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새벽 상큼한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서
신선한 우유과 어제 담근 김치를 그릇에 담아두고
기분좋게 숟가락을 들려하니
탈레반 피랍자들의 영상과
추가피살된 피해자 가족들의 오열이 티비에서 쏟아졌다.
홀로 켜진 티비,
사람뜸한 새벽 식당에서 볼륨만 높았던 티비 덕에
초상집에서 아침을 먹는 기분이었다.
요즘 오늘의 나처럼.
아침밥을 먹으며 티비를 보는 사람. 신문들 펼쳐드는사람.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
떠들석한 언론덕에
온 한국 국민들은 우울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우울한 감정과는 달리 '보이는' 생각들은 각양각색이다.
비판. 권고무시하고 간 피랍자 잘못이다
(세금이 아까우니 아프간에서 자폭하라는 네티즌들의 댓글은 그냥 제쳐둔다.)
고스트 스테이션 신해철의 발언에 집중해본다.
'아프칸에서 철군을 하든 인질교환을 하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인질을 살리고 대신 살아서 고개 숙이고 오라'
'철군'
정부의 국익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고개숙이고 오라'
그렇다고 보편적 인류애를 비판하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독선적 지식인의 자유로운 발언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한, 그 발언이 또다른 대다수 네티즌들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비판. 그러는 너희는 한번이라도 봉사하려고 해봤나.
피랍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발언들은 다소 격해보이고 비인간적이기는 하다. 잘 살펴보면 봉사정신, 인류애라는 보편적 가치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듯 보이려고 애쓰는 흔적들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들을 상대로 한 비판은
'봉사정신. 선교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숭고하다.'
틀린 주장은 아니나 반대 의견과의 쟁점 그 자체가 다르다. 자신이 최고로 여기는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나 결국 난 이러니까 상관말라는 것 같아 답답하다.
과실과 고의 그 사이에서
피랍자들이 아프간에서 봉사활동을 했는지 아닌지.
착한 일을 했는지 나쁜 짓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국가의 권고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당금의 엄청난 국가적 파장, 그리고 이정도의 파장이 올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전부터 다른 한국인들이 아프간에서 봉사활동하고 있었음에도 언론, 국민들 모두 알지도 못했고, 신경도 쓰지 않았고, 이는 피랍자와 그 가족들까지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한다. 다른 나라 한두명의 피랍자들의 선례는 있지만 23명의 봉사자들의 피랍은 초유의 사태이다.
예측할 수 없었던 이러한 사태에 가장 큰 피해자는 피랍자들이다.
그들은 결코 고의로 인질이 되어 국가에 해가 되고자 하지 않았다.
굳이 국민성을 논하고 싶지는 않으나, 한국 유학생의 미국총기난사사건에서 미국인들은(정확히 미국의 여론은) 유학생을 탓하지도 않았고 자살한 유학생의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단지 피의자와 피해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단지 총기규제에 집중할 뿐이었다.
결코 같은 민족, 같은 국가가 아니라도
돌아오는 그들을 안아주고 달래주고 포옹해주며 토닥여주지는
못할망정
왜 그들에게 돌을 던지려 하는가?
'일단 인질은 구출하고 보자'..... 라고?
그 후에 헌법의 거주이전의 자유와 아프간 출국규제 사이의 절충점, 예방방안을 고민하는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왜 '구출되면 두고보자' 라고 눈을 부라리고만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