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EBS에서 방영했던 로큰롤의 역사에 관한 다큐에서 '아이돌스타'라고 하기엔 약간 나이들어보이는(그리고 엘비스에 비하면 미남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백인사내가 광적인 몸짓으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건반을 부서지도록 내리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발로 치고 뒤로 돌아서 치는 등 묘기대행진에 가까운 연주를 펼치는 그 가수의 이름은 '제리 리 루이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한때 블루스에서 로큰롤로 이어지는 1-4-5도 12소절 류의 단순하고 신나는 음악을 미친듯이 좋아해서 빌 헤일리,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 등과 함께 이사람의 음반도 꽤 열심히 듣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는 보수적인 기성세대들이 '악마의 음악'이라며 금기시했던 흑인음악의 매력을 로큰롤이라는 장르로 녹여내어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제리 리 루이스의 짧은 전성기를 피상적으로 나열해 보여준다. 도어즈나 벨벳 골드마인처럼 록스타에 대해 심각한 시선을 들이대는 영화들과는 달리 제리의 격정적이고 본능에 충실했던 삶과 음악을 솔직하게 보여주는데 주력하는 이 영화는 그것 때문에 다소 가볍게 보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더없이 멋지게 제리 리 루이스를 스크린 속으로 불러낸 데니스 퀘이드의 연기만으로도 인상적인 록음악 영화로 기억될 법 하다. 당시 18세였던 위노나 라이더는 더없이 귀엽고 풋풋하다.
블루스, 델타, 미시시피, 멤피스, 로버트 존슨... 뭐 이따위 촌스러운 단어를 들으면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리고 신비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괴상한 취향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에겐 영화 초반 어린 제리가 흑인들의 클럽을 엿보며 '죄 많은 음악'에 탐닉하게 되는 장면에서 묘한 감동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이 장면이 감동적이었다면 Crossroads 오프닝의 로버트 존슨 레코딩장면이나 Blues Brothers에서 John Lee Hooker의 시장통 길거리 공연장면도 반드시! 챙겨보시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테니...
하나 더! 블루스 음악 팬이라면 영화 중간 반가운 얼굴을 하나 만날 수 있다. Fabulous Thunderbirds의 기타리스트였고 이후 멋드러진 솔로앨범들을 꾸준히 내놓으며 맛깔스러운 블루스기타의 진수를 들려주고 있는 명인중의 명인 Jimmie Vaughan이 제리 리 루이스의 밴드 멤버로 출연한다. 7년 전 처음 듣자마자 '뻑가서'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연주자라 반갑기가 서울역에 그지없다. 동생(헬기사고로 사망한 명 기타리스트 Stevie Ray Vaughan)과는 달리 능글맞은 느끼미남 스타일인데다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50년대 헤어스타일을 고집해온 미본이형인지라 영화 속 모습이 무척이나 잘 어울려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