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동문에게 고함
저는 단국대학교 영문과 84학번입니다. 지난달 어느날, 모교인 한남동 단국대학교 후문 옆길을 운전하며 지나다가, 출입구 주차요금소에 사람은 없고 녹슨 쇠사슬만이 지친 듯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교 이전을 한다, 한다, 하더니 기어코 가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인적은 끊어지고 잡초만 무성히 자란 학교 쪽을 허하게 바라보다가, 그나마 더 허물어지고 비참해지기 전에, 이제는 영원히 되밟지 못할 교정과 이별 의식 비슷한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8월 중순 오후, 작정을 하고 디지털 카메라를 든 채 학교를 찾았습니다. 그 넓은 문리대 운동장엔 사람 하나 없고, 한때는 제 값을 다 했을 온갖 집기들이 쓰레기가 되어 군데군데 동산을 이루어 쌓여 있었습니다. 정말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삭막하기도 하면서 마음 속 어느 한구석에서는 서럽기까지 한, 매우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밀려와서, 한동안 그 폐허더미를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수십년간 맑고 푸른 청춘들이 구석구석을 누볐을 그 큰 건물들도, 버리고 가는 건물이니 외벽이 깔끔할 리 없었겠지요. 더러 유리창도 깨어지고 외장 대리석도 떨어져 나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건물들보다 더 오래 그 땅에 뿌리박고 있었을, 수십 년은 된 아름드리 고목들이 묵묵히 지키고 선 그 사이사이로 오래된 현수막과 너덜너덜해진 대자보가 퍽 쓸쓸한 풍경이었습니다. 아마도 새 캠퍼스로 옮겨갔을 곰상과 설립자 동상의 자리터는 망가진 받침대만 남겨둔 채 황량했습니다.
한 시간 남짓 학교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는데, 참 어느 장소 하나하나가 내 추억의 일부분인 아닌 곳이 없었습니다. 중앙도서관, 학생회관, 문학관, 공학관, 과학관, 난파음악관, 박물관, 사범대 건물, 그리고 범은정과 민주계단과 상경대 폭포.... 이런 곳에서 한 때, 아니 꽤 오랜 기간동안, 저를 비롯한 수만 혹은 수십만의 학생들이 배우고 고뇌하고 토론하고 연구하였으며, 웃고 울부짖고 돌 던지고 또 연애를 했었습니다.
1947년 설립된 단국대학교가 한남동에 터를 잡은 것은 1957년 7월입니다. 이제 올해 경기도 죽전으로 이전을 완료하여 8월 30일에 새 터에서 근사하게 준공식을 하였으니, 만 50년만에 낡은 한남동 단국대의 역사는 저무는 것이지요.
그 어떤 이유에서건 저무는 역사는 애잔한 법이지요. 또 그 어떤 이유이서건 전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참 애석한 일입니다. 그리고 낡은 것의 아름다움도 있는 법이지요.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캠퍼스를 거니노라니 괜한 연민에 사로잡혀 있다가, 아닌게 아니라 고향을 잃은 수몰민의 심정이 이러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터가 거대한 고급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고향을 추억하며 이 곳을 이야기하겠지요.
모르긴 해도 젊음의 지극히 중요한 시절을 한남동에서 함께 보냈을 단국대학교 동문에게, 감히 고합니다. 그대들의 청춘의 흔적이 필히 곳곳에 묻어있을 터전, 허물어져 가지만 그러나 소중한 마지막 시간을 되짚어보시기 바랍니다. 내일이면 늦습니다. 모레면 더 늦을 것입니다. 그리고 몇 달 후면 여러분의 아름다웠을 과거가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익숙한 발길로 한번쯤 한남동 모교의 캠퍼스를 돌아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거기엔 어쩌면 세상은 망각해도, 여러분은 영원히 간직해야 할 그 무엇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건물 철거를 위해 온통 바깥쪽으로 공사용 울타리를 쳐 놓았습니다. 철거를 위해... 이 말은 참 서럽군요. 단국대학교 동문 여러분. 애써 그 흔적을 찾으셔도.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