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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을 넘길 때마다 늘 앞보다 재미있다면? [나니아 연대기 리뷰]

신한준 |2007.10.20 22:16
조회 38 |추천 1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늘 앞보다 재미있다면?


 



가끔씩 우리는 그런 무책임한 기대를 한다. 어떤 책이 우리를 흥분시켜 줄 것을 기대하면서, 그것도 매 장을 넘길 때마다 매번 역치를 넘기는 자극으로 우리를 계속 고양시킬 것을 주문하면서. 사실 이 무책임한 기대는 문학적인 기대는 결코 아니다. 영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이기도 했던 C.S.루이스는 <문학비평에서의 실험 An Experiment in Criticism>에서 비문학적인 독서의 한 예로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앙상한 서사 구조를 선호하는 것을 들고 있다. 서사는 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한 요소이지만 문학이 서사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에, 문학의 다른 요소를 배제한 채 서사에만 달려드는 독서에 대해 비문학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더 강화되며 등장하는 재미라는 것이 반드시 사건과 서사 구조에 연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일말의 여지가 남겨진다. 한 SF 소설 전문가의 주장처럼 “하찮은 재미의 위대한 옹호자”였던 C.S.루이스는 자신의 대표적 환상 소설이자 유일한 동화인 <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rnia>에서 재미에 대한 이 무책임한 기대를 현실화하고 있다. 7연작을 합본으로 묶어 놓은 책의 경우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진 장수가 무려 1000장이 넘어 가는데, 한 번 손에 들면 놓을 수가 없다는 그 상투적이고도 상투적인 문구가 그대로 적용되는 작품인 것이다.




흔히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 <어스시 연작>을 엮어서 세계 3대 환상 소설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중 동화는 <나니아 연대기>가 유일하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의 놀라운 점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반지의 제왕>이 예상을 깨고 1위로 선정되어 평론가들의 충격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20세기 최고의 영문학 작품을 뽑는 영국의 한 여론 조사에서 <나니아 연대기>의 첫 작품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조용히 20위권에 오르며 미소를 지은 바도 있다. 아마도 환상 소설 중에 두 번째요, 동화 중 첫 손에 꼽힌 것일 것이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나니아 연대기>는 ‘동화는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사실을 선언한다. 다른 한 편 환상 동화가 아이들에게 인생에 대한 거짓된 개념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에게 루이스는 정반대로 사실주의 문학이 읽는 이를 더 잘 속일 수 있다고 반박하면서 이과 같이 옹호한다. “매혹적인 숲에 대한 한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에 실재의 숲을 싫어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읽음으로써 모든 실재의 숲이 조금 더 매혹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한 편의 신화이기도 하다. <문학비평에서의 실험>에서 루이스는 신화에 대해 새롭게 정의하는데, 루이스가 정의한 신화는 문학의 형식을 빌리지 않을 때에도(대부분의 신화가 문학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그 자체적으로 가치가 있는 특수한 이야기의 유형을 뜻한다. 이러한 신화적인 플롯의 한 예로 그는 <반지의 제왕>의 한 부분인 ‘로스로리엔 숲’에 대한 플롯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나니아 연대기> 그 자체가 놀라운 신화다. 이 글이야 말로 동화적 어투에 숨겨진 문학적 가치를 신화적인 플롯으로 드러내는 걸작 중에 하나인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이 글이 신화적 플롯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한 가지 열쇠가 될 수 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더 수준 높은 재미를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비법일 수 있다. 아무리 이야기가 잘 짜여지고, 긴박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숨조차 쉬지 못하게 한다 해도 획득할 수 없는 내적 가치가 이 작품의 기저에서 작품 전체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수사적 표현에 대해 의심을 품고 아주 세밀한 대조를 펼친다면 꼬투리가 잡힐 가능성도 있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문학 작품에 대해 똑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없는 것이 자명한데 그럴 가능성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7연작의 마지막 권인 <최후의 대결>의 맨 마지막을 인용함으로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그 이후부터 일어난 일들은 너무나도 훌륭하고 아름다워서 나로서는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모든 이야기의 끝이며, 우리가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들 모두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것이 진짜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었다. 우리 세계에서 보냈던 그들의 삶과 나니아에서의 모든 모험은 책 겉장에 적혀 있는 제목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드디어 그들은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읽지 못한 위대한 이야기의 첫 장을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그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항상 새로운 장이 그 이전 장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니아 연대기 합본 p.1057>




지금까지의 모험은 표지에 불과했다, 이제 위대한 이야기의 첫 장을 시작하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장이 그 이전 장보다 더 나은(better) 이야기일 것이다! 이러한 선언이 립서비스가 되느냐, 독자들의 가슴을 더욱 뛰게 하느냐는 것은 “표지에 불과하다”고 선언한 지금까지의 모험이 독자들을 얼마나 즐겁게 했느냐는 것에 비례하여 다른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읽는 순간 너무나 가슴이 뛰어서, 나 자신이 순식간에 신화 속으로 뛰쳐 들어가는 것과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다. 빼어난 문학 작품이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고, 거기에 더해 플롯 자체로 가치 있는 신화적 가치를 획득한 나니아 연대기. 이러한 감동이 모든 독자를 찾아갈 것이라고 감히 약속할 수는 없지만, C.S.루이스가 <문학비평에서의 실험>에서 선언한대로 문학 작품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문학의 수용자’들에게 – 그리고 순수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 감히 이렇게 외친다. 지금까지의 당신의 삶은 표지에 불과했다고. 아슬란을 만난 당신에게 늘 새로운 삶이 그 이전 삶보다 더 나은 ‘진정한 신화’가 될 것이라고!




[인상깊은구절]


"내가 너희를 부르지 않았다면 너희도 나를 부르지 않았을 거다." <은 의자> p.771


"이 곳이 진정한 내 땅입니다!" <최후의 대결> p.1047


 


 


이 글은 필자가 2005년 12월 14일에 Yes24에 올렸던 나니아 연대기 서평입니다. 우수서평에 선정되었던 기억이 있군요. 오늘 업데이트는 이 글로 대신할까 합니다.^^


 






 



 


나니아 연대기 제1권 "사자와 마녀와 옷장" 오디오북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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