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포도가 오기까지 12,726마일 - 김종덕

녹색연합 |2007.07.20 18:59
조회 60 |추천 0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우리 농업의 지위는 점점 더 나빠지고, 외국에서 수입하는 먹을거리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 먹을거리 가운데 상당수는 외국에서 생산된 것이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먹을거리 대부분은 배로 수송되지만, 최근 들어 항공편 수송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값비싸고 민감한 상품들이 신선하게, 적정한 때에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항공 수송을 선호하고 있다. 또 장기간 수송을 하는 배편은 미리 수확을 하거나 방사선을 쬐거나 방부제 같은 물질을 뿌려야 하는데, 단기간 이동하는 항공은 그렇게 할 필요성이 적다는 이점도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요즘 ‘웰빙’ 같은 친환경 흐름이 유행하면서, 비싼 외국산 유기농산물 먹는  ‘과시하는 소비’가 먹을거리의 항공수송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항공운송은 기후를 움직이고 지구 반대편 땅과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특집] 떴다 떴다 비행기

포도가 오기까지 12,726마일

글·김종덕



먹을거리의 이동거리가 길어진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농수산물이나 유기농 식품은 이제 기업에게는 새로운 사업이다. 항공화물을 다루는 운송업체, 외국산 농산물이나 유기농 수입업체, 그리고 이를 공급하는 외국의 수입업체 모두에게 ‘블루오션’(새로운 수요와 고수익 성장이 보장되는 경쟁자 없는 미개척 시장)이 되고 있다. 차별화된 소비를 위해 사치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만큼, 항공수송에 대한 수요도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을 통한 먹을거리 수송은 세계식량체계의 먹을거리 수급에 있어서 두드러지는 사례가 되었다.
지역을 넘어 세계를 상대로 먹을거리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지는 세계식량체계에서는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 농산물과 먹을거리 이동거리, ‘푸드마일’(food mile)이 몹시 길다. 많은 농산물들이 생산지에서 수만 킬로 또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수송된다. 항공화물 말고도 배, 기차, 도로를 통해 막대한 물량이 수송되고 있지만, 항공수송은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가장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원이다. 쉽게 상해서 냉장이 필요한 식품 운송업은 연간 4퍼센트 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점차 냉장 비행기 운송이 증가하고 있다. 영국에서 소비되는 먹을거리는 20년 전보다 평균 50퍼센트 더 멀리 간다. 노르웨이에서는 국내에서 이동하는 먹을거리의 양이 1993년부터 2002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제조법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 훨씬 효율이 높은 방법인데도 미국은 덴마크 설탕쿠키를 수입하고, 덴마크는 미국 설탕쿠키를 수입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 식량수송이 가진 모순이다.

세계식량체계의 문제점

먹을거리의 장거리 수송은 지금처럼 세계화가 이루어진 세상에서 당연하고 필요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얼핏 생각하면, 지역이나 자기 나라에 생산되지 않는 과일이나 먹을거리를 장거리 수송덕분에 쉽게 먹을 수 있고 맛을 음미할 수 있으니 좋은 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먹을거리의 장거리 수송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것은 여러 면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 환경 문제다. 꽃, 과일, 채소같이 대부분 물로 이뤄져있고 칼로리는 낮은 값비싸고 썩기 쉬운 상품들의 항공운송 비중이 높아지면서 지구기후를 움직이고 있다. 항공운송,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한 운송 모두 막대한 석유에너지를 사용하고 있고, 그것은 이산화탄소의 배출에 의한 오존층 파괴, 이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가져오고 있다. 미국 콜룸비아 대학의 영양학자 조앤 구소는 항공수송에 대해 ‘차가운 물(채소, 꽃)을 대량의 석유로 태우는 과정이다’라고 비판한다. 스톡홀름 대학의 야니카 칼슨-켄야마 교수는 ‘수입 재료로 만든 기본 식사는 국내 생산재를 사용한 식사보다 네 배나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네 배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방출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총에너지소비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4.3퍼센트)을 보이고 있는 수송 분야에서 해상운송이 차지하는 비율이 여전히 가장 높지만, 항공운송의 비율이 급속하게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신선식품을 나르는 데 주로 쓰이는 항공기는 1톤의 화물을 1킬로미터 수송하는 데 799그램의 탄소를 배출한다. 이는 탱크로리보다 8배, 선박보다 무려 61배나 많은 양이다. 또 국내의 생산기반이 위축되고 다량의 포장 폐기물이 발생하는 부작용을 빚기도 한다. (한겨레신문, 2004)
두 번째 문제점은 식품안전에 있다. 생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소비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먹을거리의 변질을 막고 상품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많은 살충제와 방부제를 뿌리고 방사선 처리를 하기도 한다. 먹을거리 이동거리가 길어질수록 이러한 생산과 운반 처리과정은 소비자들에게 숨겨지고,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의 식품안전을 고려할 기회를 잃게 된다. 이는 수송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이들의 건강과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 종종 잊혀지고 있다.

