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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편지

김화자 |2008.03.02 18:56
조회 73 |추천 0

 

 

 

로마에서(111)

 

  1904년 5월14일

  경애하는 카프스 씨,

  당신이 지난번 편지를 받은 이래로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제발 저를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일 때문에 그렇게 되었고 쓸데없는 일들과 병 때문에 회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실은 좀더 안정되고 기분이 좋을 때 당신께 해답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기분이 약간 좋아졌습니다. 여기서도 극악 스럽고 변덕스넌 초봄의 환절기가 지독했었답니다.

 

  경애하는 카프스 씨, 이제야 당신에게 안부를 여쭙게 되었으며, 보내주신 편지에 대해 즐거이 이것저것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당신의 소네트를 베꼈습니다. 그 소네트는 아름답고 소박하며, 형태에 있어서도 고요하고 단아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을 수 있었던 당신의 시 가운데서 가장 좋은 작품입니다. 이제 제가 필사한 것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자기의 작품이 다른 사람에 의해 필사된 것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도 새로운 경험이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걸 다른 사람이 쓴 시로 생각하고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마음 밑바닥에서 그게 진정 당신 자신의 작품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소네트와 당신의 편지를 가끔 읽어보는 게 제게는 커다란 즐거움이었습니다.그 두 가지에 대해 당신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이 당신의 고독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싶어한다고 해서 당신의 고독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지는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런  희망을 냉철하고 침착하게 도구처럼 사용하시면, 바로 그런 희밍은 당신의 고독이 넓은 대지 위로 확산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습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일을 쉬운 방향으로 해결해 왔으며, 그것도 가장 안일한 방법으로 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러한 쪽을 붙잡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도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가 어려운 쪽에 의지하고 있으며 자연 속에 있는 만상은 자라고 자기 방법에 따라 저항하며, 자기로부터 독자적인 것으로 나오려 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거나 저항을 받더라도 독자적인 것이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아는 것은 적지만 우리들이 어려운 쪽에 의지해야 딘디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확신은 결코 우리들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고독하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고독이란 어렵기 때문이죠. 그게 어렵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그걸 해야 할 충뷴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사랑한다는 것도 또한 좋은 일입니다. 사랑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우리들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것 즉, 마지막 사련이고 시험이며 과제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다른 일들은 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모든 점에서 초심자인 젊은이들은 아직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을 배워야 하지요. 전존재로서, 전심전력으로 고독하고 불안하며 위로 치닫는 마음으로 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수련기는 언제나 지루하고 폐쇄된 기간이므로 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고독이며,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는 사랑이란 승화되고 심화된 독거입니다.

 

우선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며 헌신하고 제2의 인간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자와 미완성인 자 그리고 헝클어진 자와의 합일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은 개인이 자기 내부에서 그 무엇이 되고 세계가 되며, 자기 자체로서 타인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될 숭고한 계기임과 동시에 자기에 대한 크나큰 요구이고 자기를 뽑아내어 보다 넓은 곳으로 불러내는 그 무엇입니다.

 

사랑을 하나의 임무로 여기고 밤낮으로 귀를 기울이며 수련을 쌓아나간다는 의미에만, 젊은이들은 그들에게 부과된 사랑을 쓸 수가 있습니다. 몰입하여 헌신하고 타인과 어울린디는 모든 형태는, 이직도 오래오래 힘을 저축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아마도 인간생활에서 지금까지 도달할 수 없었던 궁극적인 일일 겁니다. 

 

  참을성이 없다는 것이 젊은의 본질이기는 하지만 젊은들은 그점에 있어서 곧잘 착각하고 어렵게 여기기 때문에 사랑이 그들 위에 닥쳐오더라도 그들은 서로 몸을 던져버리거나 자신을 흩뜨려버립니다. 그들이 난잡과 무질서 그리고 혼란 속을 헤어나지 못하듯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줘야 되겠습니까? 의기소침한 그 무리들에게 삶이 어떻게 해줘야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무리들을 결합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들의 행복이니 자신들과 관계되는 미래니 하고 부르고 싶어하는 터에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각자는 타인 때문에 자기자신까지 잃게 되며 상대방과 또 앞으로 오고 싶어하는 많은 타인들은 잃게 됩니다. 

 

