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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커피빈이 있는 거리 민우와 미미가 끊임없이

박재영 |2007.10.28 21:19
조회 28 |추천 0

 

1. 커피빈이 있는 거리

 

 민우와 미미가 끊임없이 배회하는 장소. 11년 전 8월 20일 미미와 민우가 만나기로 했던 장소인 듯.   

폭우가 쏟아지고, 민우는 오지 않는 미미를 기다리며 커피샵에 앉아 있습니다.
민우와 미미가 왜 그 장소를 계속해서 배회하는지 알 수 있음.

 

 

 

 

2. 전화벨 소리

 

 이 영화에서 전화벨은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현실과 꿈의 세계를 구분하는 역할입니다.
루팡바에서 미미와 처음으로 만났을 때 중간중간 전화벨 소리가 계속 들리죠. 민우가 꿈을 꾸고 있으며, 현실세계에서는 은혜가 민우에게 연락을 계속 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나중에 은혜의 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꿈의 세계에 있던 민우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전화벨 소리는 다릅니다. 짐싸들고 뛰쳐 나가려고 하는 은혜를 민우가 끌어 안고 있을 때,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미미에게 전화가 걸려 옵니다. 이 장면에서의 전화벨 소리는 현실이 아니라 잃어버린 기억 저편의 소리이자 과거의 소리입니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꿈, 기억과 망각의 기가 막힌 반전입니다.

 

이명세 감독은 이처럼 고정된 시각으로 사물을 놓아두지를 않더군요. 정말 감탄했습니다.

 

 

 

 

3. 루팡 바


루팡바 지배인이 이렇게 얘기하죠. 11년 전 8월 20일 일요일 바를 오픈했고 그날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고.
루팡바는 미미의 죽음과 동시에 탄생한 가게입니다.

11년간 죽었지만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무의식인 채로 이승에 남아있던 미미의 영혼은 어느날 깨어납니다. 자신이 죽은 것도 모르는 기억상실인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민우를 사랑했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민우가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렸듯 미미의 기억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과 이름까지도.
루팡바에서의 첫 만남때 민우가 미미의 이름을 물어봤을 때 그녀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미미 자신도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민우가 잃어버린 과거를 하나씩 찾아가면서 미미의 기억도 돌아오게 됩니다.

 

결국 민우의 영혼과 미미의 의식은 문과 같아서, 민우가 기억의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미미 또한 문을 열 수가 없는 겁니다.

따라서 미미의 영혼을 정화시켜서 죽음의 나라로 데려가려고 한다면 민우 또한 기억을 되찾아야만 하기에 민우와 미미와의 만남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장소가 바로 루팡바라고 생각합니다.

 

루팡바로 들어가는 입구는 거울. 민우와 미미가 거울을 통해서 루팡바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몇 차례나 영화에서 나옵니다. 루팡바는 결국 거울 이면의 세계,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현실 이면의 세계인 동시에 우리의 의식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망각, 혹은 무의식의 세계라는 해석이 가능한 거죠.


덧붙여서 마지막으로 민우가 루팡바를 찾아갔을 때 루팡바의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미미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인지했으며 민우의 곁을 떠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미미의 영혼은 이미 정화되고 있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4. 8월 20일 일요일


이 영화에서 8월 20일 일요일은 세 번 나옵니다.
미미와 민우가 첫 데이트를 한 날이며 미미가 죽은 날인 동시에 민우와 미미가 루팡바에서 재회한 날이기도 합니다.
1년이 365일인 현실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꿈 혹은 망각의 민우와 미미의 세계에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들의 모든 만남과 헤어짐은 바로 그 날 8월 20일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민우가 애써 지워버렸던 그 기억이 머물고 있는 시간은 언제나 8월 20일 일요일입니다.

현재의 민우는 성인이 되었고 사회적인 기반도 탄탄하게 갖춘, 남들이 보기엔 더할 나위없이 완벽해 보이지만 여전히 그의 무의식은 11년전 8월 20일 일요일인 그 시간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민우는 성인인 동시에 소년이며 완벽해 보이지만 불완전한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실의 시간이 아니라 그들 무의식 속의 시간입니다. 따라서 8월 20일 일요일은 세번 뿐 아니라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 이루어지는 횟수만큼 반복될 것입니다.

 

 

 

5. 엄브렐러맨 혹은 루팡바 주인

 

별로 할 얘기는 없습니다. 다들 아시고 계실 테니까요. 저승사자입니다.

하지만 엄브렐러맨의 경우 저항하는 미미를 힘으로라도 끌고 가려고 하는 반면 루팡바의 주인은 미미의 기억을 끌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민우가 두번째로 루팡바에 찾아가서 동행한 사람에 대해 묻자 그는 함구합니다. 아마도 민우 스스로 생각해내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미미의 영혼을 정화시켜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6. 골목

 

이명세 감독의 인터뷰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세상의 모든 골목은 서로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많았던지라 너무도 공감했습니다. ^^
과연 영화에서 골목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현실세계의 골목에서 루팡바가 존재하는 골목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거울이라는 매개체를 거쳐서이긴 하지만.

