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의 대 제국이 통치했던 대부분의 땅들은 혼란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갈기 갈기 찢겨진 영토와,
그것을 둘러싼 수많은 전쟁
희생양들.
브리타니아 라고 불리었던 섬 역시 마찬가지 였다.
처절한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혼란의 시기에
노르망디 출신의 이방인.
정복자라 불리게 될 그 자는 브리타니아에 발을 들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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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0년 잉글랜드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은 계속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 견제한 스코트랜드의 하이랜더들과 아일랜드,
그는 자신이 소년이던 시절, 첫 전장에 발을 내딪었던 때를 언제나 잊지 않고 있었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여느 청년대와 같은 혈기왕성함을 절제 할 수 있었다.
그는 일을 확실하게, 그리고 천천히 진행시켜 갔다.
정복을 위한 군대, 승리를 위한 공작들.
잉글랜드 밖에서 벌어지는 프랑스의 성장과, 교황의 세력권 확대 같은건 관심도 두지 않았다.
이젠 늙어가는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영토의 보존과 자손들 이었으니까.
그에겐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로버트와 루퍼스, 그리고 어린 헨리.
세아들 중
헨리는 항상 윌리엄에게 자신이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던 전장을 생각나게 했다.
어리숙한 앞의 두 아들과는 다르게 통찰력이 있었고, 군중을 이끄는 리더쉽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16세 생일을 맞는 자신의 아들에게 작위를 내리며
그의 어린 아들을 시험 할 생각을 가졌다.
야만적인 힘의 도시, 안정이 필요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후한이 될 스코트랜드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했다.
삼백여개의 창과, 백여개의 화살이 그곳을 방어 하고 있었다.
그는 그 동안 준비 해 온 군대를 몇 해 동안 훈련 시켰고,
사령관으로 자신의 셋째 아들, 헨리를 임명하며 요크의 해방을 위한 출진을 감행했다.

그리고 1103년, 그의 셋째 아들 헨리는 요크의 무장 세력과 마주쳤다.
전투는 안개가 낀 새벽에 시작되었다.
예리하게 갈린 검이 살을 베어 넘겼다.
궁사의 화살이 갑옷을 꿰뚫 었고
기병대의 말발굽이 적을 무자비하게 집어 삼켰다.
요크에서의 전투는 신속하고 확고 부동하게 이루어 졌다.
포로는 없었고, 항전했던 517명의 요크군은 한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로써 윌리엄의 세번째 아들, 헨리의 입지는 점점 높아져 갔고,
반대로 그의 두 형, 로버트와 루퍼스의 불만은 증폭되어 갔다.
스코트랜드!
하이랜더들의 땅.
그들이 잘 갈려진 도끼와, 긴 장검이 헨리의 군대를 기다리고 있을 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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