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간결하고 명확한 답 대신에, 조금 길고,
지루할 법한 넋두리로 대신하면 안될까?
그 정도는 이해해주겠지?!
'축구'가 뭐길래 밤 새며 난리를 피우고,
그게 뭐길래 졌다고 징징거리고,
그게 뭐길래 미친듯이 쌩쇼를 하냐고 물었었지?!
그래...'축구'! 그게 뭐길래 그러는걸까?
질문을 받으니 나도 궁금해졌는데....
어렴풋한 기억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어.
내가 아주 어린 나이였었고, 토요일 오후였던걸로 기억을 해.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가게 문도 닫으신 채 TV앞에
앉아 계셨어. 동네 어르신 몇 분들과 맥주 한잔을 곁들이시면서
말이지. .... 음, 그래. 전이었던거 같애. 평소엔
스포츠엔 관심도 없었던 우리 어머니도, 마지못해 보는듯
새초롬하셨지만, 난 기억해!! 보는 내내, 주먹을 꽉 쥐고 계셨던걸...
그때 그 경기, 아마도 이겼던것 같어.
얼굴이 빨개진 아버지가 내내 싱글벙글이셨으니까.
변병주, 조광래.. 아직도 이 름들이 지워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해.
그 날 아버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외쳤던 이름이었으니까.....
자, 과연 '축구'가 뭐길래?? 응?
93년이었어. 대학 1학년.
대전에서 EXPO가 열려서 구경을 가게 되었지만,
정작 우리의 관심은 딴데 있었지 아마?! 카타르 도하 (그냥 지리책
에서 외우라고 했었음 죽었다 깨어나도 외워지기 힘들었을
중동의 한 도시.. 까먹어지지도 않는다.)에서 벌어지는
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절벽에 매달린 한국이 기적적으로 본선에 올라가게 되지 아마?!
그날... 숙소 몇 십동 전체가 쿵쿵!!거렸던 그 전율을 잊지 못 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 같이 숙소를 뛰쳐 나와서,
얼싸안았었지. 사실..누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말이지....
그 날, 교수님들이랑 마신 술이 얼마였던지, 기억도 안 날만큼.
그리고 TV에 비치는 김호 감독의 눈물 글썽이던 모습도
잊혀지지가 않아. 난리도 아니었었지.
이걸 우리는 [도하의 기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자, 과연 '축구'가 뭐길래?? 응?
비록 일본과의 공동개최였지만, 극동 아시아의 이 작은 나라에서,
올림픽보다 더 인기있는 스포츠 제전이 열리게 되는 2002년.
그동안 월드컵 무대에서 1승조차 챙기지 못 했던 대한민국.
첫 상대였던 폴란드전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큰 고모님께서
운명을 달리 하셔서, 빈소에 서둘러 가야했음에도 불구하고,
죄 짓는 셈치고, 축구를 봤던 미련하고 못 됐던 크롬씨는,
월드컵 사상 첫 승!!이라는 TV화면 문구의 뒤로, (크롬씨의 영원한
히어로) 홍명보가 그 자리에 덜썩 누워 두 손을 번쩍 드는 모습을
보며, 콧잔등이 시큰해졌었다. 그리고 찾은, 빈소.
친지 외에는 내빈이 아무도 없는 그 곳, 아버지께 축구 보고 올
정신이 있느냐?며 야단은 맞았지만, 첫 승을 이뤘다고 전해 드리자
살포시 번지던 아버지 입가의 미소..기억한다...
그리고 행복했던, 감히!! 행복했다고 말 할 수 있었던 시간들.....
자, 과연 '축구'가 뭐길래??응?
며칠전이었었지?! 전이 끝난 아침.
집 근처 편의점을 들렀어. 너무 악을 썼기 때문이었을까?
배가 고팠거든. 그런데, 온통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야.
그리고 더 기가 막힌것은, 그 누구도 웃지를 않았다는 거야.
편의점에 들어 와 조용히 맥주를 집는 사람, 담배를 사는 사람...
