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 들 계십시오."
- 윤봉길 의사 유서 中 -
그는 1932년 4월 29일 일본의 천장절과 전승기념 축하식 단상에 수통형 폭탄 투척하고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중국의 백만 군대가 못한 것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 냈다."
- 장제스 -
윤봉길의사가 두 아들에게 쓴 유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 두아들 모순과 담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
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의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아비없는 자식으로 살아갈 아이들에게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며 훌륭한 인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윤봉길의사가 일제에 의해 총살당하시는 장면....
아래 사진의 이마에 물든 붉은 선혈이..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윤봉길 의사의 어록 中 -
1932년 그의 나이 23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