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시 생각을 해 봤다.
왜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그렇게도 개고기를 먹지 말자고 하소연하면서 울어댈까?
정작 몸에는 7백만원이 넘는 밍크를 두르고서...
밍크를 좋아하는 귀부인들에게 밍크를 잡는 잔인한 살육 장면을 보여줘 봤자, 어차피 말짱 황이다. 아주 무덤덤하게 반응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개를 죽이는 장면에선 치를 떤다.
또한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귀부인들에게, 개는 특별대우를 받는 동물이다. 베네치아, 나폴리등지의 항구에선, 길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예쁘게 치장을 한 애완견과 함께있는 세련된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스탄불은 유럽과 접해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를 유럽인만치는 아끼지 않는다. 16세기 유럽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동서양의 문물이 융합되는 교착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스탄불에서 애완견이 성황하지 않았던 것은 나에게 의외였다.
개고기를 반대하는 자들은 개는 인간의 친구라느니, 개를 죽이는 도살방법이 잔인하다느니, 비위생적이고 혐오스럽다느니, 개를 먹는 문화는 야만 문화라느니...
이런 이야기들을 해대면서, 그들은 정작 몇가지 모순을 남긴다.
개가 인간의 친구라느니, 잔인하다느니 말하면서도, 정작 투견장에서 이빨이 뇌에 박혀 우윳빛 골수가 머리에서 울컥울컥 솟아나오는 투견들, 다리를 잘려 절룩거리는 개들, 고환을 물어뜯겨서 배를 들쳐보면 통째로 살점이 한주먹 가량 떨어져 나간 늙은 개들, 척추가 부러져서 ㄱ 자로 움직일 수 밖에 없게되어 불구된 개들을 그들은 옹호하지 않는다. 옹호하지 않는다기 보단 관심가지지 않는다. 투견장에서 개보호협회 사람들이 농성했던 적은 없다.
오로지 모란장에서, 식용으로 쓰일 개들 앞에서 그들은 말이 많다.
정작 개고기를 먹지 말자고 하는 이들중 어떤부류는, 그네들이 키우는 강아지에게 독한 염색약으로 귀를 빨갛게 물들이고, 그로인해 염증이 돋아나면 병원에 가면 그만이고, 발기가 되지 않도록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짖지 못하게 성대를 절개해 버린다.
'왜 중성화 수술을 해야하죠?' 라고 물어본 나의 질문에 어떤 사람은 '그래야, 이상한 짓을 안해' 라고 답한다.
강아지를 사랑한다면서, 개가 성장했을때, 순리적으로 발기가 되어 붉고 핏줄 올라온 성기가 표피를 뚫고나와 발딱거리며 커다랗게 서있는 모습은 징그럽기 때문에, 또 그 커진 빨갛고 불끈거리는 성기로 다리에 매달려 강아지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자연적인 행위가 단지 '싫어서' 수술로서 막는다?
실소를 자아내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끊임없이 사랑해 사랑해를 외치며 해대는 그네들의 행동이 오히려 혐오스럽기만 하다.
아주 명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행동을 하는 그네들은 개를 '사랑한다' 라고 말하지말고, '예뻐서 좋아한다' 라고 말해야 이치에 맞는 것이다. 또한 자기식으로 좋아한다는 것도 부정하면 안된다.
그들은 예뻐야만 좋은 것이다. 미(美) 적인 관점에서 배제된 수많은 불구견들과 유기견들에게 손을 뻗치지 않는 현시대의 태세만 놓고봐도, 또 같은 종자라도 더 예쁘고, 작고, 귀엽고 잘 나온 강아지를 돈을 더 들여서 사는것만 봐도, 충분히 할말이 없지 않은가.
2006년 개 보호센터에서 집계한 유기견들만 4009마리란다. 그리고, 미처 손쓰지 못해 계속 거리를 헤메거나 길에서 죽는 개는 그 열배에 이른다고 추측한다.
