장한 덕분에 그리고,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색한 까닭에
남들이 보기에 폼 나는 그런 춤을 추지는 못했지만.
'뭐 남 이목이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
그래, 중요한 것은 여기 춤추고 있는 '나 자신'. 어설프고 실
수해도 괜찮다, 남이야 어떻든 자기가 즐거우면 그만이니까.
적어도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걱정만 하면서 마음 졸이는 것
보다는 즐겁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나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