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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主觀)과 객관(客觀)

양철곤 |2007.06.20 15:06
조회 80 |추천 0

* 어느 절집에 큰스님 한분과 공부를 하는 행자가 여러명 있었습니다.

이 절에는 빈 방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날 큰스님께서 한 행자를 불러 "빈 방에 가서 방이 비어 있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행자는 방이 비어 있음을 확인하고 큰스님께 방이 비어 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큰스님께서는 야단을 치시면서 "다시 가서 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가 보았으나 방은 역시 비어 있었고, 행자는 큰스님께서 야단 치시는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주관과 객관의 문제 입니다.

나(我)는 주관이며, 그 외의 것(경계;대상)은 모두가 객관입니다.

객관은 주관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지 원래 있던 것은 아니므로 주관(我)이 자기의 관점으로 만든다 하여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오랜동안의 습성(본능적)때문에 주관적으로 판단하려 하기가 쉽고, 상대방의 입장인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위의 문제를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면, 행자는 자기가 그 방에 들어가 있었음을 자각하지 못하였든 것입니다. 

방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행자가 그 방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분명히 빈 방이 아닙니다.

이것은 제7식(말나식)인 자아의식(아애, 아만, 아탐, 아집;이기심;번뇌, 망상;無明;我相)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여 제6의식(意識)의, 있는 그대로를 순수하게 느끼게 하는 능력을 지배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제8아뢰야식(阿賴耶識;초월의식)의 초능력은 전혀 쓸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7識에 함께하고 있는 예지능력 까지도 방해하여 쓰기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으로서 자아의식을 버리고 해탈의 단계가 되면 모든 식(意識,생각,마음)은 지혜로 바뀌어 작용하게 되는데 이때 제5식은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인도하는 지혜인 "성소작지(成所作智)"가 되고, 제6식은 모든 사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남을 교화하는 지혜인 "묘관찰지(妙觀察智)"가 되며, 제7식은 모든 법이 평등하며 자타가 평등함을 깨닫는 지혜인 "평등성지(平等性智)"가 되고, 제8식은 큰 거울에 삼라만상이그대로 비치는 것과 같이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인 "대원경지(大圓鏡智)로 전환이 됩니다.

 

제1식에서 제7식사이에서 일어난 것은 모두가 業으로서 제8식에 저장 되므로, 제8아뢰야식은 바다고, 제1식에서 제7식은 경계(대상;조건)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파도와 같습니다.

생사를 초월한(不生不滅) 초능력의 마음(깨달은 마음;주객이 없는 마음)은 바다의 모습이고, 깨닫지 못한 중생의 마음(生滅의 마음;주객이 있는 마음)은 파도의 모습이나, 파도는 바닷물을 떠날 수 없습니다.

파도는 바람을 인연으로 일어 나듯이,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眞如;바닷물;一心,한마음;佛心)은 인연(無明;번뇌,망상;衆生心)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관과 객관의 문제가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는 말이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모든 종교공부(진리탐구)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며, 우리의 모든 고통을 없애주는 열쇠가 됩니다.

 

하나님(진리)과 부처(法;진리)도 나를 주관으로 볼 때 객관이기 때문에 주관(나)을 버리지 않으면 객관을 알 수 없습니다.

나를 버리면 모두가 하나(不二,不異)로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써온 글의 내용이 모두 "나를 버리는 것"을 근본으로 하였으며, 앞으로 쓸 글의 내용의 근본도 이것으로 할 것입니다.

깨달음도 나를 얼마나 버렸느냐?에 따라서 여러 단계로 나누어 집니다.

 

나를 버려야만 時空을 초월하여 무상(無常;만물은 항상 변하고 있다)을 볼 수 있고, 무상을 보면 空을 보게되고, 모든 경계(주관과 객관)가 다 사라지며, 모든 차별심, 분별심이 없어 지므로 이것은 결국 불법의 대의를 체득한 반야의 지혜의 작용인 中道의 삶으로서 나타나게 됩니다.

 

나를 버리는 것은 어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으며, 오직 나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버리기 위하여 수행하며, 나를 버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고 절대 복종을 하지 않으면 나를 완전하게 버리지 못하여 진정으로 "주여!"하지 못하게 되며, 수행하여 깨달음을 체득하지 못하면 완전하게 나를 버리지 못하게 됩니다.

 

어떻게하면 나를 버릴 수 있을까요?

이 문제 역시 깨달아야 버릴 수 있고, 버려야 깨달을 수 있으며, 믿음으로서 순종하여야 버릴 수 있고, 버려야 믿고 순종할 수 있으므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3차원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차원의 세계는 하나의 선의 세계이고, 2차원의 세계는 선이 여러개가 각(角)을 이루면서 형성된 평면의 세계이며, 3차원의 세계는 평면이 여러개 모여서 만들어진 입체의 세계입니다.

4차원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합친 것이기도 하지만, X,Y,Z의 직각의 축에 다른 한 축을 집어 넣었을 때에 X,Y,Z와 만나는 다른 축과의 모든 곳이 또한 직각의 구조로 만드는 것입니다.    