더군다가 카운터 보는 알바 총각의 목소리도 왠지 시무룩해져
있더라. 아마도, 그랬겠지.... 그 아쉽고 억울한 경기가 끝날 무렵,
그라운드에 쓰러져 울고 있거나,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선수들
을 위해, 박수를 쳐 주고, 잘 했다고!! 그 정도면 됐다고!! 다독거려 주고, 뒤돌아 서서 울컥!!했겠지. 내가...그랬었던 것 처럼...
그리고 젋은이의 뜬금없는 '대~한민국!!'에 이내 웃음을 지을 수
있었을거야..... 자, 과연 '축구'가 뭐길래??응?
'축구'가 뭐냐고 물었었지?! 사실 '축구'란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야.
중요한 것은 '추억'이고
'나눔'이었다는 것이라고 생각 해 본다.
'축구'가 국력을 대신하는 잣대도 아니고,
응원이 그것을 과시하는 행동도 아니란 거, 우리 모두 잘 알잖어.
외려... 소외받고 힘들어 지친 삶속에 하나 얻을 수 있는...
그 발자욱에서 잠시 벗어나서, 웃고 즐기고, 소리치고,
때론 탄식하고 열 받고 하는...그 모든 것들이
빚어내고 견고해져 가는 '추억'이라는 것에다가,
이제는 따로 따로가 아닌, 내가 즐겁거나 슬프거나하는
모든것들이 내 옆에 서 있는, 아주 닮은 우리의 이웃과
함께 한다는 '나눔'외에 어떤 의미를 덧 바를 수 있을까?
차범근은 말한다, 축구는 인생이라고...
그를 보는 나는 또 이렇게 말 할 수 있겠지.
그런 투지의 인생들의 모습들이 하나 둘 쌓여있는
내속의 치열한, 어떤 추억이라고.
물론 '축구'에서 뭔가를 끄집어 낸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이다.
비단, 그것뿐 만이 아닌 많은 스포츠에서 말이다.
그건 어찌 보면, 서럽기까지 하잖어...
이젠 그건 좀 아닐 수 있을 것 같다.
그저...시원한 맥주와 안주를 먹으면서,
간혹 온 몸에 힘을 줘 가면서, 애궃은 담배만 뻑뻑 피워가면서,
그라운드에서 공 하나를 바라보면서 미친듯이 내 달리는
그들의 모습에 즐거워 하며, 행복해 하는 것, 그거면 된다.
나는...그렇다, 그거면 된다.
'축구'가 뭐길래 목을 매냐고 물었었지?!!
그건 추억이었고, 어찌보면 나눔이었고,
결국엔 찌릿한 행복이거든.
그 소중한 것들이 섞여져 있는데,
어떻게 목을 매지 않겠냐는 거지.
애시당초 대한민국이 독일 월드컵에서 8강, 4강까지 갈 꺼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었다. '원정게임 1승'이면 나는 만족한다!! 라고
월드컵전에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졌다. 이루어졌기에 아쉬움은 하나도 없다. 간절히 원했던, 언저리 축구팬의 바램을, 그들이 이뤄졌으므로
난 더없이 행복하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한페이지의 추억으로
기록되어 내 인생과 같이 걷겠지.... 그게 좋은거다, 그냥...
'축구'에서 그걸, 느낀다. ^^ 행복을...
이제 대답이 되었니?!
다들 수고했습니다. 23명의 선수들, 코칭스탭,
그리고 보이지 않는 운영스탭들,
그리고 4천8백만 붉은악마들까지.
이번에 16강 못 들어간거...이렇게 생각합시다.
하나의 '가능성'을 미리 열어 보지 않았다구요.
(사실 냉정하게..말하자면, 세컨 라운드 올라갈 만큼의
실력은 되지 못 했습니다. 대한민국. ^^)
사실..나는, 패했지만 그리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10년이 더더욱 기달려지니 말입니다.
또... 발톱 갈고 있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