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14일은 한국야구 1백년사에 길이 남을 하루였다.
한국은 1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에서 최강 미국을 압도했다.
대한민국이 '야구 종주국' 미국을 7-3으로 꺾었다.
130년 야구 역사를 자랑하던 미국 야구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반면 '거함'을 침몰시킨 한국의 위상은 단숨에 높아졌다.
미국전 승리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선 한국 프로야구의 저력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그동안 '야구 선진국' 미국은 한국 프로리그를
더블A 정도로 하향 평가했다.
국내 인프라를 포함한 야구 수준이 딱 그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예선 1라운드에서 일본을 3-2로 꺾자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조금씩 변했다.
의심의 눈초리는 미국전을 통해 확 걷혔다.
일본전과 같이 1, 2점차 박빙의 승부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미국을 몰아붙인 끝에 승리를 따냈다.
게다가 아마추어가 포함된 경기도 아니었다.
미국은 거포 버논 웰스를 1번에 배치했고
텍사스의 '신(新)거포' 마크 테셰이라를 7번 타순에 올렸다.
빅리그에서 3, 4, 5번을 치던 타자를 하위 타선에 배치할 만큼
슈퍼스타들로 라인업을 짰기 때문이다.
일본전에서 호되게 당한 미국이 한국을 잡기 위해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선발 역시 지난해 내셔널리그 다승왕 돈트렐 윌리스였다.
베스트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에게 완패를 당했다.
'더블A' 팀에게 패한 미국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야구 국가 대항전이다.
야구를 하고 있는 국가들이 대거 참가해
세계 최고를 가리자는 취지로 개최됐다.
이 대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며 대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케이스가 4경기 연속 홈런을 쳐낸 이승엽이다.
앞서 멕시코전에서 결승 투런포를 쏘아올린 이승엽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미국과의 경기는 이승엽의 향후 거취에
더 큰 영향을 끼칠것으로 전망되었다.
이전 경기들은 가볍게 치부될 수 있다.
하위 리그에 속한 투수의 공을 공략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전원 메이저리거로 구성된 미국을 상대로,
그것도 미국 안방에서 쏘아올린 홈런포는 확실한 보증수표였다.
실제로 WBC를 계기로 이승엽의 위상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 대회를 계기로 이승엽은 일본프로야구의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확실한 4번타자 자리를 굳히며,
지금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맹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WBC 대회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한국팀이 WBC 1라운드에서 탈락하면 국내 프로야구에
악 영향을 미칠게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축구 월드컵까지 올해 열려 프로야구 흥행은
더욱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한국은 승승장구했고
1라운드에서 난적 일본을 격파해 팬들의 눈길을 돌려놨다.
한국은 박찬호, 서재응 등 인기 야구스타의 활약과 맞물려
멕시코 마저 무너뜨렸고 야구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14일 미국전에서는 그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미국이 지난 13일 일본전에서 '오심에 의한' 승리를 거둔 탓에
야구팬들은 내심 한국이 미국을 꺾어주길 기대했다.
그 바람은 결국 이뤄졌고 각종 야구 게시판은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야구팬들의 마음을 다시 야구로 끌어 당긴 셈이다.
* 미국팀의 선발투수는 내셔널 리그 소속의 돈트렐 윌리스였다.
윌리스는 2005년 22승을 거두며, 메이저 리그 전체에서
최다승왕을 차지했던 젊은 에이스 투수다.
특히 좌타자에게 대단히 강해서, 지난 3년동안 좌타자에게
홈런을 단 3개 밖에 맞지 않았으며,
2005년에도 단 한 차례의 홈런만을 좌타자에게 허용했었던
"좌타자킬러"였다.
그런 윌리스의 강한 직구도 우리가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국민타자"이며, "아시아 홈런왕"인
좌타자 이승엽의 다이나마이트 방망이를 견뎌내진 못했다.
나름대로 공부를 했는지 이승엽의 약점으로 여겨지는
몸쪽으로 빠른 직구를 던졌는데도 홈런을 두들겨 맞았다.
머리싸움에서 이미 이승엽이 윌리스에게 승리한 것이다.
더욱 극적인 것은 이승엽이 쏘아올린 홈런이
우측 관중석 담장에 그려진 태극기 위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동영상을 한번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팀과의 시합전에
"공 50개로 한국팀을 끝장 내겠다"고 큰소리 치던
돈트렐 윌리스는 약속했던 공 50개를 다 채우기도 전에
한국팀 타자들에게 뭇매를 맞으며, 온갖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