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중간 층 ‘꺼낸 것’만으로도 의미 있어
한미 FTA가 체결되었다. 2005년 1월 대통령 신년연설에서 선진국으로 가기위해 그것을 꼭 실현시키겠다고 공언하던 노무현의 신념이 지난 4월 3일 연설을 통해 다시금 확인되었다. 그것을 일컬어 한 쪽에서는 더 이상 외세의 압력에 의한 개방이 아닌 국가 대 국가의 합리적인 협정이라며 제3의 개국이라 평하고, 다른 쪽에서는 “농민 터전, 국가 자본을 빼앗길 수 없다”며 강경하게 반대 시위를 벌이며 맞서고 있다.
노무현은 4월 3일 연설에서 “한미 FTA가 경제적인 협약”임을 강조하며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반대는 삼가 달라고 부탁했으나, 과연 한미 FTA가 ‘지극히’ 경제적인 협약일까. 우석훈은 “대외경제연구원의 한미 FTA에 대한 CGE(Computational General Equilibrium) 모델에 의한 거시경제의 장기예측 모델이 작은 스캔들로 인해 무대 뒤로 사라진 이후에 한미 FTA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논의는 아무도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 없는 처지”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현재 국제 시장에 비해 품질, 가격 경쟁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 농가는 몰락할 것이 예견되는데 국가보조금으로 그들을 모두 구원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리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한미 FTA를 시작 안 할 것임이 분명하기에 시작했다”고 말했던 노무현. 실제로 한미 FTA는 김현종 교섭본부장, 김종훈 수석 대표의 의지로 시작한 일은 아니라 한다. 각자의 철학을 가지고 국정을 운영하려 하는, 경제부, 행정부, 비서실에 포진되어 있는 각료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이병완이 노무현을 설득시켰고 노무현이 이에 동했을 가망성이 크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결정을 내리는 것은 노무현이다. 과연 그의 지지계층도 반대하는 이 정책을 줄기차게 민 그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숨어있을까.
송호근은 “대통령은 정당성의 정치보다 중산층의 정치를 펴야 한다”고 역설했으나 노무현의 굴곡 많은 정치 인생은 그것을 실현시키기에 매우 힘든 여건이었다. 그는 중앙 일간지와 사이가 좋지 못했고, 영남 출신이면서 호남 정당에 속했다. YS, DJ와는 다르게 서울대 출신이 아니었다. 이 모든 여건들은 ‘중산층’을 포섭하기는 힘든 환경이었고 마침내 정치를 그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 아닐까. 노무현은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을 ‘노무현이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주간 조선에서 ‘노무현의원은 상당한 재산가’라며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했을 때부터 그는 보수 신문과 각을 세웠다. 이 현상은 대통령이 되어서까지, 인터넷 언론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여전히 일어났는데 그것을 ‘노무현이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한 것 아닐까. 그리고 그는 기존 대선 후보와는 다르게 ‘영남 출신 호남 정당 후보이기 때문에’ ‘지역구도 타파’를 줄기차게 주장하며 통합 정당인 열린 우리 당을 창당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서울대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시스템에는 ‘평등’이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지속적으로 ‘3불 정책’을 고수했다. 연장 선 상에서 볼 때 한미 FTA 추진도 역시 ‘노무현이 해야 하는 일’로만 받아들인다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정당에서 노무현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살펴보자. 한나라당의 강재섭이 노무현과의 대담에서 “정권이 돌아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다”며 설교하려 했던 것, 박근혜가 헌법 개헌을 제안한 노무현을 보고 “참 나쁜 대통령이다”라고 말했던 것. 이명박이 ‘고대신문’이 주최한 강연회에서 자신이 노무현과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하는 것을 불쾌해 하며 “‘그 사람’도 내 장점은 닮으면 좋은 거지”라고 말했던 것. 강재섭 에게는 ‘자신보다 국회의원 경력이 짧으니 노무현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숨어 있고, 박근혜는 ‘친 아버지 박정희의 저돌적인 돌파력에 노무현은 미치지 못한다’고 단정 지었고, 이명박 역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전 서울시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에게 눌려 득표수 3위에 그친 ‘그 당시의 노무현’으로 보는 듯 하다. 결국에는 국정 운영을 ‘노무현이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인 그와는 다르게 한나라당의 의원들은 ‘노무현 이기에 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듯 하다.
한편, 열린우리당 계보의 의원들의 반응은 새롭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2004년 국가보안법 개폐논란 당시 노무현이 토론회에서 “국보법은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발언하자, 당론을 급격하게 ‘전면 폐지론’으로 바꾼 바가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노무현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 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당론 자체를 전면 수정했을 공산이 크다. 물론 노무현에게 정치적 ‘부채의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여러 386의원들도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랬던 그들이 이색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김근태는 “한미 FTA를 체결하려면 나를 넘고 가라”고 하며 노무현과 완전히 대척점에 섰으며 천정배 역시 “조공협상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 노무현의 굴레에서 벗어나 ‘노무현 일지라도’ 그들의 소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다면 반대하겠다는 것이다. 즉, 한미 FTA를 그들은 ‘노무현 일지라도 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 것이다.
노무현이 해야 하는 일, 노무현 이기에 할 수 없는 일, 노무현 일지라도 할 수 없는 일. 대통령,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계보의 의원들이 국가 정책을 바라보는 시점은 어찌 보면 이렇게 단순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에는 어땠는가. 한국 현대사를 살펴볼 때 윗사람의 눈치만 보다가 국민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 사건들이 꽤 많았다. 곽영주는 이승만에게 아첨을 하며, 엉터리 피난 방송을 부추겼으며, 장세동은 끝까지 입을 다물고 전두환의 허물을 캐내지 않았다. 숱한 비극으로 얼룩져있고, 굴곡 많았던 한국 현대사에서 대체 배울 점은 무엇인지. 표준형을 만들어야 한다며 중,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기술되어 있지 않은, 일제시대, 반공시대의 ‘지식인, 좌파’들의 활동 영역은 대학에 입학해서야만 접할 수 있는 것인지.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4권 여는 글을 살펴보자. 한홍구는 그 책을 펴내게 된 계기가 사람들에게 한국 역사에 대한 ‘분노 의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책의 독자들이 허탈감만을 느낄 수도 있으나, 극우 반공의식이 나라 곳곳에 스며들어 자행되었던 여러 부조리한 일들을 이제는 ‘꺼낸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진보’고 ‘의미 있음’을 강조했다.
한미 FTA가 정식으로 발효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있다. 범국본 등의 반대세력, 그리고 국회 내의 반대 의원들, 미 의회의 승인들, 농민, 시민단체들의 항의 등 무수히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국론 분열’이나 ‘나라가 두 동강 났다’느니 하는 선동적인 구호에서 벗어나 잠시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본다. 노무현이 해야 하는 일, 노무현 이기에 할 수 없는 일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노무현 일지라도 할 수 없는 일을 ‘꺼내놓은 ’의원들. 보수 신문과 인터넷 언론, 시민단체 등이 모두 들고 일어나 ‘제 할 말 하고 있는’ 이런 상황.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움켜쥐고 가듯, 이렇듯 한국 역사는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