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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의 다이아몬드

신문섭 |2007.12.01 22:14
조회 231 |추천 2


저주의 다이아몬드 '호프 다이아몬드'



루이 14세의 호프 다이아몬드


팬던트에 장식되어 있는 45.52캐럿짜리 '호프 다이아몬드'는 한때 루이 14세가 소유하였으며 공식적으로 '왕관의 푸른 다이아몬드'라고 불렀다. 이 다이아몬드는 소유자가 불행한 죽음을 맞는다고 알려져 있으며 어느 소유자는 낙마하여 죽었다고 한다. 1830년 은행가 호프가 이를 구입하여 그의 이름을 따르게 되었다. 호프가 사람들은 모두 빈곤으로 사망했으며 그 이후의 소유자인 맥린에게도 유사한 불운이 뒤따랐다. 1947년에 워싱턴의 보석상 윈스턴이 구입하여 10년 정도 소장하다가 1958년 스미소니안 박물관에 기증하여 일반인에게 전시되고 있다.



BLUE HOPE * 블루 호프 (112 캐럿)


주인을 해치는 호프다이아몬드

옛날 인도의 황무지를 경작하던 농부의 호미 끝에 별안간 청색의 투명한 돌이 부닥쳤다. 이 돌은 채광 후 인도를 침입해 들어온 페르시아군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것을 빼앗은 총독은 이 청색의 돌을 왕에게 헌납하였다. 그 뒤 그 총독은 도둑들에 의해서 살해되었고 왕도 반란군에 의해서 처형됨으로써 불길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들어와 이 청색의 다이아몬드는 인도에서 프랑스의 보석상인 타베르니에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타베르니에는 파리의 왕실로 들어가 "이것이야말로 제왕을 위한 다이아몬드입니다."는 말과 함께 '태양의 왕'인 루이 14세에게 이 다이아몬드를 팔았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왕은 그에게 남작 지위를 내렸다. 그러나 저주는 계속되었다. 타베르니에는 러시아 여행중 이리에게 잡혀 먹혔고 루이14세는 천연두에 걸려 운명을 달리했다. 이 다이아몬드를 이어받은 루이 16세도 역시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여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후 이 불길한 청색 다이아몬드의 행방이 묘연해 지자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1830년 한 경매장에 이 보석이 나타났다. 한 눈에 반해버린 은행가 헨리 필립 호프가 9만 달러에 사들여 '호프 다이아몬드'라고 명명했다. 당시 호프가(家)는 대부호로써 영국의 명문이었는데 이 돌을 수중에 넣은 후부터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주인은 경마하다 떨어져 사망했고 부인이 정부와 놀아나는 사이에 1900년 은행도 파산했다. 그 후에 호프다이아몬드는 뉴욕의 거래상, 터키의 외교관, 프랑스의 다이아몬드 전문가 등을 거쳐 워싱턴의 유명인사인 맥린부인이 1911년에 구입하였다. 구입 후에 9살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남편은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렸으며 이혼 후 정신병으로 죽었다. 이 같은 불행한 연속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맥린부인은 이에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중 상이 병사의 병원을 위문하면서 남은 여생을 자선활동에 쏟았으며 1947년 생을 마쳤다고 한다. 사망한지 2년 후 해리 윈스턴은 그 호프를 사서 자선 모금 운동에 들어갔고 1958년 10월 10일 그는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이 보석을 기증했다. 어떤 이들은 1958년 미국에서 일어난 재난이 바로 호프 다이아몬드 때문이라고 하여 호프 다이아몬드를 제거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 호프는 45.52캐럿이고 자외선을 쪼이면 신비스럽게 청색에서 빨강색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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