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는 오늘도 어김없이 지각을 했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가깝다고 해서 지각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개개인의 차이에 따라 더 많이 할 때도 있다. 철수가 그랬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을 믿고 늑장을 부리다가
지각을 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그랬다.
어김없이 지각이다.
걱정은 한가지 더 있다. 국어 문법에 서툰 철수를 눈여겨보셨는지,
담임 선생님은 유독 철수를 점찍어 혹독하게
국어 문법에 대해 질문하겠다고 단단히 벼르셨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준비했을까? 물론 아니다.
철수는 이상하게도 국어에 서툴렀다.
특히나 '읽기'는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진득하지 못한 성격 상, 철수는 어려움을 느끼면 금새 포기했다.
그래서 '읽기'는 금단의 영역으로 남았다.
그래서, 잠시 '땡땡이'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접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상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철수에게 남은 것은
오직 개근상이다.
그것마저 받지 못하면 나중에 졸업식에 참석할 얼굴이 서질 않는다.
어머니도 얼마나 실망하실까?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혼날 때 혼나더라도, 학교는 가고 봐야 한다.
철수가 학교에 가는 길에는 동사무소가 있다.
그 게시판에 가끔씩 동네의 중요한 문제가 달린 이야기들도 붙여져 있기에,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는 것도 목격하게 된다.
어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어두웠지만, 게시판에는 안좋은 이야기들이 자주 붙여진다.
굳이 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학교에 가니? 뭐,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학교에 지각할 일 따위는 없었다."
서둘러 뛰어가는 철수를 향해 이웃 노래방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뭔가 이상했지만,
노래방 아저씨가 철수를 이렇게 놀리는 일도 자주 있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확실히 이상했다.
숨이 몰아치는 것도 각오하고 허겁저겁 학교에 갔지만,
늘상 들려오는 친구들의 떠드는 소리와 뛰노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인가? 내가 잘못 알았나?"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교실 창문 속에는 선생님이 서 계셨으며,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어쨌든 오늘도 지각을 했다는 자책에 발소리를 죽이며
스르륵 교실로 들어갔다.
담임 선생님과 눈빛이 마주쳤다. 그런데….
"철수 왔니? 어서 네 자리로 가서 앉거라. 하마터면 너를 빼놓고
수업을 시작할 뻔 했구나."
어라? 이상했다.
화가 나신 얼굴로 철수를 야단치며
내일은 지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다짐을 꼭 들으려던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뿐일까? 학부모 참관 수업도 아닌데,
교실 뒤에는 동네 어른들이 엄숙하면서도 굳은 표정을 지으며 앉아계셨다.
우리 엄마도 오려나?
담임 선생님은 곧 교단에 올라가셨다.
부드럽지만 가라앉았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을 이어가신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이 내가 국어로 여러분들을 가르칠 수 있는 마지막 수업입니다.
이 시간 이후로 대한민국의 학교에서는 이제 영어로만 가르쳐야 한다는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 마지막 국어 수업을 부디 잘 들어주세요."
이럴수가. 그런 것이었구나. 그래서 동사무소의 게시판을 보신
어른들의 표정이 어두웠나 보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지목하신다. 교과서 읽기다. 물론, 나는 더듬거렸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나를 탓하지 않으신다.
"철수야, 잘 하진 못했지만 너를 야단치지는 않겠어.
네 마음도 이미 복잡할테니까.
너도 그렇지만 사람이란 '시간은 많으니까 내일 하겠다'고 미루길 좋아해.
하지만, 이젠 그럴수가 없어.
너만의 잘못이 아닌 셈이야. 우리 모두의 잘못이야."
담임 선생님은 그러시더니, 국어의 자랑스러움을 이야기하신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명확하며,
가장 확실한 언어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신다.
영어로 수업을 받을지라도 우리는 국어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마을 어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는 '말하기 듣기'와 '쓰기', 그리고 '읽기'를 배웠다.
그때였다. 동네에서 스피커에서 정오를 알리는 벨소리가 들리더니,
계단에서 장학사와 교육감들의 구두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말씀까지 더듬으신다.
"여러분, 여러분 나는…, 나는…."
결국, 담임 선생님은 칠판에 돌아서서 아주 크게 분필로 뭔가를 쓰셨다.
뭐였을까?
"English On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