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6년동안.... 13 - Crazy -

진태우 |2007.07.21 11:01
조회 87 |추천 0
잘못 찾아온 건 아니었다. 적혀 있는 주소대로 왔고, 우체국 배달 아저씨에게도 물으면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했다. 열린 대문 앞에 서서 가을이를 부를까도 생각했지만, 느낌이 이상해서 열려있는 틈사이로 살짝 안을 들여다봤다.

그렇게 행동한 것을 난 금방 후회했다. 아니, 어쩌면 찾아오지 말아야 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재회의 설레임으로 가득찼던 내 마음은 순식간에 끝도 없는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가을이를 만날 수 없었다. 아니, 이젠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오는 비명을 간신히 참아냈고, 흐느끼는 소리마저 누군가가 들을까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내 다리는 어쩔 수 없었다.

그 놈에 대한 생각도 잊어버렸다. 검은 액자 안에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을, 입대할 때 이별을 들었을 때보다 더더욱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너무 생생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잘 얘기했는 데, 다음 날이 되자마자 모든 상황이 뒤집어지는 이런 건 정말 싫었다.

"누구세요?"

가을이의 집 안에서 낯선 여자가 인기척을 느꼈는 지 대문 밖으로 나왔다.

"혹시... 가을이랑 사겼던 경남에 그 오빠인가요?"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제발 꿈이라면 지금이라도 좋으니까 깨어다오... 아니면 그냥 단순히 저건 연극이라고 말해다오...

"저... 가을이를 찾아서 온 건 맞는 데, 아무래도 제가 다른 집을 찾은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맞게 찾아오셨어요..."

현실은 냉정했고, 나에게 조그마한 희망을 품을 기회도 주지 않으려는 듯 했다.

"가을이, 안에 있나요...?"

그 여자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믿기 힘들겠지만, 지금 보이는 게 현실이에요... 가슴이 많이 아프겠지만... 어쩔 수 없네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가을이가 안에 있는 데 만나기 싫어한다고 말을 해줬더라면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기다렸을 텐데...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한다는 것, 나는 영화와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내용이고, 현실 속에서도 특별한 몇몇만이 경험하는 것이라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상황 속에 서 있는 것이 나라니...

"거짓말이라고 말해주세요... 이럴 수는 없어요.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잘 얘기 했었는 데... 이럴 수는 없다구요."

"정말 죄송해요. 믿기 힘들다는 거 알지만 그만 받아들이세요. 오빠가 이러는 거 가을이가 알면 슬퍼할거에요."

가을이가 정말 죽었다면 상가집인데, 이렇게 조용하다는 게 말이 될까?

"일단 오셨으니까, 들어와서..."

그 뒤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대문 밖으로 나왔던 그 여자는 가을이의 중학교시절부터의 친구라고 했고, 그 놈과 사귀어 보라고 권했던 것도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재차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기만 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물었다.

"가을이가... 갑자기 왜 이런 건가요..."

"그게... 말을 하자면 길어요..."

그 여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어? 가을아, 이 시간에 네가 우리 집에 왠 일이야?=

=너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나 내일 오빠 만나걸거든...=

=오빠? 그 놈? 그 놈이야 매일 만나잖아. 그런데 새삼스레 그게 어때서 그래? 헤어지려고?=

=아니, 그 전에 내가 사겼던 경상도에 사는 오빠 말야...=

=어떻게? 그 오빠 군대 갔다며? 연락은 또 어떻게 해서 된거야?=

=어쩌다보니까 다시 연락하게 됐어. 아무튼 그 오빠가 철원에서 근무하다가 내일 첫 휴가 나오는 날이라는 데... 만나기로 했는 데...=

=너랑 그 오빠 정말 인연인가? 너무 질기다고 생각하지 않아? 헤어졌다가 다시 연락했다가 다시 헤어졌는 데, 또 연락하고 있어.=

=나 어쩌지? 만나기로 약속도 하고, 집 주소도 가르쳐 줬는 데... 못만날 거 같아...=

=왜? 못만날 이유가 뭐 있어. 그 오빠는 아직도 널 좋아하는 모양이고, 너도 못잊은 모양인데 그만하면 만날 수 있는 조건 충분하잖아.=

=그게... 또 내가 오빠한테 상처를 주면 어떻게 해? 지금까지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또 연락은 하고 있지만 언젠가 지금까지 아파했던 만큼 한 번더 상처를 주게 될까봐 무서워... 그러다가 나를 미워하게 되고, 언젠가 내가 정말 오빠에게로 돌아가고 싶을 때 받아주지 않으면... 난 어떻게 해야 돼...=

=내가 볼 때 그 오빠는 그럴 사람이 아닌 거 같아. 너 낙태한 건 얘기했어?=

=응...=

=야, 이 미친 것아. 그걸 왜 얘기했니? 그 오빠가 너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래, 그 얘길 듣더니 뭐라고 하진 않아?=

=걱정해주던데...=

=흠... 그럼 더 확실해졌네, 뭐... 일단 만나봐. 내가 장담하는 데 그 오빠는 네가 뭘 했던 간에 너만 있으면 모든 것은 용서가 되는 사람일테니까. 알았지? 그러니까 일찍 자고 이쁘게 하고 만나.=

그랬는 데... 밤 사이에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고 말해줬다.

그렇게 미안했으면 새벽이라도 괜찮으니까 전화해서 못만나겠다고 말해줘도 괜찮았는 데...

아니면 오늘 친구라는 이 여자에게 부탁해서 못만나겠다고 말을 해줬어도 됐을텐데...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는 데... 나 때문인것만 같았다. 내가 가을이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내가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가을이가 아무리 보고 싶었다 해도 내가 음성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으면 됐는 데...

가을이의 속도 모르고 난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던 걸까...

그냥 혼자서 보고 싶으면 사진 꺼내보고, 울고 싶으면 울고, 미칠 것 같으면 미쳐버렸으면 됐을 것을... 난 왜 이렇게 못났던 걸까...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