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태권도는의 가라테의 변형이다.

배성준 |2008.02.21 20:40
조회 158 |추천 2

http://www2.donga.com/docs/magazine/new_donga/200204/nd2002040010.html

 

초창기 태권도는 가라테의 변형

 

광복 직후 한국 무술계엔 수많은 파벌이 존재했다. 그들이 저마다 도장을 열었는데, 상당수가 가라테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부원장은 이들을 통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시했고, 엄운규 전부원장 고 이남석씨 등과 함께 실무작업을 맡았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태권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알고 있다.

―어떤 책을 보니까 광복이 되고 나서 40여 개 파벌이 난립했다고 나오던데, 이걸 하나로 묶어서 새롭게 태권도의 틀을 만든 거죠.

“40여 개까지는 안됩니다. 지도관 청도관 무덕관 송무관 창무관 오도관…. 거기에서 파생된 유파까지 합치면 9개가 주축이죠. 우선 협회 기준으로 9개관으로 정리했는데 관 파벌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통합관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렇게 하면 이종우한테 다 먹힌다’고 해서, 그냥 을지로 6가에 9개 관이 함께 쓰는 총본관 사무실을 얻었죠. 그때 9개 관이 모두 책상을 가지고 들어와서 복닥거렸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김운용씨하고도 의논해서 그때까지 각 관에서 심사를 보고 협회에 신청하던 단증 제도를 완전히 바꾸었어요. 총본관을 폐지하고 단증 발급을 협회로 넘겨버린 거죠. 그러고 나니까 관장들은 맥을 못 추게 됐고 협회가 태권도의 기준이 된 거예요. 아직까지도 파벌의 뿌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태권도의 역사를 기술한 책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통무예에서 태권도의 원류를 찾는 부류고, 다른 하나는 광복 이후에 만들어진 신종 무예로 보는 관점이다. 한국태권도계는 오랫동안 전자를 대변해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통무예와 태권도를 연결시킬 만한 구체적인 물증이 빠져 있다. 반면 후자는 최근 소장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가라테 유입설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위에서 가라테의 잔재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의 경기화된 태권도는 가라테와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품세 등에 아직까지 가라테적 요소가 남아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먼저 과거의 관점으로 기술된 문헌을 살펴보자. 이종우 부원장이 지도위원으로 참여한 ‘국기 태권도 교본’(국기원, 2000)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시대적 환경이 무예를 중시한 관계로 무사단의 창설을 촉진하였으니, 그 대표적인 예가 고구려의 ‘선배(帛衣仙人)’와 신라의 화랑이었으며, 이들의 심신단련과 무예수련의 방법으로 태권도가 행하여졌다고 추찰된다.’

다음은 교육인적자원부 검정 중학교 체육1 교과서(교학사, 2001) 내용이다.

‘태권도는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우리나라의 전통무예다.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조상의 슬기와 얼이 담긴 우리의 전통무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무인들의 필수 무예로 성행하였으며, 시대에 따라 명칭도 다양하게 변하면서 발전해왔다.’

반면 국기원 기술심의회 김병운 의장과 경희대 최영렬 교수가 감수한 ‘신편 태권도 대백과’(2001)에는 태권도의 가라테 유입설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문구가 들어 있다.

 

‘광복이 되면서 태권도는 급진적인 발전의 계기를 맞는다. 일제치하에서 태권도는 가라테의 영향을 받아 상당 부분 변질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선 공수도 당수도 수박도 등으로 혼용되던 명칭을 태권도로 통일하였다.’

 

또한 한국체육대학 태권도학과 안용규 교수는 ‘태권도 역사·철학·정신’(21세기교육사, 2000)에서 가라테 유입설을 이렇게 정리했다.

 

‘태권도가 가라테 품세를 활용했거나 도장의 명칭을 당수 또는 공수로 썼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일부분이지만 수용할 것은 수용한 후 극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단지 근대 이후에 태권도가 가라테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태권도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태권도 교본들이 태권도의 뿌리를 삼국시대 이전으로 잡고 있습니다.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하더라도 좀 무리가 따른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도 그런 식으로 책을 쓴 사람이에요. 솔직히 우리가 내세울 게 없었잖아요. 초창기에는 태권도를 해외에 보급하는 과정에서 옛날부터 있었던 한국의 전통무술이라고 하면 명분도 서고 잘 먹혀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유사성이 있더라도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겁니다. 역사적 원류로 본다면 중국 것이 일본으로 들어갔고 일본 것이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죠. 일본 사람들이 중국 무술을 많이 개량해서 과학적으로 만들었어요. 한가지 문제가 뭐냐 하면 일본 사람들은 유연성보다 근육성에 바탕을 두고 운동을 만들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몸의 움직임이 굳을 수밖에 없죠.

 

우리는 이걸 가지고 스포츠로 경기화하기 위해서 겨루기를 시킨 겁니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겨루기를 안하고 혼자 하는 운동으로 놔두었고, 중국에서는 손 맞춰서 하는 유연한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렇게 볼 때 태권도는 중간 입장에서 어느 쪽도 아니에요. 쉽게 얘기하면 우지좌지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거죠. 그런데 우리는 겨루기를 했기 때문에 급속도로 발전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중국과 일본이 역으로 우리 걸 배우게 된 겁니다. 자기들 무술은 보급이 잘 안되는 데다 젊은 아이들이 자기와의 싸움보다 치고 받는 걸 좋아하잖아요.”

