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토크를 통해 세 시간 동안 마주한 '일용 엄니' 김수미(57)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어깨에 힘을 주지 않고 단순하게 연기하지만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함을 구축해가고 있다는 느낌. 김수미는 생각보다 고단한 인생을 살았고, "외롭다"는 뜻밖의 얘기까지 들려줬다.
'간장 게장의 힘' 그 정체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때 알코올 중독자였지"
"진짜로 마셔야 돼? 그냥 마시는 척 연출하는 거 아니었어? 어머, 어떡하니. 그럼 빨리 마시자."
서울 강남의 한 일식집에서 만난 김수미는 소주와 맥주 사이에서 잠깐 갈등하더니 "맥주"를 골랐다. 그가 술 앞에서 이렇게 몸을 사린 건 몇 년 전 절주를 선언했기 때문. 오래도록 그 약속을 지키고 사는데 "발동이 걸리면 안 된다"며 엄살이었다.
첫잔을 건배한 뒤 목을 축인 그는 한때 알콜 중독 증세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매일 밤 소주 3병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던 고난의 시기였다. 차량 급발진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시어머니 때문이었다고 어렵게 털어놨다.
"억울하고 원통해서 술을 안 마시고는 버틸 재간이 없었지. 집에서 혼자 소주를 3병씩 마셨더니 의사가 '죽으려고 환장했냐'며 나무라더라고. 결국 김혜자 언니가 나서서 신경정신과 의사를 소개해 줬고, 그 양반이 술 끊는 약을 처방해줘서 알콜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김수미는 그후 술 마실 일이 있으면 미리 위장 달래는 약을 먹고 나타난다고 했다. 아예 술을 끊지 않은 건 자기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이날도 "반갑다"며 술잔을 건네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차례 잔을 비웠다. 첫 화제는 MBC TV '무릎팍 도사'로 시작됐다.
-강호동이 오히려 김수미씨 기에 눌렸다면서요.
"영화 홍보 때문에 나갔는데 그 프로가 나랑 잘 안 맞더라고. 강호동씨가 게스트를 압도하고 내가 좀 쩔쩔 매줘야 하는데…(웃음)."
-후배들이 많이 어려워하죠?
"처음엔 백이면 백 다 내가 무섭대. 내가 말도 잘 안 하고 따뜻한 성격도 아니니까. 그런데 조금 친해지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기자 양반이 봐도 내 눈이 무섭소? 그리고 내가 신해철씨처럼 사람들 얼굴을 잘 못 알아봐. 안면 인식 장애라는 병이래. 양복 입었던 사람이 어느날 점퍼를 입으면 전혀 딴 사람처럼 보이거든. 근데 이런 얘기 하면 우리 딸이 싫어해."
이런 핸디캡 때문에 김수미는 "깐깐하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야 했다.
●종교는 기독교인데 절에 다닌다
-살갑게 따르는 후배가 있죠?
"(신)현준이. '가문의 위기' '맨발의 기봉이' 찍으면서 진짜 아들 같아졌지. 무뚝뚝한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 해봤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신인 때 여우짓을 못해서 PD들한테 좋은 배역을 못 땄지(웃음). 맨날 할머니만 하고."
-만약 커리어우먼이 됐다면 앞날이 캄캄했겠네요.
"그렇지. 보험 한 개도 못 팔고, 장사도 다 망했을 거야. 대신 느낌이 통하는 사람한테는 간이라도 빼주지. 내가 좀 외골수이지만 내 행동 반경에 들어온 사람한테는 정말 잘 해. 그래서 의상실이나 밥집은 거의 다 10년 단골들이야."
-모태신앙이라고 들었는데 절에 다니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런 걸 어디서 들었어? 우리 할아버지가 교회를 몇 곳 세우셔서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 분명히 하느님이 계시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절에 가야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그래서 법당에는 안 가는 조건으로 절에 다녀. 종교는 기독교인데 절에 다니니까 다들 이상하게 생각해. 요즘도 답답하고 속상할 때마다 절을 찾아. 나한테 절은 고단한 영혼을 쉴 수 있는 모텔 같은 곳이야."
-절이 모텔이라고요?"그럼. 아무도 나를 터치할 수 없고 내가 나가기 전까지 꼭꼭 숨어 있을 수 있으니까 모텔이지. 제주도 서귀포에 자주 가는 절이 있는데 거기 큰 스님이 내가 간다고 하면 언제든지 방 하나를 내줘.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스님들과 산보하고, 공부 많이 한 고승들과 이런 저런 대화하면 얼마나 마음이 정갈해지는지 몰라. '전원일기' 할 때 삭발하고 숨은 곳도 절이었어."
