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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광석굴

박진영 |2007.08.02 17:47
조회 31 |추천 0


전체길이는 동서로 약 1km에 이르며 석굴의 총수는 42개이다.

동쪽 언덕에 제1∼4동(洞), 중앙 언덕에 제5∼13동,

서쪽 언덕에 제14∼42동이 있다.

북위(北魏)의 역사서 《위서(魏書)》의

〈석로지(釋老志)〉에 따르면, 사문통(沙門統:종교장관)

담요(曇曜)가 당시 문성제(文成帝)에게

석굴 조영을 주청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담요 오굴(五窟)'이라고 불리는

제16동에서 제20동까지가 이때에 만들어진 석굴로,

460년대 초에 조영된 것이다.

윈강석굴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의 양식은,

제20동의 노좌대불(露座大佛:높이 14m),

제19동의 대불(높이 약 17m)을 중심으로 하는 조상(彫像)에

초기 양식이 표현되어 있는데,

치졸하지만 소박한 면과 선으로 구성된 서방 양식이 풍부한 작풍이다.

담요 이후는 전통과 외래 양식이 혼합되면서 다양해졌다.

이 석굴의 융성기는 486년 전후였는데,

이 무렵의 불상은 중국 고대의 복제(服制)를 모방하였다.

신체보다도 복제 표현에 유의하여 조각하였고,

얼굴은 길며 매우 신비롭다.

북위불(北魏佛) 또는 육조불(六朝佛)이라 하여

후에 하나의 조상 기준이 된 것도 이 무렵의 불상이다.

이 석굴은 북위의 문화사적 유산일 뿐만 아니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서북 인도·중앙 아시아와의

문화적 교류 및 한국과 일본의 고대문화를 만들어낸

아시아 문화 생성의 자취를 입증해 주는

중요한 유구(遺構)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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