4만마리의 개들이 단지 불구니, 못생겼다는 이유로 길거리를 헤메고 있는 것이다. 개고기를 반대하는 입지에 있는 사람들중에, 그 이유를 '개는 다른 동물들과 다르고, 인간의 친구이기 때문에' 를 들먹이는 사람들중에 로드킬 당한 터진 개나, 길가에 버려진 헤메는 개들을 안아서 묻거나 보호양성소로 데려다 준 이들이 있다면, 나는 당신들에겐 할 말이 없다. 인정하니까.
개를 사랑한다고 말할수 있는 사람들은, 유기견들을 데려다 보호해주고, 불구된 개들이 길거리를 헤메다 죽지 않도록 보살펴주고, 어떤한 종자가 멸종위기에 처했다면, 멸종되지 않도록 관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야말로 그렇게 '나는 사랑한다 개를' 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지난 겨울 모란장에서 개를 죽이지 말라는 표어와, 불쌍한 강아지의 귀여운 눈망울이 프린팅된 펫말을 들고 항의를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통행도 못할 정도의 피해를 끼치면서, 개 도살장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그들이, 정작 일과를 마치고 모여 소갈비집으로 회식하러 들어가는 이중 잣대가 아니꼬워서 그들을 비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밍크를 두른 귀부인은 없었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크로커다일 백이나, 여우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은 한 두명 있었으니까.
나 역시 누구나가 그렇듯 화가 났던 것은, '왜 소 돼지는 먹는데, 개는 먹으면 안돼?' 였다.
'왜 그들은 타당하지 못할까. 왜 그들은 개들의 성대를 찢어놓으면서도 개를 사랑한다고 할까?'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도 논리적으로, 너무나도 보편적으로, 너무나도 이성적으로 다가서기 때문에 간과해버리는 요소가 있지 않을까하고.
그것은,
'일반적으로 인간은 왜 그렇게 다른 종들보다 개에 필사적으로 목메이나, 모든 생명은 평등한 것 아니었나' 라는 문제에 대해서 가장 먼저 생각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곧바로, '왜 개고기를 반대하는 애완견옹호자들은 타당하지 못한가' 라는 문제를 첫도입부로 삼는 실수를 범했기에 개고기 반대론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21세기 인간은 수많은 동물들중에 왜 유독 개에게만 특별한가'
어쩌면 이것이 가장 처음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였던것 같다.
물론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반론으로,
'나는 돼지를 기르는데 난 돼지에 목메는데?'
'난 고양이~'
'난 나무늘보' 이런식으로...-_-;;
(이러한 각개 다른 좋아하는 동물들이 있을 수도 있거니와,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보는 것은, 그래도 보편화된 다수성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타당하지 못한 행동을 일삼아 우리를 이해못하게 하는가? 라는 지극히 중심에 서게될 문제점을 생각하기 전에 했어야 할 생각이다.
어쩌면, 다른 동물들과의 평등이나, 생명적 존엄성의 균일한 가치,
모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하다라는 이치적 논리, 개의 개체수는 넘쳐나지만 멸종위기의 동물은 많다는 상대적 중요성의 논리, 개 옹호자들의 모순된 행동 등의 '순차적으로 타당하지 않게만 받아들여지는 행동들' 을 나는 너무나 직시하여 바라보려고 하기 때문에, 우린 당연한 '사실' 을 못받아들이는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잠시 이러한 생각을 접어두고, 개가 왜 인간의 친구인지.
그렇게 말하는 개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어째서 생겨날 수 밖에 없었는지 나름대로 혼자서 짱구좀 굴려봤다. -_-;;;
첫째가, 개의 역할적 범위의 확장성이다. 즉 목적성의 총체적 합당치가 타종에 비해 월등히 우수하다.