-그때 그런 일이 있었나요?
"연식이 돼 보이는데 그 사건을 모른단 말이야? 아무 이유없이 녹화하러 가기 싫은 거야. 세상도 짜증나고. 그래서 머리 밀고 스님이 되려고 무작정 절에 갔지. 당연히 '전원일기' 팀은 발칵 뒤집혔지.
연기자가 갑자기 펑크를 내고 잠적한 거니까. 일용엄니가 누구 만나러 간 것처럼 설정해놓고 제작진이 나를 기다렸는데 올 기미가 없자 아예 일용이까지 없애기로 했대. 그 얘길 듣고 짐을 쌌지.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면 안 되잖아."
●'안녕, 프란체스카' 이후 수미 언니로 불려
-간장게장으로 돈은 많이 버셨나요?
"그게 생각처럼 많이 남지 않더라고(웃음). 난 이유식 끝나고 밥 먹기 시작할 때부터 간장게장을 먹었대. 군산에 살았는데 친정어머니가 자주 만들어주셨지. 게딱지에 김 부셔놓고 밥 비벼먹으면 밥맛이 돌잖아. 결혼 후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를 발휘했는데 그걸 먹어본 손님들이 막 싸달라는 거야. 그러다가 '아예 팔아보라'고 해서 시작했던 거지."
-데뷔 영화 '오 해피데이'의 출연 비화가 있나요.
"그 영화 감독이 SBS TV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 작가였는데 어느날 전화 해서 '선생님, 촬영장에 와서 놀다 가세요' 하는 거야. 정중히 출연 요청했다면 아마 거절했을 거야. 그런데 놀다 가라는 말에 흔들렸지. 왠지 그 말이 좋더라고. 그 영화에서 박정철을 꾸짖는 욕쟁이 할매로 나온 뒤 '위대한 유산' '수퍼스타 감사용'에 잇따라 출연했지."
-혹시 출연을 후회하는 작품도 있나요?
"'구세주'가 그랬어. 후회까진 아니라도 좀 아쉬웠지. 제작자랑 친해서 출연했는데 생각했던 것과 달리 캐릭터가 불분명하게 나와서 거시기 했어."
-출연을 결정하는 1조1항은 뭐고, 혹시 연기할 때 콤플렉스는 없나요?
"머릿 속에 비디오가 그려져야 돼.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그림이 안 그려지면 안 해. 콤플렉스? 처음 얘기하는 건데 내가 마음까지 활짝 웃는 표정 연기가 잘 안 돼. 물론 연기로는 얼마든지 웃을 수 있지만 말이야."
-석호필을 좋아한다고 한 건 젊은층을 겨냥한 다소 계산된 발언 아닌가요?
"아냐. 왜 이렇게 세상을 삐딱하게 봐? 진짜 좋으니까 그런 말을 한 거지. '안녕, 프란체스카' 때문에 '수미 언니'라는 말을 듣는데 너무 좋아. 그 시트콤 팬들이 극장에 와서 나를 좋아해주는 것 같아. 문근영이 '국민 여동생'이니까 내가 '국민 맏언니' 하면 안 될까(웃음)?"
김수미는 늦깎이 인기에 대해 "모든 것에는 적당한 때가 있는 것 같다"며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돈도 그렇고 뭐든 억지로 얻으려고 하면 꼭 봉변을 당하게 된다며 조급하게 살았던 한때를 반추해 보기도 했다.
그는 요즘 쇼킹한 내용의 멜로 소설을 집필중이며 이르면 연말쯤 출간될 예정이라고 했다. 또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챙겨 보는데 "꼭 내 얘기 같아서 공감이 간다"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요즘도 BMW만 보면 피가 거꾸로 솟구쳐"
-혹시 미혼 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결혼하실 건가요?
"그럼. 내가 살림을 좋아하거든. 꽃 가꾸고 접시 모으는 걸 좋아해서."
-물론 현재 남편과 다시 결혼하시겠죠?
"당신 미쳤어? 당연히 다른 남자랑 살아봐야지. 우리 남편 젊었을 때 나 마음 고생시킨 걸 생각하면 지금도 죽지 못해 살아(웃음). 결혼하고 1년될 때까지는 설레였지. 초인종 소리나면 반갑게 뛰어나가고 그랬는데 10년 넘으니까 귀찮더라고. 집에서 저녁 먹는다고 하면 얼마나 짜증나는데. 밖에서 먹고 들어오라고 타박하지. 그런데 쉰 넘으니까 남편이 철이 들기 시작해. 걸핏하면 외박하더니 기력이 떨어지니까 아내한테 기대더라고. 한때지만 남자들 바람 피우는 것도 이해했어. 남자들 인생, 참 측은한 것 같아."
