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의 중역인 사에키는 평소와 다르게 조금씩 이상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국 그것은 알츠하이머 병의 초기 증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사에키와 그의 아내 에미코는 새로운 삶을 살기위한 준비를 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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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의 감정상태는 차분하지 못하고 무척 흥분되어 있는 단계였기 때문에 어쩌면 냉정한 평가를 내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를 그렇게 흥분시킨 것은 이 영화자체가 갖고 있는 여러 요소들인데, 나는 이 영화가 시나리오, 연출, 연기, ost 등 영화의 수준을 가늠케하는 주요 부문들에서 수위를 점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것 하나 뒤떨어지는 게 없었으며 하나같이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연출에 있어 다소 끌리셰적인 경향들, 예를 들면 트랙샷의 사용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한 예전에 있었던 요소를 극의 분위기에 아우르도록 배치한 그 점을 높이사고 싶다. 말하자면 하나의 경향, 혹은 방편이자 관습으로 사용되던 것들을 정말 적절하게, 적절한 시점에 이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극의 감정선을 저해하지 않고 이어나가거나 나아가 더 증폭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지 알고 연출을 했다는 얘기다.
신파적인 경향도 그다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극의 맥락속에서 벌어질수밖에 없는 것들의 제시이기 때문에 특별히 눈에 거슬리는 것은 없었고 다만 그러한 신파적 무드를 조성할 수밖에 없는 에미코의 유순한 성격에 "저런 사람이 어디있냐?"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답변을 달리하고 싶다.
시사회 2번을 포함, 극장에서만 3번 본 영화, 그리고 집에서도 한번 더 본 영화기 때문에 설렁설렁 보지는 않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고 스파이더맨,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블록버스터가 판치고 있는 이 시기에 꼭 한번 봐줬으면 하는 영화다.
와타나베 켄은 시작하자마자 왜 자신이 월드스타인지 몸으로 보여준다.
앞으로의 극 내용의 방향을 말해주는 컷이다.
카메라는 프레임의 외벽쪽으로 그를 밀고간다. 조금씩 그가 처할 입장을 암시해주는듯도 하다.
연출의 끌리셰라고 말할 수도 있는 부분. 사에키에게 혼란스러운 이 상황은 트랙샷으로 보여지고, 사에키가 어려움을 느끼며 길게 느끼는 시간은 사실 현실적으로 그렇게 오래된 시간이 아님을 밑의 컷이 FF로 보여진다.
일상 생활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다가왔던 행동, 삶의 형태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런 시선이 훌륭하다.
어디론가, 대개 프레임 왼쪽을 향해 가는 대상물을 핸드헬드로 담았을 때의 느낌. 그 샷 자체의 느낌만으로도 긴장감을 조성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샷 셀렉션이다.
연기 리허설과 디렉션이 없는 배우들의 창조물이라고 한다. 정말 대배우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캐릭터 분석력과 행동에 대한 연구력이 대단하다.
젊은 시절, 두 사람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행위. 쇼윈도에 지나가는 젊은 남녀 한쌍이 비친다.
스릴러적이고 어드벤처적인 시퀀스 연출. 그는 과연 회의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 실상으로 보면 물론 큰 문제긴 하나, 당장 생명을 위협할만큼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 이것의 성공 실패여부는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문제이고 관객들의 동참을 이끌어낸다.
프레임의 정중앙에 위치한 그지만 프레임 안에서 그의 비중은 작다. 현실에서 그의 비중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샷. 이 씬이 진행될때 그의 큰 업적인 도심을 수놓은 기가포스 이미지가 교차편집으로 보여진다.
호러적 뉘앙스를 갖는 시퀀스. 드라마라는 한 장르내에서 간간히 스릴러, 호러와 같은 타 장르의 연출 방향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큰 축 안에서 살펴보면 무척 영리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영화의 뉘앙스가 공포적일 때 우리는 사에키가 자신의 상황을 공포적으로 느낌에 동감하고 한편 난관에 부딪힌 그와 함께 그의 난관을 같이 타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주는 연출을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주제의 함축적인 샷. 이 상황을 관객만 알기때문에 이를 보는 관객들의 감정은 더욱 애틋하다.
몸과 마음을 바쳐 일했던 회사 앞에서 그는 보잘것 없이 작은 존재로만 느껴진다.
달라진 생활상. 몽타쥬 화면으로 제시되는데 이때 흐르는 경쾌한 음악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역시나 많이 보여지는 것. 날씨의 변화다. 날씨의 변화는 앞으로 다가올 사건에 대비하도록 말해줌과 동시에 하나의 예견이 되기도 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다른 요소의 변동으로 말해준다. 이를테면 이 씬에서 사에키와 에미코의 갈등은 어항 속 물고기들의 움직임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연관은 없지만 비유적인 제시가 오히려 더 극적인 상황임을 말해준다.
사에키의 기억을 건드리는 것. 그는 현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만큼의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모든 부분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만큼 극의 전개가 이뤄지고 그것은 관객이 모르던 사실, 혹은 우연으로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나리오의 치밀함과 내러티브 상 전자의 설명이 더 맞다고 할 수 있겠다.
대개의 관객은 저 뒤에 무엇이 있는지 이 순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까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더 뛰어난 것은 그 상황이 되었을 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다. 시나리오 대사가 얼마나 훌륭하게 쓰여졌는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라 생각하며 이러한 긴장감을 유발시키는데 무음의 슬로우로 진행시킨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에 박수를 보낸다.
벌어지고 있으나 믿을 수 없는, 혹은 믿기 싫은. 연기 디렉션의 유무를 떠나 출연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의 모습은 이미 평가의 선을 넘어섰다.
같이 봤던 사람은 이 장면에 대해 뭔가 더 강하게 뒷통수를 치는 무언가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던데 내 생각은 다르다. 이것만큼 더 강력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 일련의 모든 것들을 다 본 후에 앞과 뒤로 병치된 이 컷을 보게되는 것의 느낌. 이렇다 저렇다 설명없이 그저 사물(물론 개인과 타인이 개입된)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짓는 것. 세련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호소력있는 연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