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Episode4. 'Winter' - 스웨터 (위대한 유산)
예고에도 없던 겨울비가 추적추적 창문을 타고 곧게 뻗어내리며 둔탁하게 부서지던 어느 겨울 날, 늦은밤 막 잠자리에 드려는데 유난스럽게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자신을 간호사라고 밝힌 한 여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청천벽력같은 난보를 전했다. 그 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 수술중이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오늘 낮에만 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내 손을 포근히 감싸쥐며 부드러운 입술로 내 얼굴을 촉촉하게 어루만지던 그가 지금 차가운 수술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니... 아무래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변을 당한 모양이다. 그래도 미미하게나마 정신이 남았던지 수화기를 떨구기전에 병원 이름과 위치를 묻는 일은 잊지 않았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대충 훔치며 잠옷 바람 그대로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 머릿속이 하예졌고 부르를 떨리는 입술은 멈추기를 거부하며 그 반복적인 날갯짓이 흡사 기계의 그것이었고 깍지낀 두 손은 뜨거운 기도로 냉정을 재촉하고 있었다.
거스름을 받아 챙길 새도 없이 택시에서 도망치듯 뛰채내려 정신없이 내달렸다. 병원 입구...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억지로 억지로 들어간 병원안, 때맞춰 수술실에서 초록색 수술복 차람의 안경잡이 한무리가 침대위에 가만히 누운 한 환자를 이끌고 수술실을 빠져 나온다.
싸늘한 기운이 온 몸을 휘감자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제의 환자 앞으로 다가섰다. 하이얀 천대기를 얼굴까지 뒤집어 쓴 차가운 나무토막... 누가 말릴새도 없이 천을 끄집어 내리자 낯익은 한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져있다. 의사들은 한숨을 내쉬며 땅에 닿을 듯 축쳐진 어깨를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내 시선을 피하려는듯 애써 고개를 돌리며 먼산만 바라보는 모습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 시각,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울슴소리도 신음소리도 아닌 기이한 통곡으로 절규하며 차가운 현실의 벽 앞에 산산히 부서지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을만큼 두근 거리는 심장은 그 이를 처음 만났을때와는 또 다른 모냥으로 쉼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렇게 그를 떠나보냈다. 한줌재가 되어 강물위를 유유히 떠어가는 모습에 원망의 눈물이 용솟음쳤다. 한마디 말도 않고 이렇게 나만 홀로 남겨둔채 영영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훌쩍 떠나버린 그 이가 너무도 애처로웠고, 그렇게 남겨진 내가 너무도 한심했다.
장례를 마치고 그의 자취방을 찾았다. 그 이가 매일 먹고 자는 곳이니 그래도 아직 그의 온기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지 않을까 해서 였다. 뿐만 아니라 이제 집도 비워줘야 하고 그의 손뗴묻은 소박한 살림살이들에게도 주인의 부고를 알려야만 했다.
삐걱거리는 낡은 나무문을 열어재끼자 쾌쾌한 홀애비 냄새가 코 끝을 파고든다. 개지도 않고 내팽개쳐둔 이불이며, 적어도 일주일은 묵혀뒀을법한 빨래감들이 제 멋대로 널부러져 있다.
그리고 왠 허연 실뭉탱이가 흥건하게 부어오른 내 눈을 사로 잡는다. 반쯤 짠 스웨터였다. 몇주전부터 괜히 멋쩍게 웃으며 내 싸이즈를 묻고 준비하고 있는게 있다며 조금만 기다려보라던 그 이였다. 감히 다른 이의 것이리라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나는 스웨터를 꼭 끌어안고 또 다시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핏빛 물 든 미완의 스웨터는 가난한 그 이가 사랑으로 내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었다.
Written by. JKY
paper.cyworld.com/BWwann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