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 동창과 만나는 H는 전자의 경우다. H는 거의 매일 야구 모자를 쓰고(그래도 야구 모자가 하나밖에 없는 건 아니었다) 헐렁한 면 티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다니는 남자친구가 통 못마땅했다. 더군다나 그녀는 스튜어디스라 넉넉한 티셔츠보다 몸에 붙는 블라우스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여자다.
아무리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더라도 데이트 초창기엔 차려 입고 포크와 나이프만 쓰는 레스토랑에도 가고 싶은 건데 그걸 못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결국, 그 둘은 시시콜콜한 이유로 다투다 헤어졌다.
C에게 있어 그나마 다행인 건 남자친구가 옷을 잘 입고 싶어한다는 거였다.
C는 해외 여행을 갈 때마다 남자친구의 옷을 샀다. 질 샌더나 프라다를 사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자라나 H&M을 애용했다.
그녀의 옷은 줄이고 트렁크의 반은 족히 채울 정도로 남자옷만 한보따리씩 샀다. 홍콩 자라 매장의 직원이 그녀에게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6개월쯤 지나자 C는 남자친구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샀다며 입고 나온 티셔츠를 보곤 자기 눈을 의심했다. 웬만한 감각이 아니면 소화하지 못하는 갈색과 하늘색을 레이어드한 것이 아닌가.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C의 남자친구는 어느 새 스타일에 눈을 떠 구하기도 힘들다는 한정판 스니커즈를 외국 사이트까지 뒤져 주문했고 안경도 하나씩 모으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스무 개나 갖추었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안경을 고이 모셔둘 가죽 케이스까지 주문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지난 모임에 청첩장을 들고 온 C는 그가 선물한 클러치를 자랑하면서 남자친구가 고집만 세지 않으면 스타일을 바꿔주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할부로 산 카드 청구서가 날아오는 날만큼은 남자친구가 밉지만. 하지만 남자가 여자보다 스타일이 좋고 옷을 많이 아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L의 남자친구는 수트나 셔츠는 맞춤만 입는, 바느질 하나라도 눈에 거슬리면 몸에 걸치지도 않는 그런 남자다. 그는 L이 입은 셔츠 옷깃의 박음질만 보고 정확하게 어느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인지를 알아 맞춘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아닌 건 어느 나라에서 구입한 건지 안다. 게다가 만날 때마다 처음 본 수트와 셔츠를 입었다. 얼핏 들으니 수트가 몇 십 벌은 된다고 했다. L은 그가 옷에 타고난 감각을 가졌다는 걸 눈치챈 다음부터 데이트 전날 잠도 설쳐가며 다음날 입을 옷을 고르고 골랐다.
L도 친구들 사이에선 쇼핑 참 잘한다고 인정받는 감각의 소유자였는데 언젠가부터 옷을 입는 게 그녀에게 스트레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냈다.
맞불 작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그가 입는 옷에 대해 까다롭게 굴면 그도 스트레스를 받다 제풀에 지치겠지. 그 작전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둘은 내일 무얼 입을지 슬쩍 물어보곤 드러나지 않는 커플룩을 변주하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를 만날 때 패션 스타일을 보는 건 내 남자가 남달랐으면 하는 기대 때문이다. 그런 타별한 사람이 나와 교제한다면 나까지 특별하게 느껴지니까.
GQ
에디터_이정윤
Illustration_Son Jung 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