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날 사랑하는 줄 알았어요..,
‘난 그가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어요.’
상대가 자기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탄식하고, 우는, 배신감에 떠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얼마 전, 섬머셋 모옴의 ‘인생의 베일’이라는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라며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이라고 강력 추천하는 후배의 말을 듣고 본 영화는‘페인티드 베일’이었다.
배경으로 펼쳐지는 중국의 광대한 산과 들 그림도 좋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주 고전적이어서 끌려들어갔다. 사랑하지 않지만, 조건이 좋은 남자라서 결혼적령기에 밀리듯, 혹은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한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다.
오늘 날에도 사랑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조건이 좋고, 나쁜 사람은 아니며, 내게 잘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이 아직도 여전히 많다. 심지어 아주 찐한 사랑에 실패한 사람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혹은 누구랑 결혼해도 이제 그 사람은 아니라는 좌절로 아무나와 덜컥 결혼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데 놀라곤 한다.
여주인공 키티는 자신과 문화적으로 배경이 다르고 좋아하는 취향도 다른 남편과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해나가다가 찰스라는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 남자는 능력도 있고, 권력도 있고, 돈도 있으며, 아주 미남으로, 여자를 즐겁게 해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녀와 취향이 비슷했다. 예측하듯이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고, 남편 몰래 밀회도 하게 된다. 남편이 준 결혼반지를 끼고 있지만 연인이 준 반지를 목걸이에 꿰어 가슴속에 간직하고 밀회를 계속하던 어느 날 집에 들른 남편에게 들키게 되고, 남편은 모욕감에 아내를 전염병이 발병한 중국의 오지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 살면서 서로의 진정한 모습에 이끌리게 된 부부는 다시 사랑을 회복하지만 남편이 전염병에 걸려 죽고 만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내 관심을 끈 것은 키티는 연인 찰스를 사랑했고, 그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믿었으나, 찰스의 감정은 그렇게 까지 깊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한남자의 조언으로 찰스가 워낙 여성과의 관계를 그렇게 끌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키티는 여전히 찰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런 남녀관계는 현실에서도 종종 마주칠 수 있는데, 결국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짐작으로 믿어버리고 관계를 진행시키는 경우이다. 명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키티는 오해했고, 찰스는 정직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계는 여성들이 '불편함' '죄의식'을 피하기 위해 '그냥 믿어버림'으로 갈 때 일어나는 흔한 상황이다.
사랑은 상대에게 솔직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사랑에 섣부른 여성들이 의존적이라면 남성들은 그 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섹스에 빠지고 나면, 여성들의 오해는 더욱 깊어간다. 그래서 더욱 명확한 의사표현이 필요하다. 남성으로서도 불유쾌한 오해에 휩싸이고 싶지 않다면...
'깊이 사랑하지는 않지만 당신과 섹스하고 싶다'든지, '당신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섹스하고 싶다'라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여성은 그 제의에 대해 자신은 어떤지를 생각해 볼 것이다...
남녀사이에 가장 큰 오해와 상처는 '... 것이다'라고 짐작하는 데서 온다..
두 사람의 섹스가 위선에 찬 것이었고, 찰스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사랑은 그보다 깊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두 사람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랑의 방식은 이렇게 다 다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무게나 사랑의 느낌도 다 다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상대의 사랑을 자신의 것과 같다고 믿어버리는 데 있다. 그리고 나선 억울해 하고, 속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자신에게 속은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잘한다는 것은 참 어렵고 학습이 필요하다. 사람의 유형이 천 가지 만 가지이듯이 사랑의 모습도 다르다. 자신과 닮은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래서 행운이다. 여러 모습의 사랑에 빠져 봐야 자신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패턴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있다. 좀 더 자기다운 사랑을 할 수 있고, 상대의 사랑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시시콜콜히 물을 수도 없고, 물은 들 매번 잘 대답이 될 것이라 자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상대의 사랑에 대해 함께 자주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사랑의 방식과 상대의 것을 정확히 잘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낭만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서로를 알아가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이란 결국 ‘상대를 잘 알아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영화에서 키티는 결국 남편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그 점도 여전히 석연치 않기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의 사랑을 입중하고, 선택할 대안’이 전혀 없었고‘ 성적 이끌림에 의한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어가는 사랑이었다기 보단 그가 가진 ’휴머니티‘에 감화(?)된 인상이 깊다.
뭐, 어쩌랴.. 사람이 사랑에 빠져들고, 사랑에 이끌려가는, 사랑을 진행하는 방식이 다 다름에야....
배정원 관장 (제주 ‘건강과 성’박물관)
조선일보 <와플닷컴>에서 본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