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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진미라 |2007.07.04 12:30
조회 58 |추천 2


Bonnard, Pierre

(b. 1867, Fontenay-aux-Roses near Paris, France; d. 1947, Le Cannet, France)

Breakfast

ca. 1907

Oil on Canvas

Bottmingen

 

 

바이올린의 G현.

재스민꽃의 향기.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밤.

달리는 기차.

수학 교과서.

곁방 문이 열리고 소곤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알리는 소리.

횔덜린의 시.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만월의 밤.

휴가의 마지막 날.

 

해마다 여름의 끝물에는 묘한 기분이 되곤 한다.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심하게 가을을 탄다. (내가 "여자답지" 않은 부분은 이 것 외에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무더위가 잦아들고, 저녁나절 바람이 선선해지는 무렵부터가 이미 나에겐 가을이다.

여름을 함께 보냈던 가족들이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떠들썩했던 여름의 기억을 뒤로 한 채 어느새 눈앞에 맞닥뜨린 지난 8개월의 시간.

정신없이, 혹은 하는일없이 보낸 그 시간에 짓눌리고,

아직 끝내지못한 모든 일에 쫓기고,

한 해가 또 2/3가 지나갔다는 조바심과 스산한 바람에 떠밀려

내 마음은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기나긴 겨울잠으로의 도피를 어느새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발그스름한 가을 햇볕에 잠에서 깨어 느지막히 일어나 홀로 마시는 차 한 잔,

또는 꼭 오랜 친구가 아니라도 그저 한 순간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쌀쌀한 밤바람에 몸을 움츠리며 포장마차에서 기울이는 소주 한 잔.

그도 아니라면, 적어도 그 정도의 위안을 줄 수 있는 그림 한 장...이라도.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은 언젠가 페이퍼에 써먹어보려고 몇 장 가지고 있었는데,

이 그림은 오늘 우연히 자주 들르는 미술 사이트에서 발견했다.

트위드나 빌로드인 듯한 반짝이는 옷감의 질감과, 여인의 갈색머리,

애수에 잠긴 깊은 눈과 서글픈 미소를 띤 입매, 길고 미끈한 흰 팔,

그리고 먹다만 아침 식사 접시가 어우러져

뭔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요즘 내 심정과 비스무리하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어딘가 완전히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은 그 기분이 더 잘 어울린다.

 

나비(Nabi)파의 대표적인 화가로 불리는 보나르는

앵티미스트(Intimist)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친근감, 공감"을 뜻하는 단어 "Intimacy"에서 유래하였다.

보나르의 아내 마르뜨 부르쟁(Marthe Boursin)은

피해망상증과 강박증, 신경쇠약 등 갖가지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화가와 모델로 만난 "한 마리 작은 새 같은" 그녀를 평생 동안 사랑한 보나르는,

결벽증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목욕을 하는 아내의 모습을 그리고 또 그렸다.

마르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녀의 방을 잠가버리고 두번다시 들어가지 않았다고.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을 지켜보기보다는 공유하는 쪽을 택해

함께 예술 속으로 침잠해버린 보나르의 그림에서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쏟아지는 빛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상파에 반기를 들고,

찰나의 순간 영혼을 관통하는 감정을 색채로 옮겨놓은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가슴 시리게 고운 가을의 빛깔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뜻한다.

떨치지 않으면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없으니,

이제는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로

한걸음 한걸음 옮겨놓아야겠지만,

막 마지막 차 한 모금을 마신 아침 식사 테이블처럼 미련이 남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것이 내가 가을을 타는 이유이다.

추천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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