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法法本來法 법법본래법
無法無非法 무법무비법
何於一法中 하어일법중
有法有不法 유법유불법
법, 법 하는 본래의 법에는
법도 없고 법 아님도 없으니,
어찌 하나의 법 가운데
법이 있고 법 아님이 있으리오.
--- 제1조 마하가섭(摩訶迦葉)
담박한 생활 --- 다산어록청상 中
달빛이 밝으면 못이 맑다가도 달빛이 어두우면 못도 어두워진다.
밝아야 그림자가 비치고, 어두우면 그림자는 사라진다.
자연히 사물과 더불어 다툼이 없다.
조수가 들면 고기가 오고, 조수가 나면 고기는 간다.
오는 것은 잡고 가는 놈은 쫓지 않는다. 또한 이 즐거움에 이바지 할 만하다.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연주한다. 시를 읊조리고 그림을 그린다.
호탕한 듯 호탕하지 않고, 엄숙한 듯 엄숙하지 않다.
어찌 담박한 생활이 아니겠는가?
꽃을 심고 채소를 가꾼다. 대나무를 솎고 차를 덖는다.
한가롭지만 한가롭지 않고, 바쁘나 바쁘지 않다.
참으로 청량한 세계이다.
볕드는 창가 책상에 독루향(篤?香)을 사르고 소룡단(小龍團) 떡차를 다린다.
진미공(陳眉公)의 《복수전서(福壽全書)》를 즐겨 읽는다.
눈이 살풋 내린 대숲 암자에서 오각건(烏角巾)을 쓰고서
질좋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역도원(?道元)의 《수경신주(水經新注)》를 들춰 본다.
--- 題藏上人屛風
月明池明。月暗池暗。明斯照影。暗斯歸息。自然與物無競。 潮來魚來。潮去魚去。來斯漁之。去斯勿追。亦足供此所樂。 吹竹彈絲。哦詩描畫。似宕不宕。似莊不莊。豈非澹泊生涯。 蒔花種菜。洗竹焙茶。道閒非閒。道忙非忙。眞是淸涼世界。 晴牕棐几。燒篤耨香。點小龍團。好看陳眉公福壽全書。 淺雪筠菴。戴烏角巾。含金絲煙。流觀酈道元水經新注。
7월 14일 [오늘]
선배(학교, 직장선배는 물론 부모님)에게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게 하면서
자신의 애인을 다른 사람에게 선보이는 날이다.
그 자리에 나온 선배는 데이트 비용을 최대한 보조해 주어야 한다.
또한 실버데이는 은제품銀製品을 선물하는 날로도 알려져 있다.
1744년 (조선 영조 20) 강화 외성 개축
1789년 파리 시민, 바스티유 감옥 습격, 프랑스 대혁명 일어남
프랑스 대혁명은 1789. 7.14-1794.7.28까지 5년간 진행되었다.
1817년 프랑스의 작가 제르맨 스탈 부인 세상 떠남
"공손함은 자기 생각 속에서 선택하는 기술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1888년 (조선 고종 25) 박문국 폐지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 개막
1907년 이준 열사, 헤이그에서 세상 떠남
살고 죽음이 다 나에게 있는 것이니 / 모름지기 힘써 死生을 알지라.
生死皆在我 생사개재아 / 須勉知死生 수면지사생
1910년 만화영화 `톰과 제리` 제작자 윌리엄 해너 출생 [William Hanna -2001.3.22]
1958년 강원도 영월군 상동서 우라늄광 발견
1965년 미국 마리너 4호, 화성 근접 촬영 성공
1979년 그리스 바티칸 수교
1981년 한국 여자농구, 최초로 존스컵국제여자농구대회서 우승
1989년 헌법재판소, 보호감호조치는 위헌이라고 결정
1989년 일본 이즈반도, 해저화산 폭발
199년1 제16회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막
1991년 전국노동단체연합(전노련) 창립대회
1994년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김정일 체제 안정 위해 북한 지원키로 결정
1998년 조계종 종정 李隆撤(이륭철) 사퇴 성명,
1998년 조치훈 본인방 10연패 달성
2002년 체세포 돼지복제(複製) 국내 첫 성공
2004년 국정원, 국가기관 10곳 해킹피해 발표, ‘국가 안보 위협사건’으로 규정
* 사랑, 동정, 환희, 평온 *
이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은 어떻게 서로간에 스며들어 가득히 채우는가.
(사랑, 동정, 환희, 평온)
가없는 `사랑'은 `동정'이 편파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지켜주고,
취사선택하여 차별대우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준다.
그럼으로써 한쪽을 동정하는 데 치우친 나머지 그 반대쪽에 대해
부당하게 편파적 태도를 취하거나 혐오감을 품는 일이 없도록 돌봐준다.
'사랑'은 '평온' 에다 자신의 속성인 비이기성과 무제한성을,
심지어는 열렬함마저 불어넣어준다.