개는 그 개체수가 많다. 개체수가 많은걸로 따지면, 바퀴벌레, 쥐, 개미, 고양이등도 그 수를 짐작키 어렵건데, 유독 개만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마도, 개체수가 많음과 동시에 인간과의 '융화적 측면' 에서 봤을때 개만큼 적합한 종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독 '없다' 라는 논리를 벗어나, 개가 태초부터 그렇게 해왔다 라든가, 어떤 개연성을 두고 개가 그렇게 되었다. 라고 보는것이 설득력이 있겠다.
그렇다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개체수가 많음과 동시에 혐오스럽지 않다는것은 사람과의 접근성이 우수하며, 동시에 사람을 향한 개의 역할적 범위가 넓어지고, 많은 방면에서 두각은 아닐지라도 그 효용성은 널리 퍼지게 되는것이 당연한 이유이다.
다루기 쉬운 동물은 비둘기가 될 수도 있다. 전서구로써 많이 활용도 되었고, 효율성 또한 좋다. 돼지도 똑똑하여 말을 잘 듣는다. 소는 충직하다.
그러나 새는 개처럼 안고 잘 수 없고, 돼지는 개와같이 빨리 달릴 수가 없어 다른 용도로의 사용이 불가하고(예 - 군견), 소는 너무 커서 '인간과 개' 라는 그림보다 언밸런스하다. 더욱이 소는 안고 잘 수도 없거니와, 초식이기에 인간과의 입맛을 공유할 수 없다. 또한 옛날 왕이나 높은 직책의 신분이 개와 함께 그림에 들어가는 것은, 딱딱하지 않음, 권위의 아름다움, 좋은 배경적 요소로써 사용할 수 있으나, 소는 너무 커서 권위를 나타내기위한 구도로 쓰이기에도, 고급스런 이미지를 내포시키기에도 무리이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합목적성에 의하여 '어떤 종자가 가장 적합한가?' 라는 물음에 모든 동물중 높은 적당성을 보인게 개라는 종자가 아닌듯 싶다.
애완, 식용, 훈련을 통한 활용, 전투, 후각적 능력을 이용한 개의 활용도, 집지키기, 악세사리(?ㅋ), 부의 상징성등이 유독 발달했던 이유는 누구나가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누구나 간과하기 쉽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개 종류의 다양성' 이다.
이것은 개를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소는 종자가 다 달라도, 모양이 비스무리하고, 기껏해야 차이가 나는것은 네손가락안에 꼽을 만하다. (예로 젖소??ㅎ)
새는 워낙 종자가 다양하나, 인간으로의 접근이 어려운 종들이 많다.(개의 종류는 빠삭하게 알고있는 일반인들이 많지만, 새의 종류는 전문가가 아니면, 대부분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사자나 호랑이도 종류가 나뉘어져 있으나, 구별이 쉽게 가지 않고, 그 포악성때문에 역할적으로 인간에게 융화되긴 어렵다.
쥐나 벌레종류는, 크기적 단점과 종류에 비추어 봤을때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다수의 사람들이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고양이의 종류가 아무리 많아도, 개의 엄청나게 고루 나뉘어진 용도별, 능력별, 외모별 종의 분류에 턱없이 못미친다는 것을 알고있다.
어쩌면 이 종자별 다양성은 지구상에 인간이 주류가 된 청동기시대부터, 인간과 융합하기에 가장 최고의 동물은, 바로 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필수적 요소일 것이다.
권위를 위한다면, 매우 희귀하고 예쁜 강아지를 가지고 있으면 됐을테고, 전투를 목적으로 한다면 싸움잘하는 종자의 대량생산을(개는 생산성도 좋다. 발정이 드물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집을 지키는 용도로는 충성심이 높은 종을. 이런것들은 인간이 목적에 맞게 편리하게 선택할 수 있는 '개' 라는 총체적 울타리안에서 세분화 되어있는 개의 우수성이 아닐까.
