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푸른 천국' 거닐다
배낭여행자의 인도 방랑기5
히말라야를 말하는 두 가지 빛깔은 흰색과 푸른색. 그 지역에 머문 여행자들은 ‘블루 헤븐(Blue Heaven)’이라 부른다. 어울린다. 히말라야 트랭킹을 시작한 첫날, 눈앞에 푸른 천국이 펼쳐졌다. 글·사진 김정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꿈을 꾼다. 히말라야 설산에 오르는 꿈. 최고봉인 에버레스트산이 아니어도 좋다. 히말라야를 꼭 한번 보고 싶다면 트래킹 코스라도 떠나야 한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어도 꿈은 이루어진다. 인도 북부 쪽 산맥을 타거나, 네팔 히말라야로 직접 날아가는 마니아들이 늘고 있다. 그들이 모이는 곳이 네팔 포카라(pokhara)다.
트랙킹 산악인의 출발지, 네팔 포카라
포카라는 네팔 중앙에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200km 떨어진 작은 도시. 이 도시가 유명한 까닭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로 떠나는 트래킹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포카라 안에 있는 페와호수(phewa)는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하는 곳이다. 이른 아침, 호수로 산책을 나가면, 저 멀리 눈덮힌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이
호수 표면에 비친다. 저 산들을 넘기만 하면, ‘신의 산’을 마주한다는 소망이 생긴다. 트래킹을 위한 여벌의 옷과 장비를 챙기면서, 한시라도 빨리 설산으로 떠나고 싶은 의지가 생긴다. 트래킹을 떠나기 전날, 페와호수 주변을 자전거를 타고 돈다. 호수를 낀 거리 양쪽으로 등산점, 레코드점, 인터넷피시방, 네팔 식당들이 즐비하다. 트랭킹 출발지다운 모습. 고산이 둘러싼 도시여서 그런지 지나는 바람도 상쾌하다. 호수 주변 사람들도 여느 시골 사람들처럼 순박한 웃음을 지녔다. 가슴 설레이는 포카라 풍경이다.
하얗게 빛나는 안나푸르나
다음날 아침 7시. 히말라야 트래킹은
포카라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페디(phedi)로 이동하며 시작한다. 해발고도 1100m. 포카라는 지형 자체가 높은 곳이었다. 트래킹의 입구인 페디는 한국의 여느 등산 출발지와 다르지 않다. 일행은 입구 옆 간이 식당에서 짜이차와 오믈렛으로 간단한 요기를 한 후에 출발한다. 폭이 채 50cm가 되지 않는,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길. 일행은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에 나선다. 3박4일 동안 진행될 트래킹이라 첫날부터 큰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한 시간 가량 올라가자 출발지인 페디의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하늘은 구름 안개로 자욱했지만, 산 아래 풍경은 그대로 한국의 시골 풍경이다. 트래킹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참을 올라 1700m 지점에 이르렀을 때, 믿지 못할 풍경이 눈앞에 있다. 지나는 구름 사이로 히말라야 설산이 제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다. 그 설산은 안나푸르나 남봉(8091m). 포카라에서 본 멀리 있는 설산이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 그 자태가 회색 구름에 대비돼 하얗게, 햇빛을 받아 마치 얼음처럼, 맑게 빛난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트래킹을 시작한 그 피로감이 한 순간에 달아난다. “저기 빛나는 얼음산 안나푸르나 정상, 바로 밑까지 좇아간다”라며 일행은 더 의기양양하게 산을 오른다.