왜 열렬함이 필요한가하면 제어되어 변형된 열렬함은 완전한 평온의 한 부분이 되어,
평온에다 날카로운 통찰력과 현명한 억제력을 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동정' 은 '사랑'과 '환희'가 잠시 한정된 행복을 즐기거나,
이를 남들에게 나누어주는 동안에도 이 세상엔 끔찍한 고가 여전히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켜준다.
'사랑'과 '환희'의 행복이 끝없는 불행과 공존한다는 사실, 어쩌면 문 밖에 나서는 순간
바로 그 불행과 마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동정'은 '사랑'과 '환희'에 대해서 이 세상엔 그들이 어루만져주기엔
너무 벅찬 많은 고가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또 어루만져줌의 효과가 사라지면 곧 슬픔과 고통이 다시 되살아날 것이 확실하며,
이런 현상은 일체 고가 완전히 근절되는 열반의 성취까지는
내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동정'은 '사랑'과 '환희'가 이 세상의 좁은 부분에만 국집하여
더 넓은 세계를 외면하게끔 버려두지 않는다.
'동정'은 '사랑'과 '환희'가 작고 보잘것없는 행복에 안주하여 거기에만 마음쓰면서
자기만족에 빠져드는 것을 방치하지 않는다.
'동정'은 '사랑'이 그 영역을 확대하도록 각성시키고 격려해준다.
'동정'은 '환희'가 새로운 자양분을 찾도록 각성시키고 격려해준다.
그럼으로써 이 둘이 진짜 무량한 마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준다.
'동정'은 '평온'이 차가운 무관심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또 나태하거나 이기적인 고립으로 변질하지 않도록 지켜준다.
'평온'이 완성단계에 이를 때까지 '동정'은 '평온'이 사바세계의 싸움터를 외면하지 않고
거듭거듭 잘 살펴보도록, 그래서 더 단련되고 강화되어 그 시련을 견딜 수 있도록 격려한다.
'환희'는 '동정'이 이 세상에 가득 찬 고의 광경에 완전히 압도되지 않도록,
또 거기에 휘말린 나머지 다른 모든 것을 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지켜준다.
'환희'는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고 고통스럽게 불타는 연민심을 진정시켜준다.
'환희'는 '동정'이 목적을 잃고 우울에 잠기지 않도록, 또 괜히 정진의 힘을 약화,
소모시키기만 하는 쓸데없는 감상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준다.
'환희'는 '동정'을 능동적 공감으로 발전시켜준다.
'환희'는 '평온'에게 그 엄숙한 모습을 풀도록 온화함을 준다.
그것은 부처님의 얼굴에 보이는 저 성스러운 미소이다.
이 세상 고를 속속들이 알면서도 여전히 변함없는 그 미소,
위안과 희망과 겁없음과 확신을 주는 그 미소, 그 미소는 말해준다.
"해탈에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고.
통찰에 근거한 '평온'은 다른 세 거룩한 마음가짐에게는 안내역할을 하며 자제를 돕는다.
그들이 가야할 방향을 지시해주고 또 그 방향이 꼭 지켜지도록 애써준다.
'평온'은 '사랑'과 '동정'이 헛된 시도에 정력을 낭비하거나
무절제한 감정의 격류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평온'은 최종목표 달성을 위한 빈틈없는 자제이다.
따라서 '환희'가 조그마한 성취에 만족하여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목표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지켜준다.
'상황에 동요되지 않는 차분한 마음(evenmindedness)'을 뜻하는
'평온'은 '사랑'에 대해 한결같은, 변함없는 확고함과 충실함을 제공한다.
사랑에게 참을성이라는 위대한 덕성을 부여한다.
또 평온은 '동정'이 한결같은, 흔들림이 없는 용기와 대담성을 갖도록 해주어
무량한 '동정'이 거듭거듭 당면하게 될 비참과 절망의 무서운 심연에 맞설 수 있게끔 해준다.
또 '동정'의 활동면에 대해선, '평온'은 지혜롭게 운전하는 차분하고도 확고한 손이 되어준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기술이 아니므로
지혜가 없이는 뜻과 같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여기서도 평온은 참을성을, 즉 '동정'하는 일에의 참을성 있는 헌신을 의미한다.
아무튼 여러모로 따져보아 `평온'은 다른 세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의 정점이자
극치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앞의 세 마음은 `평온'과 그 평온에 내재하는 통찰력에 결부되지 못하면
안정장치의 결여로 인해 점차 감소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어떤 덕성이든 그를 확고하게 해주거나 아니면 유연하게 해주는 다른 자질에 의해서
도움받지 못하고 고립되면, 퇴색해버리거나
그 자체의 특유한 결함 속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자애는 정진력과 통찰력을 겸비하지 못할 때
한낱 나약하고 신뢰할 수 없는 감상적 착함으로 기울어져버리기 쉽다.