세 번째로, 지역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소비자들이 외국산 유기농산물을 사용하면, 국내 친환경농가의 유기농산물 시장 기반을 잠식하게 된다. 친환경 유기농은 일손도 많이 들고, 영농에 들어가는 유기농 자재도 비싸기 때문에 일반 농산물에 비해 가격이 높다. 이러한 상태에서 여유 있는 소비자들이 외국산 유기농산물을 선호하고, 국내에서 생산된 친환경유기농산물 소비를 외면하게 되면, 국내 친환경 유기농업은 지탱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항공으로 수송된 유기농 농산물은 대부분 초국가 대기업들이 생산하거나 유통시킨 것들이다. 소비자들이 지불한 돈은 다국적 기업들에게 돌아가고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보다는 기업에 돌아가고 있다.
네 번째로, 세계식량체계 아래 먹을거리 장거리 수송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발전될 수 없다. 그리고 소비자가 생산자와 관계가 끊어지면, 지역농산물이나 지역농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기 어렵다.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보다는 인스턴트식품과 패스트푸드를 더 찾게 되는 악순환을 이어가게 된다. 이렇게 먼 거리 이동을 바탕에 두고 있는 세계식량체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어디로 소비의 신호를 보낼 것인가

이러한 세계 식량체계 아래 먹을거리의 장거리 수송이 갖는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의 중요성, 우리가 선택하여 구입하는 먹을거리가 환경, 식품안전,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서 보다 도리에 맞는 책임 있는 소비를 해야 한다. 그것은 항공화물수송, 장거리 수송으로 도입되는 먹을거리가 환경, 식품안전,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그러한 먹을거리를 구입하지 않는 소비를 말한다. 소비자들의 먹을거리 구입과 소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식량체계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 된다. 좋은 먹을거리의 구입과 소비는 식량체계에 좋은 먹을거리의 생산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나쁜 먹을거리의 구입과 소비는 식량체계에 나쁜 먹을거리의 생산을 눈감아주고 인정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아울러 소비자들 스스로가 이러한 전체를 바라보는 눈으로 대응하기 시작해야 한다. 소비자 개개인은 약하지만, 소비자들이 뭉치면 힘이 있다. 소비자의 이런 움직임 덕에 유럽의 대형 유통점에서 유전자 조작식품을 팔 수 없게 되었고, 유전자 조작식품의 원산지 의무 표기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소비자들의 참여로 공정거래로 수입되는 상품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영국에서 소비되는 커피의 14퍼센트, 바나나의 30퍼센트가 공정거래를 통해 들어오고 있다.

내 먹을거리는 지역 안에서, 로컬푸드

먹을거리의 장거리 수송으로 인한 환경, 식품안전, 지역경제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막으려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어 있고 지역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역식량체계 ‘로컬푸드시스템’이 자리해야 한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의 먹을거리 이동 거리가 짧기 때문에 먹을거리 이동으로 인한 환경 피해가 최소한으로 일어난다. 먹을거리 생산자가 경쟁에 덜 시달리고, 소비자들의 건강을 고려한 생산을 하기 때문에 친환경 영농이 이루어진다. 지역식량체계에서는 소비자가 생산자를 알고, 생산과정을 알기 때문에 보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접근할 수 있다. 또 소비자가 먹을거리에 들이는 돈의 상당부분이 생산자에게 돌아가 이들이 안정된 영농을 할 수 있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어 고용이 늘어난다.
항공을 통한 외국산 먹을거리 수입이 늘어나면 날수록 농민들의 어려움도 늘게 마련이다. 또 그것은 우리 환경, 식품안전, 지역경제, 인간관계를 더 나빠지게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소비자들은 세계 식량체계의 대안으로 등장한 지역식량체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 ‘로컬푸드’ 운동은 먹을거리 운동이자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화석연료를 연소하지 않기 위한 유통의 대안이다. 비행기를 이용한 불필요한 이동 거리를 줄이려는 노력은 지속해서 미래세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책임 있는 태도이다.


김종덕님은 농업사회학의 관점에서 세계의 농업문제와 식량문제를 고민하는 심리사회학부 교수이다. 요즘에는 지역식량체계를 통한 우리 농업 살리기와 먹을거리 문제 해결에 힘을 쏟고 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