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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사랑에 대한 그리움들이 따뜻하게 묻어 나오는 곳

바다와 술잔 |2003.02.16 20:51
조회 392 |추천 0

"비가 그친 뒤의 하늘은 금방 세수하고 나온 누이의 얼굴처럼 말가니 티끌 하나 없습니다
한참을 하늘에 눈을 줘 봐도 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 열심히 허공에 그려 봅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님이 그립습니다."

 

얼마전 메일에 올라온 글입니다. 그리움에 목말라 살아간다는 의미를 느끼고 싶어 따뜻한 회답을 보내 줄 것 같은 저에게 무작정 보낸다고 하더군요.
글의 뒤에는 브람스의 "바다 여행'이 굵은 바리톤으로 낮게 흐르고 있었지요. 브람스에 취해있다가 문득 바다에 서고 싶었답니다.
아 나도 바닷가에 가서 파도 밀리는 모래위에 편지를 쓰자
우표 값도 소인을 찍을 필요도 없는 마음의 편지
보낼 곳도 받을 사람도 없는 그리움의 편지
파도가 씻어버리면 다시 쓰고 한 번 두 번 열 번 편지를 쓰자.

 

예전처럼 시간에 그렇게 쪼들리지는 않아서 책을 읽을 시간도 음악을 가까이 할 시간도 넉넉한데 무엇엔가 쫓기는 듯한 초조는 어디서 밀려오는지 일상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 불안이 나의 등을 밀어 바다로 나가게 했습니다.
바람처럼 달려드는 파도의 향기를 맡으려 자전거를 타고 나의 바다로 달려갔습니다.

나의 바다. 우리 집에서 1200m 떨어진 곳 그곳에 나의 바다가 펼 쳐 진답니다.

오리 백사장 넓게 펼쳐진 뒤로 방풍송림 풋풋한 바닷바람 막아주는 나의 바다. 펼쳐진 명사십리 비록 해당화 사라졌다 해도 해당화만큼이나 고운 연인들의 꽃이 피어난답니다. 소록소록 걸어가며 나누는 그들 연인들이 나누는 사랑의 밀어가 내 귀를 간질이며 파도 훑어가는 자갈소리에 곱게 묻어나옵니다. 앉아 있기도 하고 모래 깔고 누워 구름 흘러가는 겨울 하늘에 그들의 꿈을 그리고 있겠지요. 물수제비 띄우는 저 아름다운 모습이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이유는 핍진한 삶에 대한 그리움, 내 젊은 날 사랑의 금가루 묻어나는 따뜻한 그리움들이 파도가 뿌리는 갯바람 속에 아름답게 묻어나오기 때문이겠지요.

 

아름다움이란 추한 것 이전의 상태가 아닌가요. 지금의 내 모습은 추한 것인가, 아름다운 것 인가를 푸른 바다 앞에 서서 반문해 봅니다. 저 아름다운 연인들의 도란거림이 내 마음을 한 조각 베어가는군요. 살아갈수록 깊어지는 게 인생이라더니 깊어갈수록 아파가는 게 사랑의 그리움임을 바다 앞에서 깨닫게 됩니다.

 

선창에는 생존의 바다에서 돌아온 배들이 작은 포구로 그들의 삶을 지고 돌아옵니다. 젊은 부부 어부가 살아 팔딱이는 생선을 내리고 있군요. 주인을 마중 나온 못생긴 삽살개가 꼬리를 치며 졸망 거립니다.
어슬픈 지폐 한 장에 생명의 바다를 담아온 삶의 꿈 한 광주리를 가득 받아들고 내 자전거에 그들 어부의 삶을 옮겨 담았습니다. 오늘은 서투르게 다듬은 솜씨로 회 한 점 빚어내어 주정뱅이친구 불러  바다의 풍성함을 입 안 가득 담아 보렵니다. 깨가 서 말이라는 철아닌 전어 몇 마리도 있습니다.

 

바다 앞에서 위엄과 권위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따로 필요할 때가 있겠지요. 바다는 당신 앞에 서있는 모든이의 마음을 순수로 변하게 하는 요술을 부린답니다. 차별 없는 사랑과 우정의 부드러움을 바다는 마음의 파도를 일으켜 쓰다듬어 주지요.

 

바닷가에 서면 수평선 한 아름 가득 찬 쪽빛 하늘에 먼저 그리움을 실어 보냅니다.
끝 모를 심연으로 우수에 가득 찬 내 마음을 저멀리 깊은 곳으로 던져 버립니다.
뱃고동 소리에 덕지덕지 앉은 시련의 미련과 토해내지 못 한 한 많은 울분을 아울러 뿌려 봅니다.
등대 불 지펴지면 긴 줄기 불빛에 무임승차하여 어린왕자를 만날까 미로의 별빛 속을 헤집어 다닐 것입니다.

 

바닷바람 . . .
도시의 수 많은 사연 뿌려진 매연의 대기를 훑어가는 산바람, 들바람, 강바람과는 다르답니다.
더욱이 바닷바람과는 정서가 다르지요.
산바람, 들바람, 강바람이 여자의 바람이라면 바닷바람은 남자의 웅휘한 바람이랍니다.

매연의 대기를 이 겨울 바닷바람으로 씻어내어 보렵니다. 사연 많은 가슴속의 매연도 있겠지요.

돌이킬 수 없는 일들 돌아갈 수 없는 일들, 지워져 가는 생각들, 지워지지 않는 생각의 편린들, 실타래처럼 뒤엉킨 인생의 붉은 눈물과 푸른 아픔으로 쌓여진 탑을 가슴에 말아 올리는 파도 앞에서 오지게 허물어 버립니다. 붉은 마음 푸른 마음, 지은죄 쌓인 정을 개끗하게 씻고 갑니다.

브람스가 더 아름답게 들리겟지요.

오늘 밤 꿈결에라도 바다 맑은 속을 하염없이 들여다 보렵니다.

이 글로 바다에 퐁당 빠지고 싶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님의 메일에 답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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