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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ja Boy

박호성 |2007.11.17 01:37
조회 136 |추천 0


출생                   1990년 시카고 출생

 

멤버                        Soulja Boy

 

장르/스타일          Southern Rap, Snap-Dance

 

포지션                 랩, 프로듀싱

 

소속                   Collipark Music

 

데뷔앨범              2007년 [souljaboytellem.Com]

 

웹사이트              http://www.souljahboytellem.com

 

2007년 힙합 씬 최고의 이슈는 단연, 칸예 웨스트(Kanye West)와 피프티 센트(50 Cent)의 9.11 매치다. 두 힙합거물의 대결은 힙합 씬을 넘어 팝 음악계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힙합테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글 차트에서만큼은 정상의 자리를 굳게 지킨 한 뮤지션이 있다. 그의 이름은 솔져 보이(Soulja Boy Tellem), 올해 나이 열여섯의 젊은 피다.

신세대답게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네임밸류를 쌓은 것으로 유명한 솔져 보이는 1990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6살이 되던 해, 바람의 도시를 떠나 애틀랜타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몇 년 후, 이곳에서 자신에게 처음으로 비트를 만드는 법과 레코딩 기술을 가르쳐준 영 퀀(Young Kwon)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음악과 인연이 시작된다.

“그는 제가 가장 처음으로 녹음한 트랙을 만들어준 장본인이에요. 게다가 그는 자신의 집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스냅 비트(Snap Beat)에 대한 것을 가르쳐주기도 했죠.”

영 퀀과의 만남을 계기로 솔져 보이는 비트 만들기에 재미를 붙였고 점점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의 한계와 직면해야만 했다. 부모가 이혼을 하고 어머니와 생활하던 당시의 집안형편이 넉넉지 않아 음악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한 컴퓨터조차 구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의 벽이 그의 음악에 대한 욕구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결국, 14살이 되던 해, 솔져 보이는 자신의 꿈을 좇아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던 아버지와 함께 미시시피로 거처를 옮긴다. 아버지는 아들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든든한 후원을 뒤에 업은 아들은 꾸준히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직접 만든 음악과 촬영한 댄스 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 어린 힙합퍼에게 미시시피는 기회의 땅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진 그의 음악과 영상이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제가 미시시피로 가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컴퓨터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인터넷을 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게다가 댄스 영상을 촬영할 수도 없었겠죠.”

그는 학교 친구인 애럽(Arab)과 함께 The 30/30 Boys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이트인 www.souljahboytellem.com을 비롯한 여러 웹사이트를 통해 계속해서 결과물을 공개했고 반응은 점점 폭발적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한 솔져 보이는 2004년에 다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낸 애틀랜타로 날아간다. 본격적인 프로 뮤지션으로서 커리어를 쌓기 위한 곳으로 애틀랜타를 택한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음악산업계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라이브 공연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솔져 보이의 첫 라이브 무대는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미성년자 나이트클럽에서였다. 이 젊은 힙합퍼는 자신의 생애 첫 라이브 무대가 열렸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무대에 올라갔을 때 관중들은 아주 열광적인 상태였어요. 아주 멋진 쇼가 계속됐는데 혹시라도 제가 이 분위기를 망칠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죠. 하지만, 결국, 전 침착하게 성공적인 공연을 마칠 수 있었어요. 제가 해낸 거예요.”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솔져 보이에게는 자신에 대한 인지도 상승 외에도 또 하나의 놀랄만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애틀랜타의 히트 프로듀서 미스터 콜리팍(Mr. Collipark)의 러브콜이었다. 잉 얭 트윈즈(Ying Yang Twins), 버바 스팍스(Bubba Sparxxx), 영 지지(Young Jeezy) 등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한 미스터 콜리팍은 솔져 보이의 재능을 보고 한눈에 반해 인터스코프 레코드(Interscope Records) 산하의 자신의 레이블인 콜리팍스 뮤직(Collipark Music)의 식구로 맞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미스터 콜리팍의 사랑 속에서 발표한 첫 번째 공식 싱글 "Crank Dat (Soulja Boy)"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비롯한 에어플레이 차트 1위, 랩 싱글 차트 1위 등 주요부문 중 무려 3개 부문의 정상을 차지하는 대박을 터트리면서 솔져 보이는 2007년 힙합 씬의 마지막을 장식할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 또한, 10월 2일에는 드디어 그의 데뷔작 [souljaboytellem.Com]이 발표됐다.

“그의 재능이 16살의 것이라고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쇼와 음악을 통해 관중과 호흡하는 법을 알고 자신의 모든 음악을 프로듀싱할 줄 아는 능력을 갖췄다.” - Mr. Collipark

옛날 아버지의 조력으로 음악계에 입문할 수 있었던 솔져 보이는 이번에는 미스터 콜리팍이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등에 업고 거대한 팝 시장에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영상은 여전히 또래 팬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으며, 마이스페이스 페이지는 하루 평균 100만 명 이상이 접속하여 페이지에 렉이 걸리기 일쑤다. 혹자는 어린 나이와 인터넷을 통한 데뷔라는 것 때문에 단번에 그의 존재를 여느 아이돌과 동일선상에 놓아버릴지도 모르겠다. 아직 음악적 깊이가 얼마만큼인가를 논하기에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어린 녀석이 대단한데.”라며 나이를 걸고 넘어가기에는 그의 재능이 참으로 만만치 않다. 이번 데뷔 앨범에서도 일부 프로듀싱을 담당했을 정도로 비트를 만드는 감각이나 능력, 특히, 훅을 만드는 능력에서 솔져 보이는 많은 이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또한, 어쩌다가 재미로 인터넷에 올린 영상이 인기를 얻어서 순식간에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 장차 뮤지션이 되기 위한 마케팅 툴로 UCC라는 매체를 이용했다는 부분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미스터 콜리팍은 이를 보고 솔져 보이의 사업가로서 재질도 높이 평했다).  

어쩌면, UCC를 통해 스타가 된 첫 번째 힙합 뮤지션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이 재능 있는 젊은 힙합퍼의 미래를 지켜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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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그랑땡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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