그래서, 개의 이러한 다양한 종자성과 개체성 때문에 개들은 우리 인간들에게 역할적 범위의 확장성과 접근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습을 보인다. 기르기 쉽고, 모양도 가지각색이며, 용도별 능력이 천지차이로 세분화되어 다양하게 나뉘어진다. 천성이 인간을 잘 따르기에 접근도 쉬우니, 유독 동물들중에 친구를 고르라면, 개가 가장 적합하다는 것은, 어거지부리지 않는이상 인정할만한 요소인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개장(보신탕)을 좋아하는 나로선 옛날 할리의 '달팽이도 우리의 친구지예~' 라는 말을 들었을때, '옳거니 맞다! 달팽이도 내 친구다!' 라고 쾌재를 불렀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나의 어거지적인 측면이 어느정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난 달팽이를 내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으니까...ㅋㅋㅋㅋㅋㅋㅋ
이러한 개의 종자별 다양성은 어쩌면, 유독 애완견만 사랑하여 개를 옹호하는 자들을 이해할수 있는 밑바탕이 될 수도 있을듯 하다. 14세기 유럽에서 애완견 요크셔와 같은 것들은, 말 그대로 그 목적이 '사랑을 받는것' 에만 두어졌기 때문이다.
증거로 그 시대상황을 보면, 당시에는 사진자료가 없기 때문에, 서적, 그림이 당시의 시대적 생활상이나 풍토를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일 것이다.
15세기 초 대화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약혼' 이란그림을 보면, 애완견이 등장한다. 아마도 요크셔테리어인 듯한데 떡하니 집안에 들어서 있으며, 그림의 중앙 하단에 배치되어 구도로써도 한 역할 한다. 보통 그림에 등장하는 풍경의 양떼, 전장이나 마굿간의 말, 코끼리와는 달리 이 개에는 목적성이 없다. 왜 이 개가 집안에 떡하니 있는지, 주인은 무슨 용도로 개를 쓸(?)것인지, 구체적인 정황이 없다. 한 눈에 알수있듯 애완견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인이 예뻐하는 네발달린 가축이 비로소 르네상스 회화에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외에도, 파올로 베로네세의 베네치아 화가들의 오케스트라,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와 스페인의 펠리페, 조슈아 레이놀즈의 강아지를 안고 있는 보울즈 양 등의 그림에 여러 시대에 걸쳐 개가 중요한 구도로써 배치 됨)
우리들 모두가 알고있듯이, 15세기 유럽은 미와 건축의 아름다움, 권위와 화려함, 예술의 혁명인 르네상스 시대였다.
이 시기에 유럽 고위층들의 저택에 애완견 한 두마리는 반드시 있었고, 회화에도 강아지는 많이 등장한다. 유독 미에 촛점이 맞춰진 시대이니 만큼 일상생활에서도 어느정도 아름다움과, Pretty라는 가치는 충분히 통용됐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예쁜강아지, 더욱 예쁜 종자, 더욱 희귀하고 부와 귀족적 자세를 나타낼 수 있는 비싼 견들이 유럽각지에서 성황을 이루었다.
애완견의 시초는 고대 중국이나 북유럽 미개부족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늘날에 애완견이 널리 퍼지게 된 상황적 배경은 아마도 유럽! 즉 15세기 귀족층에서부터 일것이다.
왜 애완견 매니아들이 유럽강아지 유럽강아지 하는지, 왜 예쁜강아지 예쁜강아지 하는지, 그 역사적 배경엔 이 시대가 분출점이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애완견이란,
개라는 포유류의, 인간을 향한 접근성, 다양한 종류성, 활용성, 수적다량성으로 볼때 필연적으로 인간에게 예쁨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동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전투견이 애완견보다 사랑을 못받는데 대한 확고한 설득력도 가지고 있다. 그 두개의 개 종자는 목적성 자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전쟁견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므로써 그 가치를, 애완견은 귀엽게 생긴 그 이유로 가치를 매기기 때문이다. 그럼 투견도 이해가 된다. 그들은 싸워 이겨 주인을 승리로 이끄므로써 종자의 역할을 해낸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유독 애완견만을 들먹거리는 사람들일지라도, 비판할 여지는 없다. 개를 사랑한다면서, 투견장의 불쌍한 개들을 구하자고 소리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멍청하다고 몰아세울 수도 없다고 느낀다. 개의 종류에 따른 역할적 범위의 세분화 과정에서 나온 당위적 현상이다.