 

골목의 역할은 다중적입니다. 현실의 골목도 꿈속의 골목도 될 수 있지만, 골목은 민우의 혼란스러운 현재의 상태와 정신 상태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혼란스러움 가운데 비밀의 무의식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민우가 미미를 만났던 루팡바를 찾아서 골목을 헤매는 것, 미미 혹은 자신의 무의식을 뒤쫓는 것은 모두 민우의 의식의 혼란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7. 미미 혹은 은혜

 

미미와 은혜가 겹치는 장면은 영화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은혜가 집을 나가려고 했던 장면.
미미와 은혜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그들은 같은 내용의 얘기를 합니다.

 

그 전에도 그런 장면이 있죠. 유명한 "담배연기처럼 머리 속 얘기를 뿜어내 봐"라고.
미미가 한 이 말을 그대로 은혜가 반복합니다.

 

바닷가 장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민우와 미미가 나란히 앉아 있던 모습과 마지막의 신혼여행지에서 민우와 은혜가 앉아있는 장면. 묘하게 오버랩되더군요.

민우가 미미와 함께 보던 광경은 일몰입니다. 반면에 은혜와 보던 광경은 더할 나위없이 청명한 날의 푸른 바다입니다.
미미의 영혼이 정화되어 떠났다는 것이겠지만, 어쩌면 은혜는 현재의 미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8. 미미

 

미미가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민우의 곁을 맴돌았던 이유는... 민우가 자신에 대한 기억을 묻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미미는 민우에게 꼭 해야할 말이 있었고 그것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우의 곁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억을 잃은 미미는 민우와의 만남, 저승사자들과의 실랑이 끝에 골목 바깥쪽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하지만 미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미미는 잠이 든 민우를 꿈으로 불러내려고 하지만 불러낼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죽었으며 그는 살아있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그녀는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민우의 아파트에서 미미가 전화를 받고 나간 그 곳은 11년전의 비오는 거리였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목격하고 받아들인 미미는 마침내 떠날 결심을 하게됩니다.
민우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민우에게 함으로써 비로소 그녀의 영혼은 정화됩니다.

 

 

 

 

8. 두 사람의 민우

 

종반부에서 민우의 아파트에 소년 민우가 걸어 들어옵니다. 그리고 현재의 민우도 들어옵니다.
소년 민우와 성인 민우는 엇갈리고 겹치기를 반복하면서 커튼이 활짝 젖혀진 창 앞에서 마침내 하나가 됩니다.

이것은 11년 전 8월 20일이라는 과거에 머물러 있던 무의식의 민우와 현실 세계의 민우와의 합일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것 같지만 불완전했던 민우가 무의식 저편에 머물러 있던 자신을 현실 세계로 데려와서 하나가 됩니다. 이제 비로소 민우는 성인이 된 것이죠.

 

성인식을 치른 민우에게 이제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무의식 속에 묻었던 소중했던 첫사랑 미미를 보내줄 준비가.
결국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민우는 미미를 보내줍니다.

 

 

 


9. 사라진 성냥

 

성냥은 꿈과 현실을 넘나든 사물입니다.
꿈속에서 가져온 물건인 성냥은 현실로도 그대로 존재했고, 미미를 추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은혜로 하여금 민우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종반부에서 사라진 서랍속의 물건들... 성냥과 수표, 푸로작.
민우의 물음에 대한 은혜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성냥? 무슨 성냥?"

 

전혀 모른다는 듯한 은혜의 반응으로 인해 100분남짓 흘러왔던 이야기가 전부 민우의 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민우의 첫사랑 미미, 그녀와의 꿈속에서의 만남. 미미 혹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한 추적 등 모든 것이 꿈일 수도 있다는 것.

 

그렇지만.... 제가 목격한 결말은 다르더군요.

 

 

 


10. 민우의 컴퓨터

 

영화내내 민우는 풀리지 않는 소설을 쓰기 위해 컴퓨터와 씨름을 합니다.
썼다가는 모두 지우고 다시 써내려가다가 또 지우고...
그러다 모든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민우는 마침내 미친듯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려는 것은 영화 끝부분의 장면입니다.

민우는 평소와 다름없이 컴퓨터에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나레이션과 함께.

 

보셨습니까? 컴퓨터 화면에 비친 글들은 전부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기록되고 있었습니다.
마치 거울 속의 모습인 것 처럼.

 

이 영화에서 거울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 이것은 꿈 혹은 소설 속의 장면입니다.
즉 미미를 쫓는 민우와 은혜의 이야기가 소설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는 민우 자신이 오히려 꿈이고 소설일 수도 있다는 것.
호접지몽이 불현듯 떠오르더군요.

 

 

출처 - 네이버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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