그리고 넓이와 가능성을 잃고 예감에 가득찬 사기꾼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가 지나가는 것도 붙잡지 못한 채 아무 소득도 없는 곤혹과 바꿔버리고 맙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곤 구역질과 실망과 빈곤뿐으로, 이 위험한 도정에 수없이 설비된 공동의 대피소로 피하듯 여러 가지 인습에 구조를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체험치고 이것처럼 많은 인습이 갖추어진  분야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가지가지의 구명대나 보트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통념은 온갖 도피처를 만들어낼 줄 알았던 것입니다. 사회적인 통념은 애정생활도 오락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서, 공공연한 오락처럼 그것도 값싸고 위험이 없는 안전한 것으로 만들어내야만 했기에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대개가 그러듯 잘못살아가는 젊은이들 간딘하게 몸을 내던지고 무리에 싸여 사는 많은 젊은이들은 과오의 압박감은 느끼면서도, 그들이 내부에 자라잡고 있는 자연이 그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랑의 문제는 공공연하게 결합이나 협조를 얻어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 즉 그 문제들은 개개의 경우에 따라서 모두가 새롭고 특별해서 각자 독자적인 해답을 필요로 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절실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함께 어울려서 경계나 구별도 지울 수 없게 되었고 자기의 독자적인 것을 지니지 못하게 그들이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이미 묻혀버린 고독의 깊이로부터 출구를 발견해 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누구나 겪는 곤혹에서 행동하며 마음에 내키지 않은 결혼같은 인습을 피해보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결국운 그것보다는 약간 덜 시끄럽긴 해도 치명적이고 인습적인 해결로 빠져들고 맙니다. 그럴 경우 그들을 에워싸고 잇는 주위의 모든 것은 인습이기 때문입니다. 일찍부터 합류해버려서 혼탁한 결합으로  어던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어떤 행동이든 결국은 인습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설사 비관습적이든일반적인 의미로서는 비도덕적이든, 그런 헌란으로 이끌어가는 어떤 관계라도 결국은 인습이란 것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별 까지도 인습적인 발걸음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힘도 결실도 없는 비개성적인 우연한 결실에 불과합니다.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죽은의 경우처럼 괴로운 사랑의 경우에도 설명이나 해결 그리고 암시의 길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열어버지 못한 채 봉해진 대로 다음 사람에게 넘겨줘야하는 죽음과 사랑의 두 가지 과제란 것은 어떤 공통적인 규칙이나 약속에 의해 탐구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체로서 삶을 탐구해 나가기 시작하는 정도에 따라서 이 위대한 과제들은 보다 가까이에서 우리들과 접촉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어려움이 우리들의 발전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엄청나게 큰 것이며, 초심자인 우리들로서는 그 요구에 부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참고 견디며 이 사랑을 우리들에게 덮쳐오는 짐이나 수련기로 받아들여서, 인간들의 존재 가운데 가장 참된 진실을 숨기는 가벼운 유희에 스스로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보다 뒤에 오게 될 자들에게는 미약하난마 발전과 안도의 기분이라도 느끼게 해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마능로도 수확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야 개개의 인긴과 제2의 개인, 그 타인의 관계를 편견없이 사실대로 관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살아보려는 우리들의 시도에 어떠한 규범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들의 주저하는 초심자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새롭고 독특한 발전을 해 나가는 처녀와 부인은 우선 사나이들의 좋은 버릇이나 나쁜 버릇을 흉내내는 모방자아 남성의 작업을 반복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도 이런 과도기의 불안정한 상태가 지나면, 여인들은 충만과 때로는 우스강스러운 변혁을 통해 타성의 일그러진 영향으로부터 자기자신의 존재를 정화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보다 직접적이며 생산적이고 신뢰로 가득 찬 삶이 머무르고 있으며, 그 삶 속에 자라를 잡고 있는 여인네들은 근본적으로 남성보다 훨씬 완숙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남성은 잉태의 산고에 의해 한 번도 삶의 하층 까지 내려가보지도 못했으며, 오만하고 경박하며 성급하여 자기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평가하는 무리가 아닙니까. 만일 여인네들이 그들의 외적인 신분의 변화를 겪으며 오로지 여성적이라는 인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런 고통과 굴욕에서 참고 견디어 온 여인의 인간상이 밝게 드러날 것이며 아직도 느끼지 못하는 사나이들은 깜짝 놀라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북쪽 나라들에서는 믿을만한 징조가 엿보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이름이 남성의 대립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무언가 보충이나 경계로 여겨지지않고  그 자체로서 삶과 존재만을 생각하게 하는 처녀와 여인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즉 여성적인 인간상이 말입니다.  

 

  이런 발전은 현재로선 오류로 가득 차고 우선은 뒤에 쳐진 남성들의 의지와는 대립디고 있지만, 사랑의 체험을 변화시킬 것이며 그것은 근본적으로 개조시켜서 남성 대 여성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이란 공통의 관계르르 이룩하게 할 것입니다. 

 

무한히 사려 깊고 조용하며 결합과 별리에서 명백하고 훌륭하게 이룩될 이런 인간적인 사랑은, 우리들이 싸워서 획득하고 애써서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들이며 두 사람의 고독자가 서로 부축해 주고 보완해 주며 인사를 나누게 될 사랑과 비슷합니다.  

 

  어린 시절에 당신에게 있었던 크나큰 사랑을 잃어버렸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당시에는 오늘날도 당신께서 믿으며 살고 싶은 훌륭하고 위대한 소원과 의도가 아직 익지 않았다고야 말할 수 잇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 사랑은 아직도 당신의 추억속에 강하고 힘차게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최초의 고독이며, 당신의 삶에 대해 당신이 행했던 최초의 진지한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애하는 카프스 씨, 당신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소네트

 

 

  나의 생명을 뚫고 

  비탄도 한숨도 없이

  칠흑같은 우수가

  떨구 있구나

  나의 꿈들의 

  순결한 눈꽃들은 

  나의 평화스러웠던 날들의

  잔치.

 

  때로는 크나큰 의문이 

  나의 노정에 교차되는구나.

  수심조차 재어볼 

  염도 못 내는 

  호숫가를 지나듯,

  서성이며

  그 길을 간다. 

 

  슬픔이

  내게로 와 가라앉는구나.  

  때로는 반짝 거리는 

  별 하나.

  빛에 주린 

  여름밤 회색처럼.

  나의 손은

  사랑을 찾아 헤맨다.

  뜨거운 입김으론

  찾이낼 수 없는

  노래를

  기도 드리고자. 

 

  ---프란츠 카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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