더욱이 이런 고립된 덕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원래 가졌던
자신의 삶의 목표와 정반대방향으로,
또 타인들의 안녕에도 배치되는 방향으로 가게끔 만드는 수가 많다.
이처럼 고립되기 쉬운 덕성을 유기적이고도 조화로운 전체성으로 굳게 결합시켜
각각의 자질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또다른 자질들의 협조를 받아
각기 특유한 약점이 만든 함정에 빠져들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그 사람의 굳건하고도 균형잡힌 인격성만이 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그래서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 사이에 이상적인 관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평온'의 기능인 것이다.
'평온'은 통찰에 입각한 완전하고도 요지부동한 마음의 균형을 말한다.
그러나 이 완전하고도 요지부동한 성질은 결코 생기 잃은 경직성이 아니며,
물질의 둔중성과 같은 것도 아니다.
'평온'은 둔감함도 몰인정함도 냉담함도 아니다.
이 완전성은 정서적 `공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지혜가 `충만'한 데에,
즉 그 자체가 본래 완전한 것인데 연유한 것이다.
그 요지부동한 성질도 차가운 돌덩이의 죽음 같은 불변성이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내적 힘의 표출인 것이다.
그럼 '평온'은 어떤 식으로 완전하고 요지부동한가?
'평온'에선, 정체시키는 것은 무엇이나 녹아 없어져 버리고 가로막는 것은
제거되며 방해하는 것은 파괴된다.
여기에선 감정의 소용돌이도 지성의 배회도 사라진다.
순수하고 광휘에 차 의식은 고요하고도 장엄하게 거침없이 흘러간다.
여기서는 빈틈없는 정념[正念, sati]이 지혜(pa~n~naa)의 꿰뚫는 날카로움과
신심(saddha)의 따뜻함을 조화시키고 있다.
정념은 또 의지력(viriya)과 마음의 고요(samaadhi)를 균형잡아 놓는다.
그리고 이 다섯 개의 내적인 기능(indriya)은 내적 힘(bala)으로 성장했기에
다시는 잃어버릴 염려도 없다.
이 다섯 힘은 이젠 더이상 이 세상의 미로(윤회, samsaara) 속에서,
생명의 끝없는 확장(papa~nca) 과정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잃어버리게 될 위험이 없다.
분명히 이들 내면의 힘은 마음에서 퍼져나가 세상에 대해 작용을 가하지만,
정념에 의해 지켜지기 때문에 어디에도 붙박지 않고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다시 '사랑' '동정' 그리고 '환희'는 계속 마음에서 발산하여 세상에 작용을 가한다.
그러나 '평온'에 의해 지켜지고 있으므로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조금도 약화되거나 때묻지 않은 채 마음으로 되돌아온다.
이래서 성자는 아무리 베풀어주어도 내면에서 무엇이 줄어드는 일이 없으며,
그의 지적(知的), 정적(情的)인 풍요를 남에게 몽땅 쏟아주어도 그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다.
마치 흠이라곤 전혀 없는 투명한 수정이 모든 광선을 완전히 흡수하여
그 집중력으로 한층 강화시켜 되돌려보내면서도 조금도 얼룩지지 않는 거소가 같다.
어떤 광선도 그 색깔로 수정을 물들일 수 없다.
광선은 수정의 견고함을 무너뜨릴 수 없고 그 조화로운 구조를 흐트러뜨릴 수도 없다.
수정은 조금도 변함없이 그 완벽한 순도와 힘을 보존하고 있다.
"마치 온 세상의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고 온 하늘의 물이 비가 되어 바다로 내려도
대양은 조금도 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는 것과 같이"
- 바로 `성스러운 평온'의 성질이 그와 같다.
'성스러운 평온', 달리 서양식으로 표현하여 '성스런 평온을 부여받은 성자'는
이 세상의 내면적인 중심이다.
하지만 이 내면적 중심은, 저 수도 없이 많은 유한한 영역들이
외견상의 중심들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소위 '인격'이라든가 통치법률이라든가 등등.
이 모든 것들은 단지 외견상의 중심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의 영역은 제행무상의 법칙에 따라 언제든
그 구조의 총체적 변천을 겪지 않을 수 없고 그 결과
물질적 또는 정신적 무게 중심(重心)이 이동하게 되면
더이상 중심의 구실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의 평온이라는 내면적 중심은 불변이기 때문에 요지부동이다.
그것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불변인 것이다.
조건지워진 것에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그러나 조건지워지지 않은 것에는 움직임이 없다.
움직임이 없는 곳엔 정적(靜寂)이 있다. 정적이 있는 곳에 갈애는 없다.
갈애가 없는 곳엔 감도 옴도 없다. 감도 옴도 없는 곳엔 생김도 사라짐도 없다.
생김도 사라짐도 없는 곳엔 이 세상도 저 세상도,
그 중간 상태도 없다. 이것이 바로 고의 끝남이다. --- 옮긴 글
플록스(Phlox)-온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