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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빛”의 화가 램브란트.

임현승 |2007.08.02 06:51
조회 117 |추천 1
   

 

 

 

                                         Self-Portrait
                                                         1627
                                           Oil on wood, 23,5 x 17 cm
                                           Staatliche Museen, Kassel


 

회화적 기법으로 보았을 때 르네상스시기를 "선"과 "형태"를 중시한 시기라고 이야기 한다면

바로크시기는 "빛"과 "색" 을 중시했던 시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에두와르 마네” 이전의 고전기 화가들 중에서 가장 빛을 잘 묘사했던

화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래의 3명의 화가를 꼽을 것이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명암 대비법 “키아로 스쿠로” 의 “미켈란젤로 다 메리시 카라바지오”.

자신의 일생처럼 드라마틱하면서 강렬하고,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빛의 향연을 표현했던

“피터 폴 루벤스”. 그리고 인생최고의 행복과 불행을 모두 맛보았던 은은하고 초연한 빛의

“렘브란트 반 레인”.

 

위의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 이며, 보편적 객관적 시각과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세 명의 위대한 예술가는 회화적 특징으로 보았을 때 공통적으로 

“빛”과 “색”이 중시되던 “바로크”시대의 사람들이다.

 

“바로크”의 확실한 뜻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에서

파생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르네상스 후기의 “매너리즘시대”와 “로코코시대”의 사이인

대략 1600년경부터 1750년까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가톨릭 국가에서 발전한 미술

양식을 통칭“바로크 미술”이라 말한다.

 

 

1500년경 유럽에서는 절대권력의 맛을 본 성직자들의 타락과 부패가 그 정점에 다다랐다.

교황은 여러 명의 첩을 두었고 교황의 친아들인 « 체사레보르지아 »는 교황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암묵적으로 성직자들이 타락하는 것을 승인을 하였고, 심지어 성직을 매매 하기도 했다.

노베레 가문의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로마의 « 베드로 성당 »을 건축하다가 모자란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과하게 징수 했으며, 결국 천국으로 가는 티켓인 면죄부까지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만 갔고, 불만은 고조되고 있었다.

그 상처가 곪고 곪아 가고 있었다. 마침내 1517년 독일의 신학자였던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부패할 대로 부패한 성직자들에게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마침내 « 종교개혁 »이란 이름으로 유럽 대륙에는 거대한 피 바람이 몰아쳤고

유럽은 구교와 신교로 나뉘게 되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인 « 아르마다 »를 1577년 카디스에서 격파를 하고 해상권을 장악하였던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던 신흥무역 도시였었기 때문에

기존 기득권 세력이었던 가톨릭인 구교의 간섭에 대해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비교적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던 무역도시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프로테스탄트들이 박해를

피해 몰렸다 금욕과 절제를 중시하던 신교국가는 성화 역시 교회를 치장하는 목적이 아닌.

개개인이 집에 걸고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박하고 작게 그려졌다.

 

반면에 종교개혁 이후 기존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는

더욱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자극적이고 강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종교화를 그려낸다.

무너져 가는 신권과 왕권을 그림에서라도 강력하고 위엄 있게 그리고 장엄하게 표현했다.

이 시기를 우리는 통칭 « 바로크시대 »라고 이야기 한다.

 

 

 

 


 

 

                             Portrait of the Artist at His Easel
                                                         1660
                                         Oil on canvas, 111 x 90 cm
                                            Musée du Louvre, Paris

 

 

그는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우리만큼 진솔하고,

잔인하리만큼 솔직한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중인 이 자화상은 1660년 그의 나이 54세에 그린 자신의 모습이다.

명확한 선이 사라지고 형태도 불분명하다. 왼쪽에서 떨어지는 빛은 작가의 얼굴에 쏟아지고

그 빛은 다시 작가의 얼굴에 주위를 천천히 맴돌다가 은은하게 어둠으로 퍼져 나간다.

또한 주변의 어두운 그림자는 작가의 얼굴을 더욱 부각시키며 깊이 있는 공간감을 연출 한다.

