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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

김종태 |2007.08.24 23:51
조회 209 |추천 7


1.중국의 만리장성

총연장은 약 2,700km로 우주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다. 중국의 거리 단위 리(里=0.5km)로 환산하면 1만리를 넘기 때문에 '만리장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진시황이 흉노족의 침입에 대비해 10여 년 간 쌓았으며, 현재의 모습은 명나라 때 완성되었다. 10여 년 전부터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개방하는 곳 중에 많이 찾는 곳은 팔달령·모전욕·사마대장성 등이다.

 

2.인도 타지마할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 교외 아그라성 동쪽 약 2km, 자무나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만들어진 궁전형식의 묘묘이다.
타지마할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으로,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이 사랑했던 여인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1630년부터 18년 동안 국가의 재정이 기울어질 정도의 거액을 들여 완성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길 중앙에 있는 일직선의 풀이 양 옆의 나무의 녹색을 비추고, 우윳빛의 대리석으로 된 돔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 태양 광선은 대리석을 그물모양으로 투조한 이중장치를 통하여 돔 내부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곳에 황제부처의 묘관을 안치하였다. 특히 달밤의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형언할 수 없으며, 인도·페르시아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서

세계적으로 이름높다.

 

3. 페루의 잉카문명, 마추피추

1534년 정복자인 에스파냐인을 상대로 저항했던 만코 2세 이하 사이리 토파크, 티투 쿠시, 토파크 등의 잉카가 거점으로 삼았던 성채도시로 보인다. 그 시대에 세운 건조물이 주체를 이루고 있으나, 정복 전의 잉카시대에 속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출토된 유물은 후기 잉카의 토기가 대부분이다.
마추피추는 우르밤바 계곡지대의 해발 2,280m 정상에 있다. 마추픽추는 '나이 든 봉우리'라는 뜻인데, 산자락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공중도시'라고도 불린다. 도시의 총면적은 5㎢, 그 절반에 해당하는 비탈면은 계단식 밭이다. 서쪽의 시가지에는 신전과 궁전, 주민 거주지 구역이고 주위를 성벽으로 둘러쌌다. 16세기 후반, 잉카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이곳 마추픽추를 버리고 더 깊숙한 오지로 떠났다. 그 뒤 약 400년 동안 사람 눈에 띄지 않다가 1911년 미국의 역사학자 하이람 빙엄이 발견했다.
200톤이 넘는 거석, 정교하게 쌓아올린 태양의 신전, 주신전 등은 건축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람들의 작품이다. 후대의 잉카인들도 고대인들만은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기술로 고유의 건조물을 세웠고, 유적 붕괴 후에는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조잡하게나마 유적을 재건하고자 석축을 쌓았다.
유적 꼭대기에 '인티파타나'라고 하는 제례용 석조물이 있다. 인티파타나는 '태양을 잇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이 석조물 위에 높이 1.8m, 너비 36cm의 돌기둥이 솟아 있다. 잉카인들은 바뀌면 커다란 재앙이 생긴다고 믿고, 매년 동지 때 이 돌기둥 바로 위에 뜬 태양을 붙잡아 매려고 돌기둥에 끈을 매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둥을 해시계의일부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즉 이 기둥이 만드는 그림자가 시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4.로마 콜로세움

정식으로는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였다. 제정기로마의 복받은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서, 여기에서는 글라디아토르의 시합, 맹수연기등이 시행되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으로 설치되어 있다. 콜로세움의 명칭은 근처에 네로의 거상이 있었던 데에 유래한다.

 

5.브라질의 거대 예수상

1931년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세운 그리스도상으로 높이30m,

양팔길이 28m, 무게는 1,140여톤, 전신에는 납석을 발랐다.

 

6.요르단 거대도시 페트라

페트라는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해발 950m의 산악도시로서 최고 높이 300m의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교역로의 교차지점에 있어서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며 번영을 누렸다. 시가지 입구는 동쪽의 시크, 남쪽의 투그라, 북쪽의 투르크 마니에라라는 3개의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뛰어난 기술로 세워진 건축물과 수로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기원전 6세기, 유목민 나바테안은 서부 아라비아에서 이주하여 페트라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기 106년경까지 이 지역의 무역과 상권을 주도하면서 페트라를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시켜 절정기를 누렸다.
서기 106년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점령당하고, 로마 시대에 아라비아 사막에 새로운 상업로가 개척되면서 페트라의 영예로운 시기는 점차 막을 내렸다. 후기 로마 시대에는 콘스탄틴에 의해 기독교화 되면서 도시의 상업적 역할보다는 요르단과 남부 시리아의 종교적 중심 도시로 자리하다가 서기 6세기에 있었던 큰 지진으로 폐허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880년대에 유럽 탐험가인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 하르트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오랜 침묵에서 깨어나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암벽도시 페트라는 단순하고 투박한 나바테안 고유의 건축양식으로 시작해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건축양식을 거쳐 후기의 세련되고 건축미가 넘치는 그리스, 로마식 건축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흐름에 따른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7.멕시코 치첸이트사

멕시코 유카탄반도 북서부의 도시 메리다의 동쪽 약 110km 지점에 있는 마야문명의 대유적지이다. 건조한 석회암 지대에 있고, 유적은 석회암, 회반죽한 흙·목재 등으로 되어 있다. 이트사족에 의한 최초의 취락 건설은 530년 이전의 일이라 하며, 7세기에 일단 포기되었다가 10세기에 재건되었고, 11세기 이후는 마야 신제국의 종교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초에 이트사족은 아스테크-톨테카족의 연합군에 패하였으나, 이후 가장 번영시대를 맞아 많은 건물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무렵에 갑자기 폐허가 되었다. 유적은 8㎢의 넓은 지대에 걸쳐 있고, 카스티요(높이 25m의 피라미드)와 그 동쪽의 전사의 신전, 도로 건너편의 천문대 등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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