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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 음식점 가미 (3)

최용진 |2007.08.20 12:25
조회 21 |추천 0


 

 

5

그는 계속 말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비밀들은 아무에게나 쉽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선택 받은 소수만이 그 비밀의 원리들을 알게 되는 거죠. 실례로 우리 주변엔 그냥 자기가 알고 싶은 것만 알려 한 채, 적당히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산다 해도 불행하진 않겠죠. 어쩌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사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이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입니까. 행복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가치 있는 삶은 아니란 겁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막상 위기가 닥치면 넘어지기 마련이죠. 왜냐하면 무릇 위기란, 여태껏 알고 지내온 자신 깜냥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일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런 삶은 비참합니다.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은 위태로운 것입니다. 겉에 보이는 가치는 이렇듯, 뜬구름 같은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라고요? 물론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당연한 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쩌면 저의 책이 말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편적인 이야기이기에 젊은이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삶의 중요한 원리가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보편적인 것이라는 점이 젊은이들에게 어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시 정정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비밀은 아무에게나 쉽게 알려지지 않는 게 아니라, 아무나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충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삶의 신비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소수이고, 또 그 사람들보다는 그 원리를 실천하는 사람은 더 소수일 테죠. 저는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삶을 살기 원합니다. 보이는 가치관과 겉모습에 치중하여, 정작 중요한 삶의 정신적 기쁨을 도외시하는, 구차한 삶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윤식의 얼굴은 열변의 탓인지 벌겋게 상기되어 있다. 하지만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송희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묻는다.

 

“그럼 필자께서 말하시는 삶의 비밀이란 대체 무엇인가요?”

“글쎄요, 그것을 지금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지요. 어쩌면 오늘 밤을 새가며 이야기를 나누어도 모자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뷰에 올리기에 적당치는 않네요.”

“하하, 지면에 싣는 것은 전적으로 저의 일이지, 필자님의 걱정은 아닌 듯 하네요. 조금만이라도 간추려서 이야기해줄 수는 없는 것인가요?”

“책을 직접 사서 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책은 이미 사서 읽은 걸요.”

 

윤식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송희를 바라본다. 송희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윤식을 본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책을 읽은 개인적인 독자 입장에서 볼 때, 필자님 책의 주요 골자가 고대의 그노시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그렇지만 별로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사상이나 그것을 담은 책의 내용들이 영지주의와 닮아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특별히 종교적인 색채를 띠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런가요…… 음, 그럼 그 부분에 대해선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보내주신 약력을 보니, 지금 고시공부 중이라고 하셨는데요, 고시에 합격해서 검사나 변호사가 되면 출세나 외적 가치관을 버리라는 필자님의 말과는 어긋나게 되는 것이 아닌지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남들이 바라는 출세나 돈을 위해서 고시공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단련이라고 보는 거죠. 나의 몸을 다스리고 진지한 정신을 심어나가려는 의지에, 고시공부란 썩 어울리는 행위입니다. 실제로 고시공부를 하는 삶은 매우 금욕적입니다. 책을 통해 돈을 많이 벌게 되었지만, 고시공부를 하면서 물욕을 잊었습니다. 젊은이에게 돈이 많은 것은 매우 불행하며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제가 말했던 가난한 삶을 몸소 실천에 옮기기 위해, 있는 돈도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고시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말씀 드렸던 것처럼, 금욕적인 삶만이 내면의 성장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렇군요, 어떤 의미에선 참 대단한 삶을 살고 계십니다. 이건 다른 질문인데, 혹시 여자친구 있으신가요? 필자께서 말씀하시는 삶을 살면서는 사랑이나 연애 같은 것이 아무래도 가능치 않을 듯 해서요.”

“물론, 여자친구는 없습니다.”

 

 

6

오전 11시 50분.

도연이 학교 앞, 자주 가는 음식점 ‘가미’로 향한다. 무릇 학교 앞이란, 여럿의 저렴한 음식점들이 즐비하기 마련이다. 점심시간이면 각 점포마다 학생들이 북적댄다. 큰 길에 있는 목이 좋은 점포일수록 더욱 그렇다. 도연은 그게 싫어서 일부러 골목 깊숙이 들어간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멀어지고, 제법 긴 골목의 막다른 끝에 이르면, 거기에 조그만 분식집인 ‘가미’가 있다. 하얀 벽돌로 된 건물에, 문은 자동문으로 되어 있고, 역시 하얀색 간판에 큼직하게 검은 한자로 ‘加 味’라고 씌어있다. 더할 加에 맛 味, 음식점 이름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도연은 자동문 버튼을 누르고 ‘가미’의 안으로 들어선다. 역시 예상대로 조용하다. 마호가니 색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고, (실제 마호가니일 리가 없다.) 이미 몇몇의 사람들이 식사 중이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라 해서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식 풍의 간단한 분식을 파는 이 집은,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 대부분 단골들이다. 주인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도 상당할 뿐더러, 학교 앞에 위치하고도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한 번 들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집에 매료가 되는 것이다. 도연 역시 ‘가미’의 단골이다. 그는 주로 알밥이나 대구 양념구이를 먹는다. 알밥은 다른 집에 비해서 특별하지 않으나, 대구 양념구이는 어디서도 맛 보기 어려운 메뉴이다. 새콤한 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큼지막한 대구 구이 세 토막이 나온다. 거기에 타 분식집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다양한 밑반찬을 곁들이면, 한 끼의 식사로는 어느 곳 부럽지 않은 것이다. 도연은 오늘도 변함 없이 대구 양념구이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혼자 밥 먹는 것이 익숙하기에,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가방에서 스포츠 신문을 꺼낸다. 자신이 입고 있는 후줄근한 면티에 그려져 있는 이동국이 미들스브러로 이적했다는 소식이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친근한 인사와 함께 맛있는 대구 양념구이를 가져온다. 도연은 남들이 그러듯, 식사 값을 먼저 지불하고는, 어색하지 않게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대구를 쪼갠다. 별 볼일 없는 조용한 봄날의 점심이다.

