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파티를 해 줬다.교생 간다고 아침에 칠판가득 메세지와 이쁜 꼬깔모자까지 준비해준 아이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이번엔 내 차례다.
문구점에서 Hi-Tec펜 48개를 사서 담임선생님 시간을 빌려 교실로 들어갔다.
"아침에 송별회 고마워요. 이번엔 내 차례죠? ^^
하이테크 펜을 샀어요. 한 사람에게는 고작 2000원이지만 한꺼번에 살려니 장난 아니더라구요? ^^ '선생님'이란 직업도 그런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매일 듣는 흔해빠진 45분짜리 국어수업, 그거 준비하려고 몇시간을 준비하거든요. 여러분은 선생님으로부터 받는 사랑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한 분의 선생님이 그만큼의 사랑을 품으려면 때로는 죽을것만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이 펜 속에 선생님이 메세지를 붙여놨어요. 선생님이 처음 여기 왔을 때 여러분들 이름을 외웠거든요. 처음엔 종이에 적힌 이름들을 암기식으로 외우고 나서 그 담엔 교실로 내려와서 그 이름과 얼굴들을 같이 외웠어요. 펜 속의 메세지 속에는 각자의 이름과 선생님이 여러분들 이름을 기억할 때 같이 기억한 것들을 적어놨어요. ^^
선생님이 이 펜을 준비하면서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는 몰랐던건데, 이 하이테크 펜이 '선생님'과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이 검정색 펜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예요.
선생님은 이 검정색 펜이 없으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해요. 선생님은 필기를 많이 하는 편이라 글씨를 작게 쓰거든요. 그런데 이 검정펜을 안가져온 날이나 잊어버리면 그날은 계속 불안해요. 기어코 다른데가서 하나를 더 사죠.
그리고 빨간색.
빨간색 펜은 선생님한테 '중요한 곳, 꼭 알아야 할 것'을 말해줘요. 필기만 해 놓으면 시험기간에 이 빨간색펜으로 표시해둔 부분은 반드시 외운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란색 펜.. 이 펜은 '모르는 부분을 알려줘요'
모르는 단어에 파란색으로 밑줄을 긋고 그 뜻을 쓰거나 때로는 검정색 펜 속에서 조금 특별한 것을 표시해 둘 때는 이 펜을 쓰죠.
검정색 펜처럼 '늘 곁에서'
빨간색 펜처럼 '여러분에게 지금, 또 인생에서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말해주는',
그리고 파란색 펜처럼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
그런 사람이 '선생님'이란 생각.
한 달동안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좋은 선생님'이었는지 모르겠네요. ^ㅡ^
여러분은 하이테크 펜 끝까지 써 봤어요? 선생님은 단 한번도 잉크가 끝날 때 까지 써 보지 못했어요.
하이테크 펜으로 필기를 하다가 다른 색 펜을 집었는데 뚜껑을 열어둔 하이테크가 떼구르르 굴러서 책상 밑으로 이렇게 펜 촉부터 '푹' 하고 떨어져 버리면, 으~~~ 결국 못쓰게 되죠. 게다가 비싼 펜이라고 누군가가 훔쳐가거나 심한 건망증 때문에 어디다 두고와서 선생님은 결국 또다시 펜을 새로 샀어요.
한 달동안 같이 했던 추억이 아무리 좋았다고 생각되도 아마 선생님에게나 여러분에게나 새로운 하이테크펜이 생길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더 좋은 추억이 생겨서일 수도 있지만 우리 기억력이 안 좋아서 그래요. ^^
그럼 어떻게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
" 메모해요. "
" 맞아요. 선생님이 한 달 동안 가르쳤던 '메모하기'. 메모하면 평생 안 잊을 수 있어요.
그럼 선생님에게 메모할 사람? 선생님 기억 속에서 '아이들이 마지막 수업 때 내게 했던 말'이란 제목으로 메모해 줄 사람? "
눈이 빨개져 있는 여자 아이가 손을들어 얘기한다.
"선생님이 우리 담임해요."
그리고 한 남자 아이가 손을 들어 얘기한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수업도 제대로 안 듣고.. 선생님 속상하게 하고.....
(울먹이며..)
감사합니다...."
"^ㅡ^ 고마워요, 메모. 평생 기억할께요. 여러분들 중에는 선생님을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고 '그저 그런 선생님', '나쁜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날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앞으로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선생님이 나타날 거라 믿어요. 한 달, 너무 짧은 한 달..너무 짧아서 여러분 모두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사과 받아 줄거죠?"
"네....."
" ..^^..고마워요. 보통 '반장 인사'는 안하는데 마지막 수업이니까 해볼께요. 반장.. 인사..."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도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안 나왔다. 가슴이 저려서.. 아이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마음속으로 아이들에게 하고싶었던 작별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2007년 4월, 인천 백성중학교에서 한 달간의 교생실습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