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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 / 붘 리뷰

이양자 |2007.11.21 17:33
조회 679 |추천 0

 

 

               정조, 개혁군주 아니라 아마추어였다고?                       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 
          이한우 지음|해냄|460쪽|1만3000원  

 

 

 

 

“왕으로 말하면 겉으로는 도량이 넓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폭넓게 사람을 쓰지 못한 것이 몇몇 암군(暗君)에 비견될 만하다. 찬란한 문장은 세종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지만, 다변(多辯)과 다작(多作)으로 임금이 칭찬을 받아야 할 일은 없다.”

TV드라마 ‘이산’ 덕분에 ‘정조’라는 이름이 인터넷 검색 1, 2위를 다투는 요즘, 그를 암군이요 “폭군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비판서가 나와 비상한 관심을 끈다. 11세 때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극한 체험이 정조로 하여금 공(公)보다는 사(私)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결코 짧지 않은 24년 집권기간을 불필요한 쟁론과 갈등으로 허비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비판에 대해 정조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추측건대 그것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로 시작될 것이다. (논쟁을 즐겼던 정조는 상대방에 대해 일단 부정하는 것으로 말을 시작하곤 했다.) 우선, 비극적인 성장과정으로 인해 포용의 정치보다는 불신의 정치로 나갔다는 주장에 대해서 정조는 “그렇다면 내가 중용한 남인과 소론의 신하들은 뭔가”라고 되물을 것이다. “그가 나를 저버리는 한이 있어도 결코 그를 버리지 않겠다”는 신뢰로 수원화성을 건설하게 한 채제공과 정약용의 존재는 또 무언가라고 반박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조는 자신이 “시대와 불화”했으며, 백성들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여기지 않은 군주였다는 비판에 대해 상당히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다. 쌀 한 됫박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허다한 데도, 어느 고을의 수령직은 얼마면 살 수 있고 또 어느 지역의 땅값 시세는 어떤가에만 관심 있는 기득세력들과 화락(和樂)하면서 지내야 했단 말인가. “그대는 신해통공이라는 경제개혁으로 백성들의 씀씀이가 풍족해졌다는 기록이나, 상언 격쟁의 길을 넓혀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했던 수많은 사례에 대해서는 왜 애써 외면하는가”라고 꾸짖지는 않을까.
 태종에서 시작해 세종·성종·선조·숙종을 거쳐 정조에 이르러 조선왕조 군주열전의 막을 내린다는 저자에 따르면, ‘정조실록’은 다른 어떤 시대보다 읽어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정조의 말이 워낙 현란했기 때문에, 비판적 해독을 거듭하면서 읽어야 했다고 한다. 그는 또 정조가 죽은 지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여기저기서 정조를 이야기하는 것이 “착잡하다”고 했다. 정조의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이야기들도 결국 ‘외화내빈’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저자가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요즘 사람들이 정조를 읽어내는 방식의 변화다. 과거의 정조가 ‘독살설’로 집약되는 정치적 희생양의 대표격이었다면, 근래 사극이나 소설에서 부활하는 정조는 주로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여기서 정조는 놀라운 학식으로 좌중을 설복시키는 지적 지도자로 등장하는가 하면, 천부적인 활솜씨를 지닌 무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반대파들의 음해와 도전을 주도면밀하게 극복해 가는 탁월한 CEO인가하면, 어릴 적 우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완소남’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한마디로 정조는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대신 이루어주는 ‘영웅의 아이콘’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방식의 정조 호명(呼名)을 반대한다. 정치가는 ‘결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의 사후 곧바로 이어지는 국운의 쇠락을 감추어 두고, 정조 개인의 탁월함만을 강조하는 것은 역사기만이라는 것이다. “치국(治國)의 측면에서 보면 아마추어리즘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임금이었는데, 그를 성공한 개혁군주로 치장하는 것도 한국정치의 장래를 위해서 결코 좋지 않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정조의 영웅신화’를 깨부수는 저자의 예리하고 거친 도전이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정치가 정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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