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광복절] 윤봉길 의사의 가슴시리게 하는 유서.

민천홍 |2007.08.15 01:11
조회 23,781 |추천 159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 들 계십시오." 

 

- 윤봉길 의사 유서 中 -

 

 

그는 1932년 4월 29일 일본의 천장절과 전승기념 축하식 단상에 수통형 폭탄 투척하고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중국의 백만 군대가 못한 것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 냈다."  

 

- 장제스 -

 

 

 


윤봉길의사가 두 아들에게 쓴 유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 두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

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의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아비없는 자식으로 살아갈 아이들에게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며 훌륭한 인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윤봉길의사가 일제에 의해 총살당하시는 장면....

아래 사진의 이마에 물든 붉은 선혈이..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윤봉길 의사의 어록 中 -

 

 

 

1932년 그의 나이 23살이었다.

 

 

추천수159
반대수0
베플오하영|2007.08.15 11:47
결국 그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보지못했다 .정말 죄스러운것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는 일본과 많은 역사적인 문제로 얽혀있다는것 ,하루빨리 군위안부 문제나 역사왜곡등이 해결되어 그의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
베플윤태희|2007.08.15 12:48
저렇게 독립운동하신분들의 자제분들은 못입고 못배워 사회 비주류층인데반해 일본에 기생하던자들의 자식들은 잘입고 잘배워 지금까지도 이 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큰소리 치고사니 앞으로 국난이 또 발생하였을때 누가 앞장서서 나설것인가!!!!!! 애통하도다
베플최성안|2007.08.15 03:44
당시의 윤봉길 의사 나이 23, 현재의 내 나이 28...... 역사의식 없이 살아 온 지난 날들이 부끄럽습니다.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