히말라야를 품고 사는 네팔 사람들
페디에서 시작한 산행은 3박4일 후 목적지인 푼힐전망대(poon hill)에서 끝난다. 매일 8시간 정도 걷는, 하지만 트래킹은 예상보다 순탄하다. 늘 구름에 가린 설산이 지척이지만, 그 하늘 아래 푸른 산은 꼬불꼬불한 길만큼 재미를 더한다. 산비탈을 깎아 수없이 만들어 놓은 다락논. 짚으로 만든 초가집, 소 헛간. 옥수수며 감자, 오이를 꺼내놓는 순박한 네팔인. 한국 강원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정감있는 풍경이다. 평균 2~3000m에서 신기할 정도로 띄엄띄엄 군락을 이룬 고산지대 마을, 세상일에 욕심이 없어 보이는 네팔인의 삶이 차례로 읽혀진다. 로지(lodge 임시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해가 질 때까지 그 풍경을 보게 되는 일이 많다. 하늘은 무지 높다. 설산을 감추느라 구름의 운행이 더뎌보였지만, 그 아래 푸른 하늘은 시시각각 여러 가지 모습을 보인다. 그 순간, 왜 이곳을 ‘블루 헤븐(blue heaven)’이라고 하는 지 이해가 된다. 우기라 간간히 비도 뿌리지만, 그렇다고 변화무쌍한 푸른 하늘을 가리지는 못했다. 그 내리는 양이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다.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설산을 먼저 봐야한다. 해가 뜬 후 2시간이 채 안돼 설산은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챙겨야 볼 수 있는 새침한(?) 히말라야다.
트래킹 구간에서 설산에서 흘러내려온 계곡물을 만난다.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이라, 발목이 시려 몇 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차가웠다. 이 계곡물을 좇아 올라가면 안나푸르나 남봉 바로 밑 베이스캠프(4300m)다. 보통 ABC라고 부르는 이 트래킹은 전문 산악인뿐만 아니라 일반 여행자들도 많이 타는 코스다. 일행은 북쪽 정상이 아닌, 서쪽으로 전망이 좋은 푼힐전망대로 향하는 트래킹 코스를 탔다. 일명 간드룩고래파니순환트래킹. 난드룩을 거쳐, 간드룩, 타다파니, 고래파니, 해발고도 3210m인 푼힐전망대까지 다다른다. 한라산보다 더 높은 곳. 히말라야 원시림 안에서는 산에 대한 평소 생각이 바뀐다. 이끼가 자욱하게 낀, 수백 년 된 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어 무질서하게 자리를 지키는 곳. 보이는 하늘이 없다. 산길을 걷다보면 히말라야 설인 예티(yeti)가 나올 듯한, 인적 드문 음습한 숲도 여러 번 마주친다. 어느 곳은 야생화가 지천으로 핀 야트막한 동산이 나오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쏟아지는 이름없는 자연 폭포도 장관이다.
언제라도 도전을 받는 히말라야
서너 시간을 걷다보면 꼭 마을이 있다. 여행자들이 간단한 요기를 하고, 물을 얻을 수 있는 장소다. 네팔인의 생활도 엿본다. 산을 타면서 이마에 천을 둘러 짐을 옮기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제 몸보다 몇 배 큰 나무장작, 수십 마리의 닭을 지고 가는 사람들. 특이하다. 당나귀로 짐을 옮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필요한 생필품을 저 아래에서 고산지대까지 온 몸으로 나른다. 어찌 보면 지난한 삶이다.
트래킹이 끝나는 나야폴 바로 건너 마을에서 마오이스트(네팔 사회주의자)를 만났다. 네팔 정부와 싸움을 하면서 히말라야 지역을 장악한 무장단체다.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는 여행자들에게 통행증을 끊어주고 얼마간의 돈을 받는다. 체류 1일당 100루피(한화 1500원)씩. 한화로 계산하면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여행자에겐 불쾌한 경험이다. 네팔 정부에 히말라야 트래킹 허가비를 주고 왔는 데,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또 줘야 한다. 이해가 되지 않아 몇 차례 실갱이 끝에 돈을 전해주고 넘어온다. 이 또한 히말라야가 안고 있는 삶이다.
히말라야 트래킹을 다녀 온 사람들은 다시 그곳을 가야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푸른 천국’을 보고 싶기도 하지만, 인간의 도전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받아주는 설산 때문이다. 히말라야는 멀리 있는 꿈이 아니라, 도전 가능한 현재의 산이다. 설산의 맑은 풍광을 잊지 않고, 가슴 가득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