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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헌금에 대한 연구

김현수 |2008.02.18 01:29
조회 707 |추천 3
십일조 헌금에 대한 연구 십일조헌금에 대한 연구

십일조에 대해서 말하려면 하나님의 창조와 창조의 목적을 연구하지 않고는 십일조에 대하여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십일조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한 물질을 인간에게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라고 하셨다.(창1:28) 이명령을 노동명령이라고도 하고, 문화명령이라고도 하는데 이 명령을 수행함에 있어서 소득이 창출된다. 소득을 창출함에 있어서 건강과 재능과 일터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은총이며 하나님의 섭리(보존 통치 동류)가 작용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노동으로 창출된 소득의 전체를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드려야 마땅 하지만, 율법(구약)에서는 십일조를 요구하셨다. 그러나 신약에서 헌금은 십일조가 아니라 소득의 전체를 말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헌신(순교)까지도 요구한다. 이렇게 십일조와 헌금을 통해서 구제하고 봉사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데 그 목적이있다. 그러므로 노동(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먹지도 말라고 하셨다. 즉, 하나님의 노동명령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이 땅에서 살아야 가치를 상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노동을 통해서 소득을 창출하고 그 소득의 십일조와 헌금으로 문화를 건설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해서(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인간으로서의 존재의 의무와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마25장에 보면 최후의 심판대에서 양과 염소로 가르시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자기것으로 알고 잘못사용한 사람을 심판하는 내용이다. 여기서는 예수를 믿고 믿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웃에 대하여 물질로 몸으로 헌신한 것에 대해서만 묻는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삶의 전체가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있음을 인정하고 노동을 통해서 얻어진 소유물을 하나님께드려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며 의무라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몰라도 믿는 사람은 십일조와 헌금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요, 덕목이다. 여기서 십일조와 헌금에대서 의문을 갖는 사람들을 위해서 십일조와 헌금의 역사적인 배경과 성경적인 배경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모세율법 이전의 십일조
십일조에 관한 언급은 이스라엘이나 셈족 이외의 다른 종종교와 문화 안에서도 발견된다.(주:성서백과 대사전 제 7권 pp268, 성서교제간행사) 애급 사람들은 수확의 십분의 이를 바로에게 바쳤다.(창47:24참조) 역사적 자료는 주전 6세기 바벨로니아에서 십일조를 바첬고, 주전 14세기 시리아 팔레스틴에서 십일조를 드린 것을 말해주고 있다. 십일조의 관습은 키르트고, 그리스, 페니기아, 아라비아, 중국,로마,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 살고 있는 종족들에게 계승되었다. 이방 민족에게 십일조는 주로 정치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에 있어서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쳐지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시작되엇다. 성경에서 십일조를 가장 먼저 기록해 놓은 곳은 창세기4:3-4절이다. 여기서 가인과 아벨이 드린 첫것은 십일조로 보았다.(주: 조해수 “헌금계발론” p38, 기독교 문서선교회) 이 첫 십일조는 약6천년전에 시작된 것이다. 그 다음에 창14:18-20에 아브라함이 전쟁을 하고 전리품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쳤고, 창28:에 야곱이 벧엘에서 돌을 세워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약했다. 이렇게 모세가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무적으로 심일조를 드리게 한 이전에 십일조에 대한 기록이 있다.

2. 법으로 규정한 십일조
성전에 바친 제물이 아닌 예물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첫 열매, 첫 새끼였다.(출23:16, 34:22 신18:4, 신23:10-14, 민18:12-18) 그리고 처음 깍은 양털도 성전에다 바첫다 (신18:4,창38:12, 삼상25:4-11, 삼하13:23-27참조) 이렇게 첫 열매와 첫 새끼를 바침으로 인해서 성전을 관리하는 비용과 제사장과 직원들의 샐활 보장을 할 수 있었다.

1)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    
민수기18:21-24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말것이라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고했다. 이렇게 기업이 없이 성전 봉사에 책임을 맡은 레위인들의 생계를 위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해 농삼물의 십분의 일을 바쳐서 레위인의 생활비로 지급했다. 그당시 레위인의 총수는 22,300명이였다.

2)제사장을 위한 십일조
민수기18:25-28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가라사대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에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여호와께 드린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 돌리되” 라고 했다. 그당시 모세와 아론의 자손들은 22,000명이였다. (민3:38-39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주고 레위인은 받은 십일조에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주라고 했다.

3)축제 혹은 성전을 위한 십일조
신명기12:5-19, 14:20-27에 보면 백성들이 매년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를 드린다음 또 제2의 십일조를 드려서 성전에서 함께 먹으면서 하나님게 감사하는 경비로쓰고, 남은 것은 성전의 갇종 비품을 사는데 사용했다. 즉, 성전 관리비로 사용했다.

