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은 곳곳에 전설이 깃든 설화의 고장입니다. 영암을 둘러 보실 때, 전해 내려오는 옛 이야기를 떠올린다면 즐거움은 더해지겠지요? 영암의 옛 설화 몇 가지를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게요~
-월출산
월출산은 신라 때 월나산(月拏山), 고려 때 월생산(月生山), 조선시대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리워 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월출산'은 구림(鳩林)에서 보면 달이 마치 이 산에서 생겨나 떠오르듯 보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랍니다.
-구림마을
도선국사의 어머니 최씨가 빨래를 하다 물위에 떠내려오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잉태하여 낳았으나 숲속에 버리니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날개로 감싸 먹이를 주어 길렀다하여 이 마을 이름을 구림(鳩林)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구정봉
구림에서 태어난 동차진은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로 세살에 맷돌을 들어올릴 정도였습니다.
금강산에서 도를 닦아 10년 후 집에 돌아왔는데 당시 오랑캐가 침공하여 동차진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주문을 외워 오랑캐의 머리에 수많은 돌을 떨어뜨렸습니다. 이를 본 옥황상제는 오만방자한 그를 꾸짖어 벼락을 아홉 번 내려 동차진을 죽였습니다. 이때 벼락을 맞아 패인 웅덩이에 물이 고였는데 이 우물을 정(井)이라고 하고 우물이 생긴 산봉우리를 구정봉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답니다.
-자치바위
도선이 13세때 당나라 사신들의 권유로 입당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배에 오르기 전에 큰 바위에 무릎을 꿇고 고향인 성기골을 향해 절을 하였는데
그 바위에 무릎자국이 패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의 ‘자치바위’랍니다.
-백의암
도선국사가 배를 타고 서호강(西湖江)에 이르자 옷을 벗어 큰 바위를 향해 던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바위가 희거든 내가 살아 있고, 검거든 죽은 줄 알라.”이 바위가 바로 지금의‘백의암(白衣巖)입니다.
-덕진교
신라시대 때 덕진이라는 여인이 비오는 날 물이 불어나 영암천을 건너는 행인들이 변을 당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다리를 놓기 위해 땅속에 항아리를 묻고 그 안에 돈을 모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습니다. 그 후 영암 원님 꿈에 덕진이 나타나 다리를 놓기를 원하여 원님이 돈항아리를 찾아 다리를 놓고 여인의 이름을 따서‘덕진교’라고 하였습니다.
현재 덕진교는 새로 지은 것이며 강바닥 아래 부분에 옛 석재의 흔적이 남아 여인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여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공덕비를 세워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장독골 샘
읍내 서남리 삼거리에 '장독골샘'이란 우물이 있습니다. 이 삼거리 북편에 30평 가량의 빈 땅이 있고 이곳에 사방 2.5m, 길이 4m 가량의 샘 두개가 있는데요. 이중 하나는 근래에 판 샘이고 곁에 있는 샘이 바로 장독샘 또는 장군정(將軍井)이라 부르는 우물입니다. 독이라함은 군인들 기(旗)중 장군 표지기를 이르는 것입니다.
이곳에 을묘 왜변 때 양달사 장군이 그의 기를 꽂아 물을 솟게 했다고 해서 장독샘 또는 장군정(將軍井)이라 합니다. 지금은 메워 졌으나 자그마한 비석이 남아있어요.
-천석굴
옛날, 금정면 궁성산에 수도를 하기 위해 석굴로 들어간 스님 두명이 열심히 수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석굴 밑의 구멍에서 두 사람분의 쌀과 물이 쏟아져 나와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고 그 후 수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습니다. 수백 년 후 세 명의 스님이 수도를 하는데 쌀과 물이 2인분밖에 나오지 않아 한 스님이 구멍을 더 크게 뚫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쌀과 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쌀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 곳에서 배출된 스님이 수없이 많고 그때까지 구멍에서 나온 쌀이 천석이 넘는다 하여 천석굴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천제단
천황봉에서는 삼국시대이후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빌며 하늘에 제를 지낸 천제단이 있다고 전해져 왔는데 1994년 목포대 박물관의 발굴조사결과, 실제로 제사용 그릇이나 기와 등의 유물이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 각 시대별로 출토되어 그간 문헌과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천제단의 존재가 처음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성천
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박사가 마셨다는 ‘성천’이라는 샘물이 있습니다. 이 샘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성인을 낳는다고 하여 옛 아낙네들이 매년 삼월 삼짓날에 성천 옆의 구유바위에 모여 물을 마시고 목욕을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영암에는 훌륭한 사람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전설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물맛이 참 좋으니 맛보는 것을 잊지 마세요~
-왕인박사 석인상
책굴 앞에는 두 손을 소매 안에 넣은 모습의 높이 2.5m의 석상이 있는데 이 석상은 왕인의 제자들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다고 합니다. 왕인 박사가 배를 타고 일본으로 출항했다는 상대포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이 엄숙합니다.
-쌍계사터 돌장승
금정면 국사봉 기슭, 쌍계사터 입구에 있는 돌장승.
따로 이정표가 없을 만큼 홀대받는 곳이지만 전국 최고라는 평을 들을 만큼 잘생긴 외모를 자랑합니다. 특히 버티고 선 자세나 표정이 당당하지요.
왼쪽이 사천왕 같은 인상의 주장군이고, 오른쪽이 깐깐하고 야무진 표정의 당장군입니다. 신라시대 창건된 쌍계사의 빈 터를 오랜 세월 지키고 선 장승의 호기가 남다릅니다
-성풍사터 오층석탑
성풍사터에 서 있는 석탑(보물 제1118호). 월출산의 바위 봉우리가 탑 뒤로 멋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몸돌의 모서리마다 건물의 기둥을 세운 듯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놓은 것이 특이합니다.
-도갑사 석조
대웅전 앞뜰에 있는 300년 된 석조는 도갑사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입니다.
큰 돌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놓은 '석조'는 화강암으로 만든 길다란 통나무배 같은 느낌으로 늘 차고 맑은 물이 찰찰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