그들은 개를 사랑해서 애완견을 키우는것이 아니라, 애완견을 사랑해서 개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말 한다고해서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애완견도 개니까.
막말로, 투견을 애완으로 기르는 사람은 드물거니와, 애완을 투견장에 투입시키는 일은 없지 않은가.
그것은 어찌보면 네발 달린 많은 동물들 중에서 개들만이 갖춘 특별성과 개라는 동물의 종류별 다양성에서 생긴 우수성 때문에 생겨난 '개 라는 종자' 안에서의 아이러니성 이라고도 할 수 있을것 같다.
이렇듯 개는 아주 예로부터, 다양한 목적으로 인간들 곁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렇기때문에 개만이 인간의 친구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유독 타 종들에 비해서 개만이 그 기회가 많았고(위에서 설명한 특성때문에), 따라서 오늘날에 이르러 사람과 개는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개의 역할성에 따른 인간으로의 접근을 이해하려면, 불가피하게도, '모든 생명은 똑같이 존엄하고, 평등하다' 라는 가치는 잠시 접어둬야 할 것같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멸종위기의 본적도 없는 하프물범 두마리의 죽음보다, 자신이 키우는 귀여운 코카스페니얼 강아지가 아픈것이 더욱 마음아픈 법이니까.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 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
인간의 감정은 지극히 정의하기 어려워서, 옳고 그름을 정의할 수도 없거니와 - 우리는 흔히 다수의 손익이나 사회적 패러다임을 토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누구도 그것에 대하여 뭐라 할 권리는 없다. 그들은 그저 개를 너무도 좋아할 뿐이다.
사실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반박도 많이 했다.
개는 예로부터 인간의 친구라, 개고기를 먹으면 야만족이다.
-이 주장은 틀렸다. 그렇게 개 옹호론자들이 좋아하는 유럽! 그 유럽의 문명의 집약지 고대로마! 이들은 개고기를 즐겨먹었는데, 그 이유또한 고개를 끄덕일만 하다. 전쟁을 자주했던 로마로서는, 전쟁에 나갈시 식량과 함께 개 무리를 끌고갔다는 것이다. 개들이 알아서 따라오고, 기동성도 좋으니 빠른이동에 있어서 짐도 안되고, 야영지에서 바로 잡아 구워먹을 수 있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움직이는 식량이었던 것이다. 개는 그렇게 고대부터 우리에게 몸바쳐 친구가 되어주었으니 -_-;;; 하지만 요새 지중해 등지 유럽지역에선 개를 먹는것은 눈을 곱씹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이들이 언제적부터 개를 먹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에 나왔나? -_-;;;ㅋㅋㅋ)본인이 시간나면 언제적부터 개고기를 멀리했는지 그 논거를 찾아볼 생각이다.-
또한 해외를 돌아다녀보면,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들을 혐오한다고? 아니다. -_-;; 필리핀, 태국, 대만, 싱가포르, 우즈베키스탄 외에도 개고기를 요리로 먹는 나라들은 쌔고 쌨다.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해외나가면 외국인들이 Korean~ 이라고 말하면 개고기개고기 하는줄 안다. 스스로 개고기 먹는다고 말하기 전까지 그들은 그냥 Korean 으로만 본다. 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것이 싫으면 말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또한 외국인들이 팔붙잡고 스스로 '너희 나라의 개고기에 대해 얘기해보자' 하는 식으로 공격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한국보다 그들은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인식이 어느정도 관대하기 때문이다. (인종적 차별은 있어도ㅡㅜ) 브리짓 바르도는 인종차별주의자에다 맹목적인 개사랑 주의자이니, 얼른 뒈지길 바랄 뿐이고...-0-;; SSang....年
선진국 대열에 들기 위해선, 반드시 서양인들이 혐오하는 개고기를 금지시켜야 한다?
