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살리겠다는 미명하에 뭇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생명을 경시하는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성찰과 생명평화를 위한 도보순례가 4대 종단 성직자와 환경운동가, 문화 예술가, 일반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12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약 100일의 동안 한강하구에서부터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찾아 우리 안의 성장주의에 대해 참회하고 생명의 강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고 한다.
종교인들의 이번 도보순례가 새만금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처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경부운하 계획을 중단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머 삼보일배로 새만금방조제를 막을 수도 없었지만...
* 생명의 강은 http://www.saveriver.org/bbs/board.php?bo_table=html&wr_id=1
* 도보순례 일정 및 코스 http://www.saveriver.org/bbs/board.php?bo_table=html&wr_id=3
* 도보순례단 참가수칙 http://www.saveriver.org/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4
* 도보순례 홍보 배너 달기 http://www.saveriver.org/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8
* 도보순례 하루소식 위젯달기 http://www.saveriver.org/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17

암튼 이명박의 경부운하로 참 많은 사람들이 피곤해 하고 있다.
이제 그만 삽질해댔으면...
어떤 미친 놈들은 경부운하가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지 없는지 사전에 검토하기 위해서 경인운하를 우선 건설해야 한다는 소리를 지껄이기도 했다. 젠장할 이건 뭐병도 아니고. 경인운하는 경제적 타당성 없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처먹을껀지?
감사원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타당성 없다고 하니까, 네덜란드 DHV(MBC PD수첩에서 운하관련 인터뷰 하겠다고 하니까, 버선발로 나와 맞이한 한국을 막장개발에서 돈벌라고 길길이 날뛰는 십장생들)에 돈 처발라서 경제성 있다고 보고서 억지로 만들어내고...그 짓거리를 또 하려고 날뛰기 시작하는 꼴을 보니 기가찬다. 그냥 그런 놈들 굴포천에 수장시켜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 관련 기사 :
- [고뉴스]경인운하, '시험무대' 삼아 건설되나?
- [헤럴드생생뉴스]"대운하는 미래위해 반드시 착공해야 한다"
- [매일경제]일단 경인운하부터 해보자
- [한겨레]경인운하 사업,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 [민중의소리]"운하 추진하는 사람들 정신상태 의심스러워"
* 관련 글 :
- 건교부는 경인운하 사업에 대한 추진여부를 결정할 자격 없다!
- 경부운하도 모자라 '괴물' 경인운하 까지?
- 서울시의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과 되살아난 괴물 '경인운하'
- 대책없는 개발사업으로 쫓겨나는 서울시민, 645일째 거리농성
- 경인운하 사업개요 및 문제점
- 새만금, 천성산 그리고 다음은? 경인운하?
- 참여정부의 개발정책과 환경정책의 후퇴사례
- 굴포천 방수로 공사로 사라지는, 아늑한 농촌마을과 숲
* 참고자료 :
- 경인운하. 경부운하의 만남, 토건족들의 불륜
- [논평]한강 르네상스, 오시장 표 한강 파괴 계획
- 한강 르네상스, 여전히 한강 생태는 없다
덧. 그런데 순례에 참여한 단체와 성직자 중에 꼴사나운 이도 보인다. 누구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머리만 깍았지 욕심하나 버리지 못하고, 지역에서 환경단체 이름 이용해 팔아먹는 이 말이다. 암튼 1년간 있던 단체에서 나온 이유가 아직도 그대도 반복되고 있고, 아니 더 심각하다는 소식도 들려오니 참 난감할 뿐. 어떻게 저런 이들이 생명의 강을 모시겠다고 도보순례를 하고 환경운동의 얼굴마담을 하고 있는건지...참 한심하다. 역시나 기성 환경운동이건 종교인이건 참회와 성찰은 매번 하지만, 달라지는게 없는건 아닌지 싶다.
북한강 상류 강의 모습
생명의 산천과 미래를 지키기 위한 순례자들
어제 2008년 2월 12일, 막바지 추위가 유난했습니다. 이런 날 종교인들이 다시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경기도 김포 애기봉에서 시작했습니다. 애기봉은 임진강 한강 저 건너편 북녘 땅을 바라볼 수 있어서 유명한 곳입니다. 아마도 제게 마땅한 이미지라면 평화통일을 염원하러 이곳을 찾는 것일 겁니다. 그랬습니다. 네 편 내편 가르지 않고 남한과 북한을 하나로 이어주며 흐르는 강들처럼, 남북한 마음도 몸도 어서 그리 되게 해주십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골백번 애통하고 애절할 지경이었습니다만, 어제 거기 모인 종교인들은 저 도도한 강들이 영원히 민족의 생명과 평화의 강들로 흐르게 해달라고 염원했습니다. 대운하라는 신기루가, 경제만 살리면 뭐든 된다는 망령이 민족의 젖줄을 갈기갈기 유린할 참이기 때문입니다.