 

―광복이 되고 도장을 연 사람들은 모두 가라테를 했나요.

 

“기본기를 놓고 볼 때 이렇게 막는다 저렇게 때린다 하는 건 모두 가라테와 똑같아요.”

 

―그렇다면 우리 전통무예와의 유사성은 없다는 얘기입니까.

 

“언뜻 보기에는 있는 것 같지만, 기본기가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사실상 유사성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택견도 현대에 와서 많이 변질됐어요. 태권도 하던 사람들이 택견을 배우니까 발차기가 태권도 스타일로 나오는 거죠.”

 

―광복 이후 태권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영향을 끼친 무술은 가라테 뿐입니까. 다른 것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나요.

 

“그게 솔직한 대답입니다. 나도 별의별 것을 다 끌어들여서 책을 쓴 사람이지만, 이제는 밝힐 때가 됐어요. 가라테를 가르치는 관장들이 모여서 태권도의 형틀을 만들었고, 그 실무작업을 제가 했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세계 정상에 있으니까 밝혀도 큰 문제가 없어요.”

 

기자는 대학 시절 한 학기 동안 택견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강의를 맡았던 사람은 한국 택견의 마지막 명인으로 꼽히는 고 송덕기 옹에게 직접 사사한 도기현(현 택견계승회)씨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택견은 한국 전통무예를 논할 때 1순위로 등장한다. 그래서 태권도의 역사성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택견과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도씨는 당시 “태권도에 한국적 정서가 반영된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적 측면에서는 가라테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부원장에게 택견 수련자들이 태권도에 대해 품고 있는 의문점을 조심스럽게 던져보았다.

 

―우리 민족의 무예는 원래 3박자로 움직이는데 비해 태권도는 2박자 운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권도는 전통무예라기 보다 일본 무예에 가깝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택견 입장에서 보자면 올바른 시각이죠. 나는 박자를 잘 몰라요. 하지만 태권도와 택견의 발차기 자세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 잘 알아요. 택견의 발차기는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고 곧은 발로 올라가는데 요즘은 그런 자세가 나오지 않아요.”

 

―택견은 시작할 때 손을 앞쪽으로 모으고 정중하게 인사하잖아요. 반면 태권도는 손을 허리에 대고 기마자세를 취하고. 그게 일본적 특성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건 한국적 기준으로 일본적인 것을 구분하는 방법일 뿐이죠. 일본 가라테에도 다양한 유파가 있고, 그 중에는 자세가 다른 것도 많아요. 중요한 건 손발을 움직여서 얼마나 강한 타력을 만드느냐 하는 점입니다. 제가 볼 때 택견에는 그런 타력이 없고, 가라테에는 있다는 거예요. 중국 무술에도 그런 타력은 힘들어요.”

 

―태권도는 직선적인데 택견은 곡선적이므로 택견이 전통무예를 계승하고 있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세요.

 

“글쎄요. 힘은 거짓말을 못해요. 직선적이라야 강한 힘이 나오는 겁니다. 내가 주먹으로 때리는 데도 여기서부터 둥글게 돌아나가는 것보다 곧장 나가야 파괴력이 있거든요. 어떤 경우든 곡선은 직선의 힘에 미치지 못합니다.”

 

―한국 전통무예 중에 주먹을, 그것도 정권을 지르는 무예가 있었느냐? 이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맞는 얘기라고 봐요.”

 

―옛날 ‘무예도통지보’ 같은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동작은 직선보다 곡선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건 간단한 신체운동이나 보건체조로 볼 수도 있고, 다른 형태로 해석할 수도 있겠죠. 물론 투기적인 요소가 어느 정도 가미됐겠지만, 과학적으로 발전한 가라테에 비하면 전혀 다르다고 봐요.”

 

―결국 부원장님께서는 기술적인 수준으로 평가할 때 한국무술이 일본무술보다 뒤떨어진다고 보시는 겁니까.

 

“지금은 태권도가 경기화해서 앞서 있지만, 태권도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일본이 훨씬 앞섰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태권도는 가라테의 변형이니까요. 당시 한국무술은 송덕기 옹이 하는 택견뿐이었고요. 하지만 택견은 보건체조 수준이었어요. 그러니까 동작이 부드럽게 나가고 건강관리에 효과가 있는 거죠. 태권도도 강력한 힘을 가지려면 부드럽게 나가야 해요. 모든 펀치가 힘을 가지려면 미는 것이 아니라 탁 끊어줘야 하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부드러운 자세가 필요한 거고.”

 

이부원장은 태권도의 경기화를 가장 먼저 추진한 사람이다. 모든 스포츠는 경기화해야만 상품성이 있다는 생각에서 다른 도장들이 품세 수련에 매달릴 때 한발 앞서 겨루기를 도입한 것이다. 태권도에서 겨루기가 시작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겨루기에서는 주먹보다 발차기가 효과적인데, 발차기는 전통적인 일본 가라테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용인대 태권도학과 양진방 교수는 “가라테는 손 동작과 품세를 강조하며 겨루기가 없다. 따라서 발차기 겨루기 경기화 등은 현대 태권도와 가라테의 결정적 차이”라고 말했다. 즉 겨루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태권도가 가라테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설명이다.

 

========================================================================

 

충격이군요.

어렸을때. 태권도 하면 우리나라 전통 무술이라생각해서

태권도가 가라테를 이기는 생각도 했었는데...

추천수2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