렘브란트는 절제된 빛을 적절히 배치시켜 오히려 작가의 얼굴을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표현한 듯 하다.

 

이 자화상을 그렸을 당시의 그는 그의 모든 수집품과 미술작품이 그의 빛으로 경매로 매각당하며 경제적 파탄으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그 토록 사랑했던 아내와 성격과 외모가 놀랍도록 비슷한 또 한 여인을 만나지만

전 부인의 유언 때문에 새로운 사랑이 "불륜" 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반 쪽짜리 사랑을 하였고, 걸음마 조차 떼지 못한 3명의 자식을 가슴에 묻었다.

한 때는 그의 명성이 이탈리아까지 퍼졌을 정도로 명망 있던 화가였지만, 지금은 그저 고집만

센 늙은 화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자신의 상황을 담대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알 수 없는 미소로 무한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보통 우리는 자신의 불리한 상황에 대해서 자화상 그리거나 자서전을 쓸 때에 우리자신을

유리하게 포장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청렴한 것으로, 누군가 자기를 인정 해주지 않으면

결백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자신을 표현했다. 빛은 은은하게 누더기를 걸친 렘브란트를 비춰주고,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작가자신의 무한한 자존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내 겉모습은 초라하게 바뀔지언정 내 본연의 모습은 위대한 화가 렘브란트 이다."

 혹은 "네 모습은 또 얼마나 숭고하느냐?" 라고 반문하는 듯하다.

 

 

 

 


 

 

                                          Self-Portrait
                                                        1668-69
                                          Oil on canvas, 82,5 x 65cm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1606년 신교국가였던 네덜란드 에서 태어나  인생의 달콤함과 비극을 맛보았던 화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빛의 화가"렘브란트 반 레인".

 

 

렘브란트의 나이 57세인 1663년 6월 24일 결국 마지막 남은 슬픈 사랑 "헨드리케"마저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재산과 사랑 명예마저도 잃었지만, 그 시기에 마지막 남은 희망 

아들 "티투스"가 1668년 2월 20일 로프 출신의 "막달레나"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작은 기쁨은 직 후에 오게되는 비극의 전초였을까?  결국 세상은 마지막까지

렘브란트를 비참하게 만들어 버린다.  마지막 남은 유일한 삶의 낙 이었던 아들

“티투스”가 결혼했던 그 해 9월 7일 세상을 떠난다.

 

그토록 사랑하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사랑했던 여인“헨드리케”마저 이세상을 떠나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유일한 희망 아들 “티투스” 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야말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렘브란트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서인지 이러한 시련을 주는 신이 미워서 인지 

울다가 웃다가. 또 하나의 자화상을 남긴다.

 

속설로는 그리스의 최고의 화가 “제욱시스”에게 오느 날 제멋대로 생긴 한 노파가 찾아와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인정했으며, 트로이왕자 "파리스"가 사랑했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나”로 그려달라고 부탁을 하자.

 

너무 어의가 없던 “제욱시스”는 배꼽이 빠지게 웃다가 그만 죽어 버렸다고 한다.

자신의 어처구니 없는 처지와 “제욱시스”의 어처구니 없던 처지가 비슷했는지.

아니면 이제 너무 힘들어 죽어 버리고 싶었는지.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세상에 대한 반발이었는지 반쯤 미쳐버린 듯한 모습으로 자신을 화폭에 담았다.

 

 

 

 

 

 

 

                                        Self-Portrait
                                                        1669
                                          Oil on canvas, 59 x 51 cm
                                          Mauritshuis, The Hague

 

 

      "그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렘브란트”는 살아생전에 그렸던 크로키까지 합해서 약 120여 점의 자화상을 남긴다.

그 중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 해인 1669년에 그린 자화상이다.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알았는지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며 검은색 정장과 정갈하게 차려 입은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초연이 죽음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1669년 10월 4일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이 들을 앞세워 보내고,

그는 쓸쓸히 베스터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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