각각의 세계에서 살고있는 생명체는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데 알맞게 구조적으로 발달 되어 있습니다.

1차원의 세계에서 고차원의 세계까지는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공간에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현재 지구상에는 1차원에서 3차원까지 존재 합니다.

 

가령 1차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는, 2차원인 평면위에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선을 그어놓고, 먹이를 선위와 평면위에 골고루 뿌려 놓으면 선위의 먹이만 먹을 줄 알고 선 밖의 평면상의 먹이는 가르쳐 주어도 먹기가 거의 불가능 하며, 마찬가지로 2차원인 평면에 3차원인 입체속에 먹이를 넣어 놓으면 2차원의 생명체는 끄집어낼 수 없으나 3차원의 생명체는 끄집어낼 수 있게됩니다.

 

우리는 금고속에 넣어둔 것은 열쇠로 열거나, 열쇠가 없으면 금고를 부수어야 꺼낼 수 있으나, 4차원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땅에 떨어진 물건을 쉽게 집을 수있듯이 맨손으로 그냥 꺼낼 수 있습니다.

4차원이 볼 때에 3차원의 공간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4차원의 사람이 3차원인 우리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모세의 기적, 부처님의 신통력과 같은 고차원적인 초능력이나, 종교적인 믿음의 능력으로 병을 낫게 하는 것 등의 과학으로 설명되어 지지 않는 것들이 이러한 까닭이며, 이 능력은 망념(無明)에 가리워져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 능력을 발휘 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 주관적인 내생각(我相;고정관념;번뇌,망상;無明;이기심;지식,알음알이)을 버리면 우주의 근본인 진리를 체득하게 되어 고차원의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차원의 능력은 신비스러운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야의 지혜로서 中道의 삶을 살아 모두를 이익되게 하는 것입니다.

신비스러운 능력에 잘못 집착하면 진리를 거스르게 되어 마귀의 장난에 시험들게 되며, 마구니의 장애에 시달리게 되어 구원 받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원인이 됩니다.

오늘날 이것을 착각하여 구원받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무리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3차원의 나는 참나(진아,眞我)가 아니나, 우리는 착각하여 지금의 내가 참나인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 드렸듯이 4차원 이상의 의식으로 보면, 3차원의 의식이 잘못 되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으나, 아무리 설명을 해 주어도 알아 듣지를 못합니다.

 

마치 앞을 못보는 사람에게 무엇을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어도, 눈을 뜨고 보았을 때와 상상으로서 생각 할 때와는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방에 갑자기 밝은 불이 켜져 일시에 다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를 합니다.

 

3차원의 내가 꿈을꿀 때 꿈속에 내가(주관) 있고 주변에 여러가지 대상(너)이 마치 현실처럼 있습니다. 꿈을 깨고나면 그것들이 모두 허상 이라는 것을 압니다. 3차원의 의식은 제7식(말나식;자아의식)이 가장 발달되어 항상 내가 있다(有我)고 생각 하기 때문에 주객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하고, 보이면 있다고 합니다.

 

망념(번뇌,망상;무명)에 가려서 나타나지 않는 초능력(반야지혜)은 3차원으로는 알 수 없는 4차원 이상의 의식입니다.

종교공부가 어려운 것도 3차원의 의식(고정관념)을 4차원으로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차원의 인간세계를 깨달음의 생각(無我:無念:眞我;한마음)으로 보면, 모두가 실상이 아닌 허상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꿈을 깨고 나면 그것이 실상이 아닌 헛것이 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나를 버려서 완전하게 죽이는 것은 번뇌, 망상(지식,알음알이)을 버리고 완전한지혜(本性,眞如,一心,淸淨心;無我)를 쓰는 것을 말하며, 이것을 "지혜의 칼(活人刀)이라고 하며, 이 칼로서 살아가는 것을 "中道의 삶" 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우리들의 마음(心識:생각)의 작용, 즉 일어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넓게 쓰면(나를 버린 마음;無我) 우주를 품고도 남음이 있지만, 좁게 쓰면(有我:고정관념) 바늘 하나도 꼽을 자리가 없습니다.

 

모든 별(星)의 탄생은 空의 폭발(Big Bang;空卽是色)로 인한 것이며, 모든 별의 종말도 폭발로 인해서 흩어지는 것(色卽是空)이므로 원래 不生不滅이며, 이러한 현상이 윤회하고 있는 사실을 3차원의 의식으로는 확인되지 않을 뿐 우주 공간에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임을 오늘날 과학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알고는 있지만 확실하게 믿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사실을 우리가 바로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확실하게 경험하시고 그 경험을 가르침으로서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 부처님, 그리고 여러 성현들 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를 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믿음"입니다.

그 까닭은 3차원이 아닌 4차원 이상의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신심(信心;믿음)이란? 확실하지 않은 것을 가르침(성경, 경전, 조사어록)으로서 믿는 것을 말하며, 모든 종교공부는 믿음으로 시작해서 깨달음(구원)으로 끝이 납니다.

깨닫고(구원받고)나면 믿음은 더욱 강해져 변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변하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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