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그리스. 학명은 콜룸바 라비아(Columba lavia).
나는 원래 지중해 암벽지대에서 살았어요. 인간에게 사육돼 전세계로 퍼져나갔죠.
우리 조상들이 한국에 온 것은 20세기 이후예요. 우리에겐 벼랑에서 살던 ‘클리프 행어’의 피가 흘러요.
그래서 도심의 고가도로와 다리 밑, 아파트 베란다에 둥지를 틀죠. ‘타워팰리스’서울시청 옥상의 사육장에서 사는 친구들도 있어요.
여기선 하루에 두번씩 25kg의 먹이를 주죠. 공공기관이 우리를 먹여살리는 유일한 곳이에요.
우리들이 왜 이리 많아졌냐고요?
원래는 사직공원, 남산공원처럼 도심 녹지에서 살았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 때 3천 마리가 방사된 이후 급속히 늘어났어요.
이 친구들은 대부분 한강시민공원에 자리를 잡았어요. 마침 인간들이 그해 7월 잠실·뚝섬·여의도에 집 9곳을 만들어줬고, 차차 집이 늘어 지금은 23곳이
됐어요. 집 하나에 32개 구멍이 있는 아파트 형태인데, 우리는 몸 부딪치는 걸 싫어해서 빈 구멍이 많아요.
아직 공원에선 모이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강에 사는 녀석들은 행복한 편이죠.
하지만 공원 주변에 사는 녀석들은 힘센 놈들이고, 저처럼 힘없는 동물은 단독주택가 근린공원이나 시장 주변에서 둥지를 틀고 쓰레기 봉투를 파먹고 살아요.
우리 인구가 적었을 땐 모두들 공원에서 럭셔리하게 살았지만, 많아지면서 힘없는 녀석들은 단독주택가와 아파트 베란다로 밀려났어요.

우리도 잘나가던 때가 있었어요. 서울시청에서 날리던 우린 국가적 행사 때마다 하늘을 날았죠.
1985년부터 2000년까지 모두 90차례 ‘평화의 사도’로 출동했지요. 대통령배 고교야구 개막식, 한민족 체전….
1989년 12월 임진각에서는 ‘북한사회 개방’을 염원하며 북녘 땅으로 가기도 했어요.
마지막 출동이 2000년 1월이었어요. 서울시도 이제 행사용으로는 날리지 않겠대요. 서울시청도 신축하고, 우리의 집도 곧 사라지겠죠.
내가 속한 가족은 원래 청계고가도로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2년 전 고가도로가 헐리면서 수천의 동지들이 집을 잃었어요.
근대 역사상 최대의 비극이었죠. 우리는 고양이처럼 ‘영역동물’이라 다른 녀석들이 장악한 지역에는 들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많은 친구들이 서울을 떠나야 했어요.
그나마 우리 가족은 청계시장 주변에서 둥지를 틀고 지금까지 떠나지 않고 있어요.
10월 청계천 복원공사가 끝나서 다리가 준공됐는데, 이제 기회를 봐서 교각에 둥지를 틀려고요.
인간들은 ‘조류 대가리’라는 비속어를 써가며 우리의 지능을 얕보지만, 서울에서 우리만큼 정확하고 길 감각이 탁월한 동물도 없을 거예요.
우리는 아침 7시, 오전 11시, 오후 4시, 하루 세번 신당동 중앙 시장 곡물가게 거리로 밥 먹으러 가요.
이때가 지방에서 쌀이며 보리가 올라오는 시간이거든요. 먹을거리가 부족하면 가게 안으로 진격해 쌀 포대를 쪼기도 하죠.
하지만 대우상회 김씨 아저씨는 조심해야 돼요. 불과 4~5년 전만 해도 우리 동족을 구워먹어서 악명이 높았거든요.
더군다나 서울에 사는 녀석들 먹으면 큰일나요. 다들 정상이 아니거든요.
녀석들의 뼈 1g에는 평균 29.5㎍(마이크로그램. 1000분의 1mg)의 납이 축적돼 있어요.
산 좋고 물 맑은 덕적도 우리보다 16배나 많아요. 원래 우리는 7년을 살 수 있는 동물이였지만, 지금의 우리는 2~3년밖에 못 살아요.
우리 배설물은 또 어떤데요. 강산성이라 자동차 색깔을 변색시키고 크립토코쿠스 같은 진균류는 면역력이 취약한 인간에게 치명적이라는 보고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들도 인간이 쳐놓은 각종 줄에 걸려서 발목이 성한 친구를 찾기 힘들 지경이에요.
제발 우리를 그리스로 돌려보내주세요.
고가도로 위에서 자동차 매연을 맡고 싶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다니는 차들을 피하기도 힘들어요.
서울시청과 공원에 사는 부유층 녀석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고향인 그리스로 보내주세요.
당신들도 우리를 싫어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