-어떻게 결혼하신 건가요?
"2년 동안 방송국에 찾아와서 죽자사자 매달렸어. 계속 안 만나주다가 그쪽 어머니를 만난 뒤 교제를 결심했지. 사업을 하셨는데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셨어. 그래, 저런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면 괜찮은 남자일 거란 믿음이 생겼어. 반년 정도 사귀다가 26살 때 결혼했어. 시장에서 실컷 떡 구경하다가 결국 손에 쥐는 건 가장 작은 떡이잖아. 이 남자도 잘못하면 놓칠까봐 나중엔 내가 서둘렀지(웃음)."
-심장 뛰는 사랑은 왜 유효기간이 있을까요?
"식으니까 사랑이지. 안 변한다는 건 말짱 거짓말이야. 대신 사랑은 뜨거운 음식 같은 거지. 그래서 식을 때마다 자주 덥혀줘야 돼."
-시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셨나 봐요.
"친정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더 그랬지. 부부싸움 하면 시어머니가 내 방에 꽃꽂이를 해놓고 아들 대신 미안하다는 카드를 꼭 써놨어. 세상에 그런 시어머니가 어딨어? 남편한테 못 할 얘기도 다 털어놓고…. 내 손을 잡고 '우리 집에 와서 고생 많다'고, '미안하다'고 말씀하신 게 눈에 선하네."
김수미는 차량 급발진 사고로 사망한 시어머니 때문에 쇼크를 받았고, 사고 차량이었던 외제차 회사와 7년간 법정 공방을 벌였다. 1인 시위도 했지만 결과는 패소.
그길로 집 앞에 세워뒀던 문제의 차도 폐차했다고 한다. 며느리가 공연하는 연극 포스터를 당신이 다니는 미용실에 붙이려고 나선 길에서 당한 변이었다. 그는 "지금도 BMW 마크만 보면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패소한 뒤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시어머니께서 젊었을 때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차비 좀 달라'고 손을 내미시는 거야. 내가 막 돈을 드리려고 하는 찰나에 꿈이 깨더라고. 아마 그때 완전히 내 곁을 떠나신 것 같아."
김수미는 이 말을 한 뒤 착잡한 표정으로 소주를 찾았다. 한동안 적막감이 감돌았고, 다시 말문을 연 건 김수미였다.
"난 그 생각만 하면 세상에 외톨이가 된 기분이야. 그렇게 외로움이 밀려들 땐 일부러 슬픈 노래를 틀어 놓고 울어야 돼. 혼자 청계산에 가서 풀과 꽃과 '잘 있었니. 다음주에 또 올게' 같은 대화도 나누지. 나는 용서와 화해를 시어머니께 배웠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김수미의 눈가가 발갛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김수미는 현재 소설을 집필하고 있을 정도로 표현력과 필력이 예사롭지 않다. 그가 취중토크에서 쏟아낸 말 중 일부를 어록 형식으로 정리해본다.
"절에 갔다오면 마음이 드라이크리닝 된 기분이야"
세상 사는 게 번민과 갈등의 연속이라는 김수미. 그러나 절에 다녀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며 이를 드라이크리닝에 비유했다. 짬이 날 때는 제주도 서귀포 돈내코에 있는 법승사를 찾지만 여유가 없을 땐 청계산이라도 찾는다. 정상까지 가지 않더라도 산 입구에 있는 절에 들러 한적함을 만끽하고 온다.
"늙을수록 지갑을 열어야 돼"
김수미는 인터뷰 후 다이어리 맨 앞장에 적어놓은 좌우명을 보여줬다. 거기에는 '유리할수록 교만하지 말고, 불리할수록 비굴하지 말자. 늙을수록 지갑을 자주 열고, 입은 닫아라'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는 이 좌우명대로 살고 싶지만 쉽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귀신이 있다고 생각해"
30대 때부터 예지력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김수미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했다. 현대 과학이 이를 입증하지 못할 뿐 눈에 보이지 않는 또다른 세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 얼굴을 보면 가끔씩 어떤 영감이 떠오르지만 가급적 얘기를 안 해준다고 했다. 절에 끌리는 이유도 그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범석 기자 [kbs@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01@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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