4)구제를 위한 십일조
신명기14:28-29, 16:12-13에 “매 3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 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고 했다. 이렇게 매 3년이 되는 해에는 십일조를 3번드려서 저축해 놓았다가 고아 과부 나그네 기업이 없는 자를 3년동안 구제하고 먹이는 일을 하였다.

3. 신약시대의 십일조와 헌금
신약시대의 십일조는 헌금은 이미 서론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주권과 섭리를 다라서 얻은 소득을 은혜에 감사함으로 믿음과 순종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 십일조헌금은 헌금의 최소 단위이며 헌금의 기본이다. 신약시대는 십일조부터 시작하여 십의 9조 뿐만 아니라 전체를 드리는 자유의지에 의한 헌금이다.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인정하고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면서 자발적으로 기쁜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다.(주: www.kpt21.com 홈에서 자료실에 들어가 “성도를 금근심하게 하라”에서 고후 8장 9장 강해설교 참조)

1)마태복음23장 23절에서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께서 바리세인들이 십일조드리는 것에 대하여 허용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義와 仁과 信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2)사도시대 십일조와 헌금
십일조가 예수 그리스도 이후 약500년 동안 행해졌다
이레내우스는(주후140-202)은 말하기를 “유대인들은 신성한 것으로 그들의 수입의 십일조를 드렸으나,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주님의 사용에 밑겨버렸다. 그들이 더욱 풍성한 가운데 기쁨과 자유로 드린 것은 그들이 더욱더 위대한 소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주: Ibid,p56)

3)로마 케토릭의 십일조 헌금
주후585년에 카토릭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법으로 제정했다. 그후 650년 루인 회의에서 그리고 660년 낭트회의에서 그리고 750년 메츠 회의에서 768-814년 살레망 회의에서 십일조를 제확인했다. 11세게가 끝날 무렵 포루투칼에도 십일조 제도가 확립되었고, 거의 동시에 덴마크 아스란드에도 확립되었으며 13세기 초엽에 스웨덴에서도 십일조제도가 확립되었다. 모든 신도가 신도가 십일조를 소유하는 것은 죄라고 공포했다. 십일조를 반대하는 모든 성도를 트랜드 공의회는 정죄했다.(주: Ibid,p57)

4. 신약시대에 있어서 진정한 헌금정신
고후9: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신약시대의 진정한 헌금은 자유의지에 의한 헌금이다. 이는 십일조도 될 수 있고 십의 9조도 될 수 있다. 고후9;5절에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이 말씀에서 자유의지가 대립되는 것 같지만 이 두 말씀은 대립되지 않는다.  헌금은 강제로 강요당하지 않고 자유의지에 의해서 헌금을 하고, 않하는 것이 헌금하는 사람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는 말이 아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사람은 기쁜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헌금(십일조--9조까지)을 바처야 한다는 것이다.
십일조는 헌금의 기본이며 최소단위이다. 더 나아가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주로 믿는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에수 믿는 사람이 최소한 십일조를 하지 못하면 구원관계에 문제가 있다.
목회자는 십일조와 헌금을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성도의 구원사역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바리세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하고 발씻을 물도 안주고, 감람유(가장 나쁜기름)도 주지 않했지만 구원의 은총에 감격한 여자는 눈물로 발을 씻고 옥합을 깨뜨렸다. 구원의 은총과 물질봉헌과는 비례한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가르칠려고 하지 말고 구원의 감격을 얻도록 구원론을 철저하게 가르처 감사하므로 자유롭게 드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

1)십일조와 헌금드린 사람을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많이 주신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눅6:38) 이 성경 구절은 하나님께서 자발적인 헌금을 유도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는데 그 조건이 자기 것을 하나님(다른 사람)에게 주는 조건이다.(마25장 참조)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자기의 처지와 형편에 맞게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후히 주시고 흔들어 넘치도록 않겨 주신다” 이 원리는 투자의 원리이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투자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익을 많이 남기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성도가 헌금을 드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는 것은 성도의 유일한 특권이다.

2)헌금의 본질은 희생이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의 체험이 없으면 자유로운 헌금을 드릴 수 가 없다. 에수님은 사생애와 공생애를 통해서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사셨다. 그리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다. 제자들도 하나 같이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다가 순교당했다. 이러한 헌신과 희생의 바탕위에 기독교가 세워졌고, 희생과 헌신은 우리가 믿는 신앙의 본질인것이다. 하나님께서 목숨을 요구하시면 항거 할자가 누구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신다. 헌금을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헌신과 희생의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집사를 세울때 가추어야 할 덕목을 가르치면서 다 가추어졌다 할지라도 시험해보고 세우라고 했는데 그것은 모든 덕목에도 시험을 하되 헌신과 희생의 각오가 되어있는지 즉, 물질적인 희생을 할 수 있는 지를 시험해보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디전3:10절)

결론으로 십일조는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소의 기본적인 헌금이요, 헌금의 최소 단위이다. 헌금을 드리되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드리지 말고 기쁨과 감사로 드려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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