 

그렇게, 그저 예전과 다를 것 없는 조용한 점심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도연이 평소마냥 스포츠 신문이나 쳐다보다가 묵묵히 일어서 나갔다면 말이다. 하지만 식사를 거의 마쳤을 즈음, 그는 우연히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진주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혼자 앉아서 알탕을 먹고 있는데, 마치 접시 물에 코를 박듯이 상체를 잔뜩 웅크리고 그릇에 머리 전부를 갖다 댄 채, 조심스럽게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입에 넣는다. 숟가락 전부를 입에 가득 넣었다가 쏙 빼내고는, 몸을 일으켜 물끄러미 창 밖을 쳐다본다. 이윽고 다시 몸을 웅크리더니, 이번엔 밥을 한 숟가락 뜬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황홀할 정도로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도연은 정신이 아득할 정도이다! 다가가고 싶다. 수줍게 인사를 나눠보고 싶다. 이는 분명 탐욕과는 다른 것이다. 담담히 마음 전부를 내어 보이고, 이해 받고 싶은 것이다.

그는 이미 당황하고 있다. 전에는 결단코 느껴보지 못했던 성질의 호기심이어서 미칠 지경이다. 마침내 도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주변 광경은 신경 쓰지 않은 채, 급하게, 그러나 차분한 걸음으로 진주에게 다가간다. 한없이 게으르던 그가, 생애 처음으로 부지런하게 대쉬해보는 것이다. 진주는 도연이 다가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무안한 그가 부끄럽게 헛기침을 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도연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부끄러운 도연은 수박 색의 얼굴을 하고 진주에게 말을 건넨다.

 

“저…”

 

도연이 말을 잇지 못한다. 생전 이와 같은 경험이 없는 그로서는, 그저 이 상황이 매우 힘들게 느껴질 뿐이다. 진주는 그런 도연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하지만 불쾌한 얼굴은 아니다. 오히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따스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도연은 말이라도 못 붙이면 크게 후회할 것 같은 맘에, 용기를 내어 횡설수설을 시작해본다. 

 

“그러니까……제가 저 쪽에 앉아 있었는데……저기……스포츠신문을 보다가……아! 대구 양념구이를 먹고 있었는데……그러고 보니 알탕을 드시고 계시네요. 여기 알탕도 맛있죠. 그래서……”

“편하게 말씀해보세요.”

 

진주가 웃으며 말을 끊는다. 미소를 짓는 진주의 얼굴을 보자니 마음이 새하얘져서, 도연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한결 차분해진다. 이 때부터 진주의 단답형 대답이 시작된다.

 

“솔직히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바라보고 있자니 너무 아름다우셔서, 말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아, 그러셨어요.” (웃음)

“그래서 하는 얘긴데, 제가 썩 괜찮은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만나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지금 굉장히 용기를 내서 말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요. 원하신다면요.” (지체 없이 대답한다.)

“정말요? 너무 쉽게 대답하시니까 믿겨지질 않네요.”

“믿으셔도 됩니다.”

“아, 네……그럼 언제가 괜찮을까요, 내일 혹시 시간 있으세요?”

“네, 괜찮아요.” (웃음)

“어디서 보죠, 그럼?”

“낙산 공원 벤치가 좋아요.”

“몇 시에?”

“아침 8시 30분이요.”     

“네. 그럼 내일 그 때 뵙는 걸로 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도 믿겨지지 않네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네? 부탁이요?”

“네, 예쁘게 단장하고 나와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진주와 인사를 하고‘가미’를 나서는 도연은 마음이 촉촉하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운동장에 걸터앉아 유치한 상상이나 하던 게으름뱅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굳이 황사를 뒤집어 써가며 축구를 하지 않아도 반겨주는 여자가 있다. 그것도 보통 여자가 아니다. (적어도 도연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누구라도 보는 순간 벌떡 일어서서 다가가고 싶을 만큼 신비한 사람이다. 아름다운 여자이다. 얼마나, 어떻게 아름답냐면……그런데 신기하게도 ‘가미’를 나서는 순간, 진주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상상하려 애를 써봐도 동그란 얼굴 안에 눈, 코, 입이 없다.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 다시 확인하고 싶지만, 그건 왠지 금기처럼 느껴진다. 돌아서면 롯의 아내처럼 소금기둥이 되 버릴까봐, 도연은 꿋꿋이 참아낸다. 그러자, 다시금 웃음이 솟아난다. 도연은 입을 벌리고 실금 웃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아가는 골목이 답답하다고 느낀다. 그는 마구 뛰어간다. 얼른 이 골목을 벗어나서 조금 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다. ‘이 골목을 나가면 기념으로 조이포토를 찍을 테다!’ 골목을 나서자, 햇볕은 아침과 다름 없이 따사롭다. 그건 도연에게도 마찬가지다. 길 옆에 어느 할머니가 조그만 바구니에 쪽파를 담아놓고 팔고 있다. 쪽파가 필요 없는 도연은 할머니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골똘히 생각한다. ‘아침 일찍 만나려면, 알람을 총동원해야겠구나. 좋아, 부지런해질 테다!’ 쪽파 값을 지불하며 일어서자, 할머니가 한 단을 더 챙겨주신다. 도연이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역시, 마음이 넓은 건 할머니 쪽이다. 도연은 쪽파를 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학교로 향한다.  

 

‘사랑하고 싶어, 길가 옆 공원에

뛰노는 귀여운 계집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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