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생경한 그의 이름. 독일 작가.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극장에서 영화는 내려가고.
비디오는 아직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다운 받아 보긴 싫었다.
조그만 컴퓨터 모니터는 영상을 보기엔 적합하지 않다. 답답하다.
그러던 차에, 오래된 듯한 표지의 이 소설을 발견.
책도 제법 낡았고. 웬지 꼭 읽어야할 것만 같은 느낌.
1985년에 출간된 이 책의 배경은 18세기.
1738년 7월 17일,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탄생.
향기없는 자. 초반부는 오멘의 분위기. 악마탄생?? 이런 거??
유모 잔느 뷔시를 떠나 테리에 신부에게로.
가이아르 부인을 떠나 무두장이 그리말에게로.
1753년 9월 1일 마레 거리의 붉은 머리 소녀의 살인.
그리고 지세프 발디니 집에서의 수련.
그의 행로는 웬지 소름끼친다. 주변 사람의 죽음이 더욱.
그가 떠나면 생명을 빼앗긴듯 다들 죽어버린다.
강에 처박혀 죽은 그리말. 향수들과 무너진 집에 갇힌 발디니.
1756년 8월. 오베르뉴 산맥 동굴에서의 7년.
그 폐쇄되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진 그가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한편으론 걱정되고. 바보같은 순진함이 언뜻언뜻 비친다.
감각에 심취한 그. 가상의 공간에서 행복해하는 그.
자신의 무냄새에 경악하여 산을 떠나고,
몽펠리에에서 라 타이아드 에스피냐스 후작의 공기환기 장치란
거짓놀음에 참여하고, 드디어 인간의 냄새 제조에 성공한 그.
사람의 매력은 미세한 후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글 면면마다 펼쳐질 때마다, 망치로 두드리는 종처럼,
내 머리속은 뎅뎅 거렸다. 가슴도 두근두근.
지루한 듯한 무심한 문장 속에 긴장감 있는 흐름의 글들.
어쨌든 최종 목적지 그라스에 도착한 그.
그리고 후작은 피레네 산맥에서 실종되고, 우상이 된다. . .
로르 리쉬의 향기에 매혹된 그르누이는 2년을 참는다.
아르뉠피 부인과 드뤼오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두더지처럼 자신의 몸을 숨긴채, 인간의 여러 향수로 가장한 채.
그의 향수 사용을 읽고 있자면, 옷을 입는 듯 보인다.
동정심, 관심, 무관심. . .최종은 사랑이었지만.
유지를 사용해 냄새를 빨아들이는 부분은 뭔가 꿈들대는 기분이다.
24명의 왕관의 부속물의 소녀 희생물.
다이아몬드보다 영롱한 왕관의 핵심 1명, 로르.
단 한 번이라도, 후각이 아닌 시각으로 그녀를 보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청년 그르누이의 삶이 달라졌을까??
향기란 건 살아있는 사람에게 풍길 때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아름다울지라도 박제되어, 병에 갇혀버리고 말 때,
그 스산함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끝없는 그르누이의 자기애. 신격화. 그리고 비웃음.
그라스의 집단 성유희도, 파리에서의 집단 식인행동도,
단지 향수하나의 위력이라고 믿기엔 석연치 않다.
사람들의 이성을 잠궈두는 자물쇠를 사정없이 파괴해버린 그.
지나친 자신감이 화를 불러 생을 마감하고만 그.
아니, 어쩌면 예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진작부터.
향수 몇 방울의 위력을 아는 그가,
굳이 빈민촌을 찾아들어 향수병을 뿌린 것은, 자살이 아닐까.
자신이 태어난 곳을 향해 거슬러오르는 연어처럼,
자신이 태어난 더럽고 추악했던 악취의 향수에 도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 곳에 자취를 남기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한참을 사람을 쥐었다, 놓았다하는 소설.
작가가 그 시대에 살았던 그르누이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착각.
책을 다 읽고 덮고나니, 책이 살아있는 생명인 양 만지기 무서웠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 더 읽기를 갈망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묘사. 감각의 향연. 후아. . . . . .
냄새없는 인간. 그건 로봇에 다름 아닐까.
조금만 배경을 바꾸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SF소설이 될 듯.
심장이 없는 안드로이드. 사람의 껍질을 쓰고 싶어하다.
에휴. 그르누이. . .그르누이. . .
산 속에서 자신의 환상에 빠진 채 동사했더라면, 행복했을텐데.
향기의 책을 읽고, 향기의 술을 마시던 바보같던 그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