이것이 가장 나를 골때리게 웃어자빠지게 만든 말 그대로 개논리였다.
선진과 후진의 척도를 어디에다 두는가? 나라의 발전도, 사회복지도, 국민의 행복지수도, 국가의 세계적 영향도 등, 이러한 것들을 우선 신경쓰고 해결치 아니하고(이건 나라가 할 일이라고? 국민으로서의 역할은??), 단순히 전통적 음식문화가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우습기 그지없었다. 한 나라의 고유적 음식문화라는 것은, 타국에 있어서 반감을 가질 수 있게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중대한 국가적 사안은 된 적이 없다.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등의 흑백 인종차별주의는 얼마나 많은 나라의 국가내 선거권, 국가간 경제권, 협회간 갈등과 나라의 국제경기 유치에 비수, 혹은 비장의 정책무기가 되었는가. 설마 한국의 전통 음식문화가 이런 유럽의 인종차별주의보다 더 악질적 관습이라고 얘기하진 못하겠지? (우리나라 개고기 먹는데도 월드컵 유치 잘 했잖아?)
비 위생적이다?!
이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미 여러차례 개고기 위생화를 목적에 둔, 국가의 개입을 통한 유통경로 단계화, 그로 인한 정식 육류화등을 토대로 위생에 신경쓰고 개고기를 합법적으로 관리하자 라는 취지를 가장 먼저 반대한 이들이 누구였더라? 당신들은 그저 무조건 이상한 이유를 거들먹 거리며 개를 먹으면 안된다는 논지만 폈지 않은가?
또 한, 한국에는 1960년대에 서울 퇴계로쪽에서 애견거리가 생겨나면서, 70년대를 거치고 80년대 들어서 더욱 번화를 이루었다. 그 옛날, 경제가 어려웠던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는, 애견 문화란 낯선 것이었고, 더더군다나 보신탕에 대한 반감도 현재처럼 심하지 않았었다. 어찌보면 한국의 애견문화란 경제적 윤택함으로 인하여 생겨난 서구문명의 도입이라고 볼 수 있고, 여기서 보신탕문화와의 충돌은 과연 본래 한국인들의 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것인가, 아니면 외래문명의 도입으로 인한 문화적 가치 충돌인가로 볼 때 후자에 가깝다는 것은 쉽게 설명 가능하다. 우리의 관습이 타 문물의 도입으로 악습처럼 굳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설명을 뒤로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감정이란
'모든 것에 대한 평등성, 논리성, 타당성, 이유' 와는 절대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다는데 있다.
막말로 아주 유치한 예 이지만, 비행기 사고로 300명이 사망하는 것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것이 더욱 슬픈것은 말할 나위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헥헥...위에서도 말했듯이...하프물범 2마리랑...그 코카스...+_+/ 응~)
인간은 끊임없이 중심적이고, 그렇다고 감정 또한 콘트롤이 불가능하다.
그냥 개가 기계로 들어가면 이놈의 감정은 무턱대고 화가 난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모두가 이해 가능하게끔 너의 주장을 말해봐' 라고 요구하는게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개는, 아주 오래부터 다수 인간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앞에 털과 가죽이 벗겨져 거무튀튀한 그을린 고깃덩이로 혀를 내놓고 입은 쩍 벌리고 다리는 뻗뻗하게 굳어져 진열되어있는 개들을 보면, 우선 혐오적인걸 어쩌랴... 아무리 논리적으로 개고기를 반대하고 싶다고 해도, 마음이 먼저 요동치는걸.
이런 사람들에게 논리적인 이유의 부재를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있는것도 없을것 같고...