숭례문(崇禮門)이 불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빌딩숲과 자동차홍수 속에서 애처롭고 고립된 섬이었습니다. 일제가 붙여준 이름이라 하나 ‘국보 1호’에게 바치는 예라고 하기엔 너무도 빈곤하기 짝이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한낱 정치인의 입신양명 욕심 때문에 너무도 헐하게 개방되었기에 위태위태했던 육신이었습니다. 그래도 600여년 장구한 역사, 온갖 환란과 전쟁과 풍파를 이기며 세세대대 희로애락을 묵묵히 지켜보고 보호해준 숭례문이었습니다. 선조들의 혼과 역사와 문화를 말해주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목조건축이었습니다. 그 숭례문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시기에 우리 눈앞에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전쟁보다도 더 공포스러운 시절인가 봅니다. 일본제국주의보다 더 끔찍한 시절인가 봅니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저 근대화 시절보다 지금이 더욱 고통스러운 시절인가 봅니다. 이 시절을 더 이상 견디고 버티기 힘들었나 봅니다.
숭례문 방화범이 잡혔습니다. 결국 돈, 돈 때문이었습니다. 숭례문은 돈에 미친 나라, 돈이 절대가치요 우상이 되어 ‘예(禮)’를 받들기는커녕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이 나라의 희생제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경제만능주의, 개발지상주의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심성과 자제력마저 파괴했습니다. 그 괴물들이 우리의 영혼과 정신과 가슴을 다 마비시켜버렸습니다. 석조축대만 남기고 거대한 숯덩이로 흉측하게 남겨진 숭례문을 보며 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문화도 역사도 근본도, 어떤 경우에든 남기고 간직하여 후대에게 넘겨주어야 할 철학과 신념도 돈 앞에선 그만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키고 마는 우리 시대 부끄럽고 아픈 자화상을 봅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사실상 숭례문 방화 공범이요 방조자에 다름 아닙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국운이 불길하다’고, ‘불길한 징조’이니 매사 신중하게 하늘의 뜻과 민심을 살피며 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면, 장로이신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미신’이라 할까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그렇게 이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시대의 징표를 알아들어라!” 하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시대의 징표입니다. 자연에 대한 예의, 인간에 대한 예의, 근본과 기본을 받들 줄 아는 예의, 철학과 정신적 가치를 받들 줄 아는 예의, 문화와 역사를 받들 줄 아는 예의,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높이 받들 줄 아는 예의가 세워질 때만이 국운이 진실로 융성해질 것이라는 시대의 징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숭례문 참화처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망국운하입니다. 대운하 추진 발상을 멈춰야 합니다. 거짓되고 허황된 논리들로 가득한 대운하 망상은 절대 거둬져야 합니다. 숭례문 나이보다 더 오래 오래전부터 생겨서 흘러온 민족의 탯줄이요 젖줄인 강들은 계속 흘러야 합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댐 속에 갇혀 흐르지 못하고 썩어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와 역사, 정기와 정신은 보존되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만에 하나라도 대운하가 강행된다면, 엄청난 환경재앙과 함께 새 정권에겐 치명적 자승자박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결과는 숭례문 전소가 가져온 충격과는 비교도 안 되게 참혹하고 혹독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도리어 경제파탄이 가중되고 말 것입니다. 숭례문 복원을 빨리하겠다는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소름끼칩니다. 이 참화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민심을 거스르는 역주행(逆走行)입니다. 대운하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역천명(逆天命)입니다. 새 정권은 지금 역린(逆鱗)을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천하의 역적(逆賊)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디, 부디 '시대의 징표‘를 알아듣기 바랍니다.
종교인들은 옷 속을 파고드는 찬바람을 거스르며 침묵 속에 강 길 따라 걸었습니다. 새만금갯벌 간척을 막지 못한 업보가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어 자꾸만 목이 울컥거렸습니다. 용도변경은 절대 없다며 통일시대를 대비한 농지로 대부분 사용할 것이라 하여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낸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젠 아예 그 뻔했던 가면조차도 다 벗어던지고 ‘새만금 두바이’라는 새로운 신기루를 내걸었습니다. 기름 절은 태안바다도 주민들 얼굴도 떠오르며 가슴이 저몄습니다. 어서 다시 가봐야 하는데.... 생각하니 미안함이 밀려듭니다. 거짓과 위선의 시대, 무책임과 탐욕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그처럼 바다도 죽이고 육지 강들마저도 죽이면서 얻는 발전이란 게 가능하기나 할 것인지, 또 그렇다한들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묻고 또 묻게 됩니다.
우리 종교인들은 이해타산 할 것이 없습니다. 하늘의 뜻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 모든 존재에 대한 공경만이 우리 행동의 잣대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 가야할 길은 오로지 믿음의 길, ‘혼 길’입니다. 생명의 길이고 순리를 따르는 길입니다. 종교의 유무가 신앙인임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신앙인은 오로지 삶과 행위로 자신의 믿음을 증거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도리어 저는 종교를 갖지 않은 수많은 이들 속에서 거룩한 신의 표상을 자주 보곤 합니다. 순례 하루 일정을 마치고 천막 숙소로 첫날밤을 준비하는 순례단을 뒤로 하고 나오는데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하려 합니다. 마음은 늘 함께 걷고 기도합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순례자,’ 여러분도 저마다 있는 자리에서 또 다른 순례자가 되어주시길 정중하게 청해봅니다. 제가 있는 전주 평화동 성당 신자들도 순례단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순례 기간 내내 기도드릴 것입니다. 순례의 행렬이 더욱 길고 넓어질 때, 대운하 망상이 사라질 때, 비로소 우리는 시대의 제물로 희생당한 숭례문 앞에 조금 더 떳떳하게 설 수 있으리라는 믿음입니다.
2008년 2월 13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순례단’ 이틀 째 이른 아침
전주 평화동 성당 문규현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