어쩌면,
개고기를 반대하는 자들은 너무나도 타당하지 않지만, 알 수 없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고, 개고기 찬성을 외치는 자들은 이성적으로 논리를 두고 따지는 것이고, 서로 말이 안통하는것같다.
여자와 남자가 싸울때 그런다더라.
여자는 감정으로, 마음으로 이해하며 싸우려하고, 오히려 그것이 잘 되었을 경우 더욱 빛이 나고, 하지만 못됐을경우 골만 깊어지고.
남자는 이성적으로 싸우려해서, 감정에 치우치는 큰 문제는 없지만
백퍼센트의 마음이 공감하는 합당함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즉 남자들은 중간은 가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뿌듯한 무언의 값진 화해는 하기 힘들고, 여자와 다투는것은 골이 깊어지기 일수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면, 값진 동반자를 얻는 것이라고.
물론 남녀 편가르기의 말은 아니거니와, 이 대목은 단지 이 글의 이해를 돕기위해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내가 하고 싶은 말!
첫째, 개를 사랑한다면, 개를 사랑한다 외치지 말고 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해서 증명해라! 펫말들고 나와서 말도 안되는 비약적 논리를 내뱉으며, 애꿎은 서민들 장사하는 가게 앞에서 농성하며 피해주지말고!
길가에 버려진 수많은 병든 강아지들과, 유기견들, 불구견들을 당신들이 기르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불쌍한 그 생명들을 관할 보호소나 동물관리협회에 신고하여 구호해줘라. 아무리 그 개들이 '못생겼어도' 말이다.
또한 더 많은 개 보호소와 개 관리 양성소를 마련할 세금을 스스로의 자금을 털어 투자하고, 민간단체를 조직하여 국가뿐 아니라 진정 개를 사랑하는 민간에서도 불쌍히 죽어나가는 개가 없게 노력해라!
- 이것은 사실 타 동물보다 필요하다. 진정 모든 생명이 값지고, 개가 특히 인간과 가깝다면, 타 종보다 넘쳐나는 개의 숫적 비례를 볼때 당연히 개 보호소나 관리소가 훨씬 많아야 되는 것 아닌가? -
제발, 견보호관리센터 형 누나들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닮으란 소리다!
둘째, 제발 살아있는 불쌍한 생명에 칼대서 장난질 하지 마라!
하려면, 과학이 발달된 몇세기 후에 언어가 없는 동물들과 의사소통이 될 수 있을 만치 문명이 발달 된다면, 개의 의사를 얻고 동의하에 행하라!
좀 강아지가 짖으면 어떠한가? 개가 짖는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개가 발기가 되면 어떠한가? 수컷이면 당연한 생명의 이치인데. 발정안나게 중성화수술 시키고, 임신안되게 암컷한테는 불임 수술 시키고... 솔직히 최소한 너희들보단 내가 더 개를 사랑한다 말할 수 있다. 인정해라! 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쁘니 좋아한다고.
마지막으로 보신탕을 못먹는 것을, 개를 사랑해서 안먹는다고 말하지 말고, 그냥 솔직히 혐오스러워서 못먹는 거라고 인정해라! 나도 바퀴벌레나 쥐를 끓여놓고 먹으라면 못먹는다. 하지만, 그것들이 사랑스러워서 못먹는게 아니라, 그냥 혐오스럽고 싫어서 못먹는거다. 위에 첫째, 둘째 요소도 하거나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보신탕을 앞에두고, '불쌍한 개를 어떻게 먹어' 라고 내뱉는 꼴은 도무지 역겨워 못봐주겠다.
내 바램은, 대다수의 인간이 생명을 중히 여기듯, 개 또한 진심어린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넓은 목장과 초목이 우거진 들판에서 수백마리의 개떼가 평화롭게 뛰어다니고, 또한 그 깨끗한 목장에서, 엄격한 관리와 위생체계를 거치고, 합법적인 유통경로를 거쳐 깨끗한 개고기가 